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나상호> 자신도 믿지 못한다는 정치인의 말
나상호 예술공장협동조합 기획이사
2022년 03월 30일(수) 13:18 |
대선이 끝나고 지방선거에 대한 관심이 점차 뜨거워지고 있다. 이번엔 어떤 공약들이 나올지 궁금하다. 문제는 후보마다 내건 공약들이 임기 말이 되면 부지기수가 헛공약으로 남게 된다는 사실이다. 미국 정계에 내려오는 유명한 얘기가 있다. 한 후보자가 '제가 당선이 되면 마을에 다리를 놓아주겠다'고 약속한다. 유권자들이 '우리 마을엔 강이 없다'고 하자 그 후보자가 말하기를 '그럼, 강부터 만들고 다리를 놔드리겠습니다.'
다리를 놔주겠다는 공약은 지난 1960년대 자유당 시절에도 있었다. 지역실정과 무관하게 '이 정도 공약이면 표를 주겠지' 하는 묻지마 공약의 남발이다. 그러기에 정치인의 약속은 섣부른 발표에 앞서 심사숙고해야 하고 신중한 검토가 앞서야 한다.
민선 7기 출범과 함께 지역사회에 논란을 부른 프로젝트가 518m 빛의 타워다. 이용섭 시장이 당선된 직후 공약으로 제시하려다가 철회했다. 당시 광주시장 민주당 후보 경선에 나선 양향자 후보가 들고 나온 공약이다. 민선 7기 광주시의 큰 그림을 그리던 광주혁신위원회가 '광주시민과 관광객을 위한 랜드마크가 없다'는 것과 '광주정신을 상징하는 역사적 조형물 설치, 대한민국 광산업 첨단도시를 상징하는 빛의 형상화 차원'에서 검토 의견을 낸 사안이다. 그러나 도시정체성, 부지, 장소, 예산 등과 관련한 반대 목소리가 커지자 계획은 흐지부지돼버렸다. 광주상징물 논란은 앞서 2007년에도 한 차례 거친 바 있다. 한 시의원이 광주의 정체성, 5·18의 세계화를 내걸고 518m의 민주인권탑 건립을 제안한 게 그것이다.
지역사회는 광주를 상징하는 랜드마크가 518m나 되는 높은 타워여야 하는지에 대한 소모적 논쟁을 거쳤다. 단체장이 말해놓고 슬그머니 거둬버린 대형 프로젝트이건만 그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다. 이미 똑같은 과정을 겪은 계획을 다시 시민 앞에 들이미는 것도 우스꽝스러울 뿐이다. 지난 대선공약 과제로 추진하려다 철회한 'G-Twin' 타워 건립계획도 마찬가지다. 시가 1차로 발표한 75개 공약과제 가운데 하나로, 1000억원을 들여 높이 200m 규모의 타워를 건립한다는 게 골자다. 광주에 랜드마크와 킬러 콘텐츠가 없어 관광객을 유인할 만한 관광자원이 없다는 생각이 이를 검토한 배경이다.
지난 1960년대 구 소련의 후루시초프가 미국을 방문했을 때 기자들이 "정치인이란 무엇을 하는 사람이냐"고 물었다. 그는 "정치인은 어디를 가나 똑같은 사람이다. 그들은 강이 없는데도 필요하다면 다리를 놓아주겠다고 약속하는 사람들이다"고 대답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정치인들이 흔히 하는 거짓말을 풍자한 것이다. 서구 민주주의 정치의 대표격인 프랑스 정치인들조차 시민에 대한 거짓말은 필요악임을 인정한다. 드골 대통령은 "정치인은 자기 스스로가 한 말도 결코 믿지 못한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들이 그의 말을 믿어줄 때는 스스로 놀라기도 한다"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선택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이번 지방선거에도 지키지 못할 숱한 공약들이 쏟아져 나올 것이다. 잘 판단해야 한다. 강이 없어도 다리를 놓아주겠다는 새빨간 거짓말에 속는다면 지역사회의 미래는 암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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