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힘·김경수> 트로트의 융합이 주는 교훈
김경수 전남대 문화전문대학원 교수
2021년 03월 22일(월) 14:48
김경수 전남대 문화전문대학원 교수
코로나 팬데믹 속에서 트로트 르네상스 시대가 열렸다. 주목할 점은 지난 수십 년 간 외국 음악과 아이돌그룹 등에 밀려 전통시장과 시골 구석으로 내몰리던 트로트가 TV 경연 프로그램을 계기로 전 국민적인 사랑을 받게 된 것이다. 그 주체는 TV조선의 '미스·미스터 트롯'이다. 시중에는 "조선일보는 미워도 TV조선은 본다"라는 말이 나돌 정도의 큰 성과였다. 이것은 트로트의 성공 이유를 노래만으로 한정할 수 없다는 방증이다.

성공의 원인은 인간이 느끼는 감각, 즉 오감(시각, 청각, 후각, 촉각, 미각)에서 찾을 수 있다. 이중 미디어는 청각과 시각만 해당된다. 먼저 청각적 요인에는 트로트의 음계와 노랫말이 있다. 음계는 일재강점기에 엔카(演歌, 연가)의 아류라는 주장과 미국 폭스트롯의 영향과 우리 민요, 꺽기 창법 등을 혼합한 한국 음악이라는 주장으로 갈린다. 트로트 음악인류학 박사인 손민정 교수는 "일본의 엔카는 유구한 전통으로 포장하는데, 우리의 트로트는 자기비하를 해서 울분이 터진다"며 "트로트는 일본과 서양 음악, 한국적 가창, 그리고 시대별 대중음악을 흡수한 한국 음악"이라고 소개했다. 또한 가수 나훈아는 트로트의 새 명칭으로 '아리랑'을 제안했다.

트로트의 매력은 노랫말에 있다. 문학가인 이어령 교수는 "우리 민족은 하나의 겨레인 한(韓)민족인 동시에 한이 많은 한(恨)민족"이라고 했다. 한에는 길고 긴 사연, 즉 스토리가 담겨있다. 이를 백 년 이상 노래한 것이 트로트다. 이것의 특징은 다른 음악에 비해 템포가 느리고 또렷한 발음에 있다. 어쩌면 시청자들은 노랫말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우리 노래가 있다는 소중함을 이제서야 발견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미스 트롯이나 나훈아 쇼가 가진 차별성은 청각이 아닌 시각에 있다. 시각적 요인은 크게 인적 요인과 그 외 요인으로 나뉜다. 인적 요인은 ①가수와 ②평가자, ③온라인 시청자로 구분된다. 예컨대 젊은 여성과 어린이 가수들, 댄스와 퍼포먼스가 대표적인 시각적 요인이다. 물론 '상금'과 '경쟁'이라는 포맷이 시각적 몰입감을 더했다.

그 외 시각적 요인으로는 ①무대 배경과 ②영상편집, 그리고 ③소셜미디어 등이 있다. 무대 배경은 가수를 받쳐주는 초대형 LED 스크린의 수려한 영상이 중심이다. 그 좌우와 반대편에는 수백 개의 온라인 디스플레이가 실재 방청객 못지않은 분위기를 조성한다.

편집 요인은 강력한 시각적 요인이다. 녹화 영상을 통째로 삭제할 수 있고 특정 장면을 확대 또는 집중할 수 있다. 예컨대 노래 한 소절의 반복과 평가자의 감동 장면, 가수의 비하인드 스토리 삽입, 여기에 대중의 설득을 위한 자막 편집이 결과를 좌우한다.

마지막 시각적 요인은 유튜브, 포털 등 소셜미디어의 확산이다. 여기에서 주목할 점은 본 방송 직후에 바로 영상들이 올라온다는 사실이다. 밀레니얼 세대들은 기성세대와 다르게 TV가 아닌 모바일에서 프로그램을 즐기고, 1시간이 넘는 방영 시간을 기다릴 인내심이 없다는 점을 적극 반영한 것이다.

위와 같이 트로트의 성공 요인은 청각의 자산과 다양한 시각적 볼거리의 융합이다. 지금까지 아시아문화전당이나 광주비엔날레의 콘텐츠가 시민들의 관심을 받지 못한 이유 중 하나는 자산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시각과 청각의 융합과 도전'이 부족한 것이다. 기존의 정적인 미술, 시각성이 부족한 음악과 공연의 반복으로는 대중의 사랑을 받기 어려운 시대이다.

왜 광주가 예향인가? 보석 같은 예술이 많기 때문이다. 광주는 왜 유네스코 지정 '미디어아트 창의도시'인가? 미래가 1인 미디어 시대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예향의 다양성을 바탕으로 대중성의 균형을 맞추고, 아날로그 예술과 디지털 기술을 융합할 수 있는 리더 선정과 인재 육성이 핵심이다.

공자의 논어에 '근자열 원자래(近者說遠者來)', 즉 '가까이 있는 사람을 기쁘게 하면 멀리 있는 사람이 찾아온다'라고 했다. 트로트가 주는 교훈처럼 광주의 문화예술이 작가 중심이 아닌 '시민 중심'이라는 본질에서 시작한다면 외부에서도 찾아오는 '광주 문화예술의 르네상스 시대'가 열릴 것이다.

편집에디터 edit@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