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09월 27일(월) 13:43 |
영산강은 남도문명의 발상지이자 남도민의 삶터였다. 350리 강을 타고 내륙 깊숙이 들고나는 갯물을 따라 목포에서 광주 서창 일대까지 배들이 다녔다. 200여 개가 넘는 포구가 자리 잡았다는 기록이 이를 말해준다. 그러한 영산강이 근대화가 진행된 지난 100여 년 동안 모질고 험한 수난을 당했다. 일제강점기 목포에서 영산포를 거쳐 경부선으로 이어지는 호남선 철도가 놓였다. 5‧16쿠데타 이후 영산강 상류 지역에 장성·담양·나주·광주댐이 들어섰다. 1980년 5‧18광주민중항쟁이 일어난 이듬해 영산강 하굿둑이 건설됐다. 영산강의 수난은 이명박 정권의 4대강 사업으로 극에 달했다.
●영산강 생태복원 '남도의 미래' 이끌어야
4차 산업혁명에 경도된 사회적 분위기다. 생명의 땅 전남은 이제 생태문명의 전환을 통해 남도의 미래를 도모해야 한다. 남도민의 정서적 원형과 심리적 치유공간인 영산강은 생태복원을 통해 새로운 성장 동력을 담보할 수 있다. 영산강은 농어업의 부가가치를 높이고 항구와 수변도시, 역사문화·관광벨트 구축, 일자리 창출과 연안과 해양기능 조성 등 '전남형 4차 산업혁명'을 가능케 하는 남도의 보고다. 시화호가 상징적 사례다. 시화호 일대는 세계적 수준의 수변정원 등 생태자원과 경기도가 추진하는 그린뉴딜정책을 연계해, 전형적인 제조업 중심 산단에서 첨단산업 중심의 생태도시로 혁신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스웨덴 함마르비, 싱가폴 클라키, 일본 요코하마 미나토미라이21이 수변을 끌어들여 도시재생과 함께 경제적 특수효과를 이끈 대표적인 경우다.
지난 2017년 대선에서 부산시는 시민사회와 적극적 거버넌스를 통해 낙동강 하굿둑 시범개방을 대선 국정과제로 채택시켰다. 현재 범정부 차원에서 환경부를 중심으로 낙동강 생태복원이 진행중이다. 낙동강 하굿둑 실증실험 과정에서 회귀성 어종들이 돌아오는 등 괄목할 만한 강의 회복력도 확인했다. 한정된 짧은 해수유통만으로도 죽어가는 강을 다시 살릴 수 있고 강물은 흘러야 한다는 간명한 생태질서에 답이 있음이 증명됐다.
수질이 4대강 중 가장 좋지 않은 영산강 복원의 핵심 수단은 부분해수유통이다. 이치수 기능을 하는 하굿둑은 해일과 홍수 예방을 위해 존치가 불가피한 일이다. 수질개선을 위해 해수유통을 하되 해수유통 구간인 기수역을 정하고 과학적 수단인 수치모델과 해수터널을 통해 그 양을 조절하면서 네덜란드를 비롯한 유럽 사회처럼 강의 다원적 기능을 복원해야 한다. 영산강 복원과 관련해서는 지역사회의 이견이 있다. 해수유통 시 예상되는 농업용수와 어장피해 가능성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하굿둑 개방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없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현상이다. 영산강 복원의 현실적 대안은 부분해수유통이다. 해수유통량을 조절하면서 강을 살리자는 것이다.
낙동강 사례처럼, 영산강 하구에서 15㎞ 정도까지 해수를 유통할 경우, 수질개선과 농업용수 공급을 위한 담수기능을 유지할 수 있다. 영산강 해수유통은 농업용수 문제와 어장오염 가능성에 대한 기본적인 해결을 전제로 출발한다. 연간 필요한 농업용수 총량조사와 함께 상류로부터 수질이 개선된 농업용수를 공급할 수 있다. 영암호와 금호호의 담수공급 방안도 하구축조 선진국인 네덜란드의 하구호에서 이미 실행하고 있는 방법을 활용할 수 있다. 하구둑에서 15㎞에 이르는 넓은 기수역은 수질개선과 생태계복원 효과는 물론 홍수 시 급격한 담수공급에 의한 바다 어장오염을 방지해 주는 완충역할이 가능하다.
●준설 보다 미·일 등 댐 해체 기조 반면교사 삼아야
전남도가 우려하는 수위상승과 염수침투는 12㎞~15㎞ 지점의 염수압력센서에 연동돼 있는 해수터널의 전자조절갑문으로 해결될 수 있다. 이 경우 하구호의 이치수기능은 물론 생태환경 및 관광기능의 복원과 장차 도래할 '5차산업' 시대를 준비할 수 있다. 이를 위해 영산강 복원과정에서 희생자와 피해자가 나오지 않도록 공론화를 거치는 것이 중요하다.
MBC PD수첩 등이 지난 7월28일부터 8월20일까지 낙동강과 금강물을 채수해 녹조 독성물질인 마이크로시스틴 조사를 진행했다. 마이크로시스틴은 청산가리의 최대 200배에 이르는 독성과 간암 등을 일으킬 수 있는 독성물질이다. WHO와 미국 환경청은 20ppb 이상 시 물과 접촉금지를 권고했다. 2016년 미국 플로리다주 녹조발생 당시 주지사가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공병대를 녹조 제거에 투입시켰다.
한국농어촌공사는 2016년 벼를 대상으로 녹조 독성실험을 통해 농작물이 안전하다고 발표했다. 녹조에 대한 사회적 불안심리를 잠재우려는 의도였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식물에 독소가 흡수된다며 반박했다. 올여름도 녹조가 발생했다. 녹조는 수돗물을 펌핑하는 취수장과 농업용수를 공급하는 양수장도 비껴가지 않는다. 영산강 수질은 4등급으로, 4대강 가운데 가장 좋지 않다. 이러한 영산강물을 농업용수로 이용하고 있다. 녹조가 발생하는 물을 농업용수로 사용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지 객관화가 필요하다.
