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2월 16일(목) 16:11 |

지난 14일 광주 동구 충장로 인근 버스정류장. 점자블록이 끊어지는 등 관리가 절실하지만, 보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외출할 때면 의지할 수 있는 건 점자블록 하나 뿐인데… 제대로 관리가 안 돼 부딪히거나 다치기 일쑤입니다."
시각장애인의 이동 안내와 안전을 위해 설치한 점자블록이 되레 교통 약자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
설치된 점자블록이 파손되거나 규정을 지키지 않은 채 설치되는 등 시각장애인에게 안전사고 위험과 불편을 초래하고 있지만, 좀처럼 유지·보수가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시각장애인협회는 시각장애인 중심의 민원 절차 개선 등 행정당국의 꾸준한 관심이 필요하다고 하소연한다.
지난 12일 광주 서구 쌍촌동 인근 횡단보도.
시각장애인을 위한 황색 점자블록이 설치돼 있지만, 색이 다 벗겨져 곳곳에 회색빛을 띄고 있다. 그나마 남아있는 황색은 주변 인도와 색이 같아 자세히 보지 않는 이상 구분이 힘들었다.
황색의 과다사용도 문제다.
국토교통부 '도로 안전시설 설치 및 관리지침'에 따르면, 점자블록 설치의 경우 돌출 부분을 포함한 전체 색상은 황색 사용이 원칙이지만, 주변 바닥재가 황색과 비슷할 때는 상황에 따라 색상을 달리하도록 안내 돼 있다.
시각장애 2급인 황모(42) 씨는 "지금이야 익숙한 곳으로 다니니 괜찮지만, 처음에는 횡단보도 주변이 온통 노란색인 탓에 한번 건너려면 긴장을 정말 많이 해야 했다"며 "저시력 장애인들을 위해 녹색 등 형광색 계열로 바꿔주기만 해도 고충이 해결될 텐데 한참 동안 이 상태가 유지되고 있다"고 토로했다.

지난 12일 찾아간 광주 서구 쌍촌동 인근 도보블럭과 점자블록이 같은 색을 띄고 있어 설치 이유가 무색해졌다.
광주 동구 일대 점자블록도 관리가 시급한 상황이다.
지하철역과 지하상가에서 나온 뒤 따라간 점자블록은 몇 발자국 채 가지 못하고 뚝 끊어졌다. 방향 전환을 위해서는 정지, 경계, 방향 등을 전달하는 점형블럭이 있어야 하지만, 보행 방향 안내를 위한 선형블록만 남아있어 설치 의미가 무색해졌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 설치된 점자블록도 잘못된 규정으로 설치돼있어 문제가 제기된다. 기자가 입구에서부터 설치된 점자블록을 따라가니 중간쯤 다다라서 한 시설물에 어깨를 부딪혔다.
점자블록 반경 20㎝ 이내에는 어떤 장애물도 없어야 하는 규정(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이 지켜지지 않고 있는 셈이다.

지난 14일 찾아간 광주 동구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점자블록이 시설물과 인접해 설치돼있어 시각장애인 통행에 위험과 불편을 야기하고 있다.
이 같은 문제가 오랜 기간 방치되고 있는 것은 각 구 등 행정기관 내 시설 관리 인원의 부족과 주 이용자인 시각장애인들이 제보할 수 있는 마땅한 민원 체계가 없기 때문이다.
16일 광주시에 따르면, 각 구마다 '도로 순찰 및 관리' 명목으로 인원을 배치(△동구 6명 △서구 6명 △남구 7명 △북구 8명 △광산구 12명)하고 있으나 그 수가 적어 관리에 한계가 있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구가 민원 제보를 통해 정비를 진행하지만, 그마저도 시각장애인에게는 녹록지 않다.
광주시각장애인연합회 문정관 팀장은 "광주 시각장애인 수가 7290명이다. 이들 상당수가 볼라드나 점자블록 등으로 매일같이 불편함을 느낀다"며 "그럼에도 애로 사항을 어떻게 전달해야 하는지 모르는 시각장애인들이 태반"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어, "국민 신문고나 안전 신문고를 통해 민원을 제기하려 해도 사진을 찍어 올려야 하는 등 시각장애인들 입장에서 전혀 고려되지 않은 점이 많아 어려움이 있다"며 "주 이용자가 시각장애인인 만큼 행정당국에서 이들의 환경을 고려한 민원 체계 개선을 고민해 주길 소망한다"고 덧붙였다.
현재 5개 구는 △전화 민원 △국민 신문고 △안전 신문고를 통해 도로(보도) 불편 사항을 신고받고 있다. 하지만 지난 2년간 점자블록과 관련해 들어온 민원은 단 3건에 불과했다.
광주시 관계자는 "시스템이 늘어나면 관리가 어려워 현시점에서는 기존 민원 체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다"며 "국민 신문고나 안전 신문고의 경우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 민원을 신청할 수 있는 만큼, 음성 지원 등 시각장애인의 편의에 맞춘 앱 개선이 이뤄진다면 이 문제도 일부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고 했다.
이어, "당장 수리·교체가 필요한 점자블록들은 순찰 인력을 강화하여 정비하겠다"며 "이후에도 불편 사항이 생기면 즉각 해결할 수 있도록 지속적인 관심을 갖겠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관심을 갖겠다는 말 외에 뚜렷한 대안은 어디에도 없었다. 생명의 위협과 일상의 공포로 속이 타는 것은 그저 시각장애인들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