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돈삼의 마을 이야기> 밀물·썰물이 만든 '바다의 텃밭'에 둘러싸인 섬
신안 매화도||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 등재||조개·낙지·게 등 생태자원 풍성||물 빠진 갯벌 돌로 만든 노둣길||돌 쌓아 고기 잡는 독살 등 남아
2021년 12월 19일(일) 14:35

바닷가에 돌을 쌓아서 만든 독살. 밀물 때 들어온 고기를 가둬서 잡는, 옛날식 고기잡이 법이다. 이돈삼

바다의 텃밭으로 간다. 말이 텃밭이지, 생물다양성의 보고다. 생태체험 관광지이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중요하고 유용한 갯벌이다. 이 갯벌이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인정받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됐다. 지난 7월이었다.

세계자연유산이 된 갯벌은 신안을 중심으로 보성·순천, 충남서천, 전북고창을 한데 묶고 있다. 신안갯벌이 1100㎢로 가장 넓다. 보성·순천과 서천, 고창갯벌이 각 60㎢ 안팎에 이른다. 전남의 갯벌이 전체의 87%를 차지한다.

갯벌은 밀물과 썰물이 수만 년에 걸쳐 되풀이되면서 빚어낸 결과물이다. 그 가치가 무한하다. 갯벌에는 조개와 고둥, 게, 낙지 등 다양한 생물이 살고 있다. 물고기와 새들 삶의 터전이기도 하다. 우리 인간도 갯벌에서 유익한 식량을 얻고 있다. 홍수나 태풍으로 인한 자연재해도 줄여준다. 바다에 흘러드는 오염물질을 정화시켜주기도 한다.

우리 몸에서 노폐물을 걸러주는 콩팥에 빗대, 지구의 허파라고 부르기도 한다. 갯벌이 지구의 모든 생물을 살아 숨쉬게 하는 허파라는 얘기다.

대동마을 풍경. 매화도에서 가장 큰 마을이고, 중심이 되는 마을이다. 이돈삼

신안 매화도는 이렇게 차진 갯벌로 둘러싸인 섬이다. 신안 압해도에 딸린, 섬 속의 섬이다.

매화도에 가면 썰물 때 바다농장 격인 갯벌이 사방으로 펼쳐진다. 세계자연유산이고, 국가중요어업유산인 맨손어업을 하는 매화도 갯벌이다. 바다에는 지주식 김발과 부유식 김 양식이 지천이다.

매화도는 압해도와 기점․소악도 사이 바다에 떠 있다. 배는 압해도 송공항이나 가룡항에서 날마다 네 번 들어간다. 무안 신월항에서 들어가는 배도 두 번 있다. 송공항에서 배를 타면, 기점․소악도로 가는 길에 내려준다.

매화도(梅花島)는 매화섬으로도 불린다. 지형이 활짝 핀 매화처럼 보인다고 이름 붙었다. 섬의 가운데에 우뚝 솟은 매화산(239m)을 두고, 마을을 이루고 있다. 대동과 학동, 청석, 산두 4개 마을 그리고 황마도, 마산도로 이뤄져 있다. 주민들은 벼, 감자, 고구마를 많이 심는다.

대동마을이 매화도의 중심이다. 이름 그대로 가장 큰 마을이다. 일찍이 갯벌을 막아 농토를 넓혔다. 진료소와 파출소, 교회가 여기에 있다. 한때 압해초등학교 매화분교장이 있었다. 10여 년 전 문을 닫았다.

대동마을 풍경. 매화도에서 가장 큰 마을이고, 중심이 되는 마을이다. 이돈삼

마을경로당 앞에 수령 500년 된 은행나무가 압권이다. 지난 가을 마을을 온통 노랗게 물들인 나무다.

학동마을은 학이 알을 품고 있는 형상이라고 한다. 산두마을은 매화산 장군봉에서 내려오는 산줄기의 머리에 해당된다. 청석마을은 파란 돌이 많다고, 그리 이름 붙었다고 전한다. 바닷가에 수령 350년 됐다는 팽나무가 정자와 어우러져 멋스럽다. 마산도는 지형이 말처럼 생겼다고, 황마도는 황톳빛 지형이 말굽처럼 생겼다고 붙여졌다.

"어디서 오셨소? 섬에 뭐 볼 것이 있다고…."

마을에서 만난 박숙녀(83) 어르신이 말을 건넨다. 가까운 섬 고이도에서 19살에 시집와서, 지금껏 매화도에서 살고 있다는 어르신이다. 잠깐 들은 섬살이가 애틋하다.

어르신의 말과 달리, 섬에 소소한 볼거리가 많다. 온전한 모습을 지닌 독살이 눈길을 끈다. 독살은 돌담을 쌓아서 고기를 잡는 옛날식 고기잡이 법이다. 밀물 때 들어온 고기가 썰물 때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가두는 것이다. '석방렴(石防簾)'이라고도 부른다.

섬을 한 바퀴 돌면서 보이는 풍광도 멋스럽다. '12사도 기적의 순례길'로 많은 여행객을 불러들이는 기점․소악도가 내려다보인다. 베드로의집, 안드레아의집 등 작은 예배당이 눈앞에 보인다. 압해도와 암태도를 잇는 천사대교도 저만치 바다 위에 늘어서 있다.

매화도는 면적 667만㎡(200여만 평)로 비교적 큰 섬이다. 넓은 땅을 소유한 악덕 지주에 맞선 소작쟁의가 일어나고, '착한 지주'를 기리는 불망비도 세워져 있다.

일제강점기 1923년 암태도를 시작으로 지도, 자은도, 도초도, 하의도에서 연달아 소작쟁의가 일어났다. 이곳 매화도에서도 1927년 9월 소작쟁의가 일어났다. 소작인들이 일제의 비호를 받은 지주 서인섭에 맞서, 소작료 인하 싸움을 벌여 승리했다.

대동마을엔 '착한 지주' 서치규의 공적을 기려 소작인들이 1933년 세운 영세불망비도 있다. 비슷한 시기에 악덕 지주와 착한 지주가 공존한 섬이 매화도였다.

학동 삼거리서 황마도를 거쳐 마산도로 이어지는 노둣길도 멋스럽다. 길은 '모세의 기적'처럼 하루 두 번 썰물 때 열린다. 노두의 길이가 꽤나 길다. 물때를 맞추면 노두 위로 찰랑거리는 바닷물 사이로 건널 수 있다.

옛 노두의 흔적도 주변에 남아 있다. 갯벌의 높낮이를 보고, 비교적 단단한 뻘을 찾은 탓에 S자로 놓여 있다. 바닷물이 온순한 날, 주민들이 노둣돌을 뒤집고 닦기도 했던 노두다.

노둣길 양쪽으로 펼쳐지는 갯벌도 흥미진진하다. 칠게의 먹방, 짱뚱어들의 운동회가 눈앞에서 펼쳐진다. 바닷물이 드나드는 갯고랑의 곡선미도 유려하다. 운이 좋으면 갯벌에서 맨손으로 낙지를 잡는 마을 어르신도 만날 수 있다.

황마도에서 또 하나의 노두를 건너면 마산도에 닿는다. 갯벌도, 노두도, 사람도 모두 귀하고 소중한 매화도다.

이돈삼/여행전문 시민기자․전라남도 대변인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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