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안법 폐지 공은 국회로…17년만 논의 재개
노무현 전 대통령 "박물관 보내야"||2004년 첫 개폐 논의…장기 표류 ||보수 반발·진보진영도 입장차 ||"구체적 일정 아래 현실화시켜야"||
2021년 05월 20일(목) 18:26 |
![]() 국가보안법 폐지 광주시민행동이 20일 광주 동구 광주YMCA 무진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가보안법 폐지를 위해 정부·국회가 적극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국가보안법 폐지 광주시민행동 제공 |
국회 국민청원 성립 동의 요건을 갖추면서 국보법 폐지를 위한 공은 다시 정부와 정치권으로 향하고 있다. 국보법 폐지를 위한 정치권의 움직임도 있다. 현재 국가보안법 개정안이 계류 중이며, 국보법 폐지 특별법 발의를 위한 준비도 이뤄지고 있다.
● "박물관 보내야 할 법" 17년째 표류
국보법을 손대려는 시도는 사실 그간 꾸준히 있었다. 2004년 참여정부 시절 가장 활발했다. 당시 정부 차원에서는 처음으로 국보법 폐지를 추진했다.
그 해 9월 노무현 대통령이 MBC '시사매거진 2580'에 출연해 "국가보안법이라는 낡은 칼을 칼집에 넣어 박물관으로 보내야 한다"며 의지를 드러냈고, 정부는 국보법 개폐 추진을 발표했다. 이는 국가인권위원회가 1년여 간의 검토 끝에 국보법 폐지를 권고한 데 따른 것이기도 했다.
그해 4월 총선을 통해 구성된 17대 국회에서 여당인 열린우리당이 과반 의석을 차지하면서 국보법 폐지 추진 동력도 얻은 상태였다.
당시 열린우리당 최용규 의원이 대표 발의한 국보법 폐지 법안엔 150명이 서명했고, 민주노동당 노회찬 의원이 대표 발의한 국보법 폐지 법안에도 10명이 서명하는 등 국보법 폐지에 국회 과반의 공감대가 형성돼 있었다.
하지만 순풍은 오래 이어지지 않았다. 당시 한나라당을 새롭게 이끌게 된 박근혜 대표가 국보법 폐지는 물론이고 개정에도 난색을 보이면서다.
보수진영의 반발에 이어 진보진영 내에서도 입장차가 엇갈리면서 진척을 보지 못했고, 결국 '박물관에 가야 할 법'은 17년째 표류했다.
● 공은 국회로…다시 불붙는 논의
국보법 폐지는 다시 정부와 국회로 공이 넘어갈 전망이다.
국회 국민청원 성립 동의 요건인 10만명을 열흘 만에 넘기면서 국보법 폐지 논의에 다시 불이 붙고 있다.
30일 내 10만명 동의를 받은 법안은 반드시 소관위원회 및 관련위원회에 회부돼 국회 심사를 받게 돼 있다. 이제 국보법을 개정하거나 폐지하는 문제는 정부와 여당의 결단에 향방이 달려 있는 셈이다.
현재 국회에는 이규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국가보안법 개정안이 법제사법위원회에 상정돼 있다. 고무·찬양죄를 규정한 국가보안법 7조를 삭제하는 내용이다. 이와 함께 같은 당 민형배 의원도 국가보안법 폐지 특별법을 준비하고 있다.
정의당도 당론으로 국보법 폐지를 확정했다. 강은미 의원이 역시 준비를 마치고 발의를 앞두고 있다.
민형배 의원은 "시민사회의 10만인 뜻을 받들어 최대한 빠른 시일 내 법률안을 발의하고 조속히 저리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강은미 의원실 역시 "일제강점기에 뿌리를 둔 악법이 현존한다는 것 자체가 우리나라 민주주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라며 "국민들의 성숙한 여론이 하나로 집결된 만큼 정부와 국회가 적극적으로 나서 해결의지를 보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 피상적 논의 넘어 적극적 의지 보여야
관건은 여당의 강력한 추진의지다. 국가보안법 폐지에 부정적인 야당이 국민 청원 접수에도 불구하고 논의를 차일피일 미룰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서다.
21대 국회에서 30일 이내 10만명 이상 동의를 얻은 국민동의 청원 13건 가운데 입법 심사대에 오른 청원은 단 3건에 불과하다.
실제 본회의까지 상정된 경우는 지난 2020년 10월31일 접수된 '416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위한 사회적 참사의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 개정에 관한 청원' 뿐이다.
따라서 180석 가까운 의석을 확보한 현 시점에 반드시 국가보안법 폐지가 이뤄질 수 있도록 여당이 적극적 추진 의지를 보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국가보안법 폐지 광주시민행동 박성진 실행위원장은 "국가보안법의 폐기는 논의차원을 넘어 구체적 일정 아래 하루라도 빨리 현실화시켜야할 사안"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문재인 대통령이 선거 당시 대표적인 독소조항인 7조만이라도 반드시 폐지하겠다고 약속했고, 국회 역시 180석에 가까운 거여 상황으로 의지만 분명하다면 못해낼 일도 아닐 것"이라며 "정부와 여당이 피상적 논의 수준을 넘어 구체적 일정을 확정하는 등 당 차원의 추진 의지를 분명히 보여야 한다"고 말했다.
김진영 기자 jinyoung@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