전남도는 애초 영산강하구관리센터 건립을 대선 국정과제로 제시했다. 하구센터를 통해 준설 등 영산강의 현안을 해소하겠다는 전남도의 오랜 입장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영산강 하구 퇴적물은 중금속 오염이 아닌 유기오염이다. 영산강 유역엔 중금속을 배출하는 산단이 없다. 중금속 오염이 없는 영산강은 해수유통을 통해 강 복원이 용이한 특장이 있다. 이에 준설은 대안이 아니라는 게 시민사회의 중론이다. 당장의 예산확보도 어렵고, 장기적으로도 준설비용을 감당할 수 없다.
지난 2006년 광주전남연구원과 광주과기원의 연구조사에서 제시된 준설비용 추산액이 당시 기준으로 1조3000억원이었다. 준설토 투기장 조성과 처리비용 등은 반영되지 않은 수치다. 준설이 대안인지 지역사회의 우려가 깊다. 천문학적 예산을 투입해 반복적으로 시행해야 하는 사업이니 더욱 그렇다. 퇴적토를 긁어내는 준설은 생태계에 2차 피해를 야기한다. 팔당댐 준설 논란이 반면교사다. 유기물은 해양생물의 먹이원이다. 네덜란드 피어스호나 하링블리에트호의 경우도, 해수유통을 통해 하구 퇴적물의 유기오염 문제를 해결한다. 해수 속 대량의 미생물들이 유기물 분해와 물질 순환에 뛰어난 역할을 한다. 댐의 나라인 미국, 일본 등이 생태계 복원을 위해 1500개 댐을 해체하는 까닭이다.
충남 역시 금강 생태복원이 주요현안이다. 금강과 영산강은 하굿둑에 가로막혀 있다. 이 두 강이 해수유통을 통해 복원된다면 호남과 충남을 비롯한 서남해안 어장생태계는 생물다양성 유지 등 새로운 성장의 전환점을 마련할 수 있다. 강의 환경생태 문제는 특정지역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강과 바다 전체를 놓고 통합적으로 바라보아야 하는 이유다.
금강하굿둑 축조 이전 바다와 소통을 하던 당시엔 밀물과 썰물에 의해 금강의 황톳물이 연평도와 흑산도까지 교류됐다. 하굿둑 건설 뒤 회귀성 어류가 감소해 관련 수산업이 붕괴됐다. 뭍의 영양염류가 바다와 섞이지 못해 강은 썩고, 수질은 악화됐다. 기수생태계 단절과 갯벌 생태계 사막화를 야기했다. 한강, 금강, 만경강, 영산강 등이 함께 살아 숨 쉴 때, 강과 바다가 지속가능성을 유지할 수 있음을 증거한다.
●전남도 '영산강 생태복원' 대선국정과제 추진 '환영'
통상 100대 과제라는 범주로 제한되는 것이 대선 국정과제다. 경쟁은 극심하고 치열하다. 그런 만큼 정치적 메커니즘을 잘 운용해야 한다. 영산강·금강 생태복원은 동일현안이다. 자치단체 간 경계를 뛰어넘는 탄력적 정책연대와 행정적 협력은 정치적 슬기다. 호남과 충남이 초광역 대선 국정과제로 채택시킬 수 있도록 영산강·금강 생태복원을 정책범위로 포괄하고 해수유통, 하구관리센터 건립 등 각 유역별 현안들을 주요과제로 제시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정부가 강의 통합적 운영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도 주시해야 한다.
전남도는 이번 대선 국정과제 수립을 행정중심으로 일관했다. 대선 국정과제 발굴의 필수적 구성요소인 공론화 과정을 배제했다. 강의 생태복원은 관 주도로 개발할 때와 달리 사회적 논의와 합의에 따라 성패가 결정된다. 강의 개발로 형성된 이해관계 조정은 기본적 절차이자 행정행위다. 강 복원을 위해선 인간의 개입을 최소화하고 강 스스로 회복해 갈 조건을 열어놔야 한다. 영산강 생태복원 대선 국정과제와 관련해 전남도가 공론화 과정없이 일방적으로 결정해선 안되는 이유다.
영산강살리기네트워크, 영산강하구기수복원협의회, 빛고을하천네트워크, 금강하구생태복원위원회, 금강유역환경회의 등 150여 개 시민단체는 지난해부터 4대강 재자연화운동을 주도한 인사들과 학계, 연구기관 등 전국단위 전문가들로 거버넌스를 구성한 나주시민관공동위원회 산하 영산강위원회와 함께 초광역 대선 국정과제로 영산강·금강 생태복원을 공동으로 채택하기 위해 협력하고 있다. 시민사회는 오는 10월 그동안 공론화 과정을 총화하는 자리를 준비 중이다. 기초·광역단체·의회·시민사회가 민관공동으로 주최하는 토론회다. 강을 둘러싼 우리 사회의 오랜 혼란을 극복할 수 있는 초광역 단위 공론장이다.
대선 국정과제로 영산강하구관리센터 건립을 고수하던 전남도가 지난 16일 해수유통을 통해 영산강 생태복원을 추진하겠다고 전격 발표했다. 시민사회는 김영록 전남지사의 정책결정을 진심으로 환영한다. 동시에 전남도가 공론장에 적극 나설 것을 촉구한다. 통합물관리는 국정의 핵심과제로 지역별·기관별로 대상화할 정책이 아니다. 민관공동으로 초광역 대선 국정과제 채택을 추진하는 배경이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