피해자를 위한 나라는 없다
김혜인 사회부 기자
2022년 08월 23일(화) 16:51
"That is no country for old man(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유명 영화의 제목으로 알려진 이 말은 아일랜드의 시인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의 시 '비잔티움으로의 항해'의 첫 구절이다. 여기서 '노인'은 지혜로운 사람, 지성인을 상징한다. 그런데 그런 현자조차 이해할 수 없는 부조리가 가득하고 온갖 재앙이 펼쳐지는 곳이 바로 '세상'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도 크게 다를 바가 없어 보인다. 명백한 피해자와 가해자를 보고도 가해자를 두둔하는 정부의 움직임을 보면서 우리는 이해할 수 없는 부조리를 느낀다. 이번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배상 판결 사안처럼 말이다.

2018년 대법원이 전범기업 미쓰비시중공업에게 강제집행 명령을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미쓰비시가 이에 불복한 지 3년 5개월 째다. 그동안 한국정부는 민관협의회를 출범시켜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해법을 모색하기 위해 외교적 노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피해자 단체나 소송그룹과의 만남에서 민관협의회의 "피해자들이 원론적이다"는 입장이 알려지면서 해당 기구에 대한 역할에 의심이 든다. 끊임없이 대위변제나 기금 조성과 같은 대안들을 언급하고 있지만 분명히 해야 할 것은 전범기업의 진심 어린 사죄와 반성이다. 이러한 전제 없이는 어떠한 대안도 이뤄질 수 없다.

게다가 외교부가 최종 판결을 미뤄 달라는 취지의 의견서를 제출한 사실이 확인됐고, 윤덕민 주일 한국대사는 현금화 동결의 필요성을 피력했다.

피해자의 의견을 적극 대변해도 모자랄 판에 미쓰비시중공업의 재항고 사유와 유사한 의견서를 내놓은가 하면, 배상수단인 현금화를 막자는 취지의 발언을 한국의 외교관리가 하는 것이 마치 일본을 두둔하는 모양으로 보인다.

판결을 미루는 것도, 현금화를 동결하는 것도 외교부가 아닌 사법부의 권한일 뿐더러 애초에 피해당사자들의 의견이 전혀 반영되지 않은 채 결과와 해법을 논하는 것도 개탄스럽다.

아쉽게도 지난 19일에 심리불속행 기각 여부가 발표되지 않았다. 대법원이 곧 미쓰비시중공업의 강제매각 집행 최종 판결을 내놓을 것으로 가닥을 잡고 있지만 고령의 할머니들이 언제까지고 기다릴 수 없다. 공정과 정의가 실현되는 피해자를 위한 나라는 없는 것일까.









김혜인 기자 khi@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