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연된 정의는 정의 아냐… 더 미룰 수 없어"
●소송대리인 김정희 변호사 인터뷰||"대법, 현금화 판결 미뤄져 유감"||최종 판결땐 日 불복 방법 없어||전범기업 진정한 사과 전제돼야||"고령의 피해자 억울함 해소를"
2022년 08월 21일(일) 16:49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닙니다. 2012년 10월에 시청 앞 미쓰비시 자동차 대리점 앞에서 1인 시위를 한게 벌써 10년이 다 됐습니다. 피해자의 인권과 한국의 역사를 위해 더 이상 미룰 수 없습니다."

지난 19일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배상 판결 소송대리인인 김정희 변호사는 초조한 표정으로 사무실에서 대법원 사건조회를 연신 조회하고 있었다. 이날은 대법원이 심리불속행 기각 여부에 대해 결정을 내리기로 한 날이었기 때문이다. 한참을 기다렸지만, 결과는 연기였다.

현재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배상 판결과 관련해 크게 서울과 광주 두 곳에서 전범기업에 맞서 법적 다툼을 이어가고 있다. 광주그룹에서는 피해자 지원단체인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구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과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이 함께 활동하고 있다. 특히 김 변호사는 해당 사건을 10년째 담당해왔다.

김 변호사는 "심리불속행 제도가 대법원의 재량이 많이 포함돼있어 미뤄지는 경우는 종종 있다. 다만 상고심 절차에 관한 특례법 제4조 및 제6조에서 재상고 이유가 헌법, 명령, 규칙에 위반됐거나, 상고 이유가 없을 때는 심리불속행 기각판결을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미쓰비시중공업의 주장은 심리를 걸친만한, 혹은 논쟁이 될만한 사안이 아니다. 재항고의 사유가 명백하지 않기 때문에 기각이 날 수 밖에 없는 상황임에도 대법원의 판결이 미뤄진 점은 유감이다"고 전했다.

이에 "지난달 26일 제출한 외교부의 의견서가 영향을 미쳤나"라고 질문하자 김 변호사는 "그렇지 않다고 믿고 싶다"라며 말을 아꼈다.

그는 "다만 이러한 압력에도 불구하고 대법원이 현명한 판단을 내릴거라고 생각한다. 비록 19일에 발표가 나진 않았지만 조만간 기각 여부가 판가름날 것이라 본다. 만약 기각된다면 미쓰비시중공업은 더 이상 현금화 명령에 불복할 수 있는 방도가 없다"고 설명했다.

앞서 지난달 4일 외교부가 강제징용 배상 판결 해법 모색을 위한 기구인 '민관협의회'를 추진했지만 광주그룹은 출범 때부터, 서울그룹은 2번의 회의 참석 후 불참을 선언했다. 당시 "피해자들이 원론적이다"는 민관협의회 입장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논란을 낳기도 했다.

김 변호사는 "정말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듣기 위한 기구라면 당연히 참석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대위변제나 기금 조성과 같은 대안을 만들어 두고 피해자들을 내세워서 어떻게든 한일관계를 우호적으로 개선시키고자 하는 의도가 느껴졌다"며 "'피해자들이 원론적이다'는 말이 마치 피해자가 한일관계 개선에 있어 장애물이 된다는 의미로 읽혀 민관협의회 참석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피해자들이 원하는 것은 진정한 사과와 배상, 여기서 중요한 전제는 전범기업의 진정한 사과다. 사죄 없이는 피해자들이 양보할 수 있는 것은 없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최근 윤석민 주일대사가 발언한 현금화 동결에 대해서는 "한 외교관리가 언급할 수 있는 선을 넘은 것 같다"고 평했다.

김 변호사는 "지난 2018년 11월29일 대법원은 현금화 명령을 내렸지만 미쓰비시중공업이 판결을 따르지 않으면서 3년 6개월간 동결 상태였다"면서 "당연히 배상받아야 할 부분에 대해 동결을 이어가자는 주장은 터무니없다. 또한 현금화 집행 결정은 명백히 사법부의 권한이다. 삼권분립의 관점에서도 외교부가 동결을 논할 수 있는 정도가 되지 못한다"고 비판했다.

이어 그는 "현금화 집행으로 인한 의미는 크다. 기술력의 상징인 특허권과 회사의 상징인 상표권을 매각하게 된다면 회사의 전반적인 이미지에 타격이 갈 뿐만 아니라 역사적으로도 강제징용 사실을 인정하고 이를 배상한 사례로 기록돼 상징성을 갖는다"고 덧붙였다.

김 변호사는 또 현 정부가 보여주는 태도가 굴욕적이라고 전제하면서 "문재인 정부에서도 아쉬움은 남지만 이번 윤석열 정부에서 피해자중심주의가 사라진 것은 물론이고, 노골적으로 피해자들에게 양보를 요구하며 일본과의 관계에서 저자세로 나아가는 등 실망스러운 모습들이 보이고 있다"며 "한일관계 개선을 명분으로 계속해서 배상을 미루는 등의 행태는 절대 정의가 아니다. 하루빨리 고령의 피해자들이 전범기업으로부터 진정한 사과를 받으며 억울함을 풀 수 있도록 끝까지 싸울 것이다"고 전했다.



















김혜인 기자 khi@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