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비대금 체불 근절 '하도급 대금 직불제' 주목
●장비업자의 서러운 독촉장 (하)||경찰·노동청도 구제할 길 없어 ||지급보증제 법적 의무화 했지만 ||업계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다” ||서울시, 체불 근절 정책 추진
2022년 04월 05일(화) 16:57 |
![]() 건설산업기본법 제68조의3에 명시된 지급보증제. 최홍은 편집디자인 |
지급보증제는 체불을 막을 수 있는 제도지만 예외조항이 많을뿐더러 업계에서는 내용을 모르는 업주들도 상당수여서 '유명무실'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5일 노동청과 경찰, 장비업계 등에 따르면 체불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장비업자들은 우선적으로 경찰이나 노동청을 찾는다.
먼저 경찰은 체불과 관련 '사기죄 성립 요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사기죄는 기본적으로 타인을 속여 돈을 받아내 다른 목적에 쓰는 행위를 말한다. 장비업자들이 호소하는 피해 사례는 '사기'가 아닌 '채무 불이행'이라 경찰 관할 사안이 아니다.
노동청도 마찬가지다. 노사관계가 아닌 사업자 간 계약이기 때문에 근로자의 임금체불을 담당하는 노동청에서도 손쓸 도리가 없다. 유일한 해결책은 민사소송뿐이다.
이런 사태를 예방하기 위해 지난 2012년부터 장비대여 발주단계부터 대금 지급을 보증하는 법적 제도인 '지급보증제'가 시행됐다.
건설산업기본법 제68조의3에서 명시한 '지급보증제'는 '수급인 또는 하수급인은 자신이 시공하는 1개의 공사현장에서 대여받을 건설기계의 대여대금을 보증하는 보증서를 그 공사의 착공일 이전까지 발주자에게 제출해야 하며, 건설기계 대여업자는 건설기계 대여계약을 체결한 경우 현장별 보증서를 발급한 보증기관에 그 건설기계 대여계약서를 제출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해당 의무를 위반한 건설사업자는 6개월 이내의 기간을 정해 영업정지 혹은 영업정지를 갈음해 1억원 이하의 과징금이 부과될 수 있다.
그러나 법적 내용과는 달리 실제 업계에서는 잘 활용되지 않는다. 면제조항이 많을뿐더러 시행 10년이 됐음에도 잘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외조항을 살펴보면 대표적으로 △도급금액이 1억원 미만이고 착공일부터 준공예정일까지 공사기간이 5개월 이내인 경우 △하도급 금액이 5000만원 미만이고 착공일부터 준공예정일까지 공사기간이 3개월 이내인 경우 △당해 건설공사의 도급금액 산출내역서에 기재된 건설기계 대여대금의 합계금액이 400만원 미만인 경우가 있다.
송성주 전국건설노동조합 광주·전남지부 사무국장은 "대개 체불상황은 두 가지로 나뉜다. 발주처에서 지급보증을 무시하고 계약을 했거나 예외조항에 해당된 경우 혹은 업자들이 지급보증에 대한 내용을 모르는 상황으로 나뉜다"며 "지급보증제 강화와 더불어 체불을 근본적으로 끊어낼 수 있는 정책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다른 지역에서는 하도급 체불을 원천 차단하기 위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서울시의 하도급 체불사태를 근절하기 위해 시행중인 '하도급 대금 직불제도'다.
'하도급 대금 직불제'란 서울시의 공공발주 건설공사장에서 발주자가 하수급인에게 하도급 대금을 직접 지불하는 내용의 '하도급 대금 직불 합의서' 제출을 의무화하는 것을 말한다. 이를 위해 시는 '서울시 공사계약 특수조건'을 개정해 관련 규정을 신설하고, 합의서 의무 제출을 계약조건에 명시한다는 계획이다. 현재 '하도급 대금 직불 합의서' 제출 의무화 관련 규정이 개정중에 있다.
또한 서울시는 대규모 공사현장에서 선호하는 '선지급금' 방식도 직불제로 간주한다. 수급인이 기성금(공사가 이뤄진 만큼 공사 중간에 계산해주는 돈)을 일단 하수급인에게 먼저 선지급하고 이후 발주자에게 청구·수령하는 방식으로, 하수급인 입장에서는 직불제와 동일한 수령 효과가 있다.
조성민 서울시 건설혁신과 하도급혁신팀장은 "하도급 대금 직불 합의서 제출 의무화를 앞두고 있지만 건설업계 내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현재 서울시 관급공사 계약서에는 해당 사항을 권고하고 있어 공공발주 공사장에 정착해가고 있다"면서 "선지급금 방식 또한 직불제 기능을 완전히 실현하기 위해 기성금 처리 절차를 약식으로 간소화하는 방안도 검토중이다"고 말했다.
이어 조 팀장은 "이 밖에도 '하도급지킴이'라는 전자시스템을 이용해 계약의 투명성을 확보하는 등 하도급 업자들의 체불 사태를 근절시키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며 "이 같은 정책으로 직불률을 높여 하수급인을 실질적으로 체불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전했다.
광주시는 법적 사항을 지키며 공사 계약을 진행한다는 입장이다.
광주시 종합건설본부 관계자는 "법적 절차를 준수해서 공사 발주부터 관리·감독을 진행한다"며 "일부는 예외조항에 해당돼 지급보증제 의무 대상이 아니다"고 일축했다.
김혜인 기자 khi@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