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쇄지의 변신… 매립 대신 하나의 공예품으로
■9번째-‘생활문화공예 리빙랩’||김미희 한지 공예작가 주도로 의제 발굴||나주혁신도시 공공기관에서 나온 폐종이||나주시민들 손에서 공예작품으로 재탄생||日 폐종이 발생 889톤 “재사용 고민해야”
2020년 11월 22일(일) 15:56

언텍트 문화 확산으로 쓰레기 대란이 오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현실화되고 있는 가운데 전남사회혁신플랫폼의 폐종이를 활용한 공예 프로그램이 눈길을 끌고 있다.

지난 23년 동안 한지공예 활동으로 이어온 김미희 작가가 발굴한 '생활문화공예 리빙랩'은 쓰레기 발생량이 증가하고 있는 코로나 시대에 꼭 필요한 의제다.

나주시민 대상으로 3회에 거쳐 공예 프로그램을 진행한 김 작가는 "종이 공예가 쓰레기 발생량을 줄이고 업싸이클링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공공기관 파쇄지 모아 문화 프로그램 마련

'생활문화공예 리빙랩' 의제 활동에 참여하는 나주시민들이 공예수업을 듣고 있다.

환경부가 발표한 '전국 재활용자원 1일 발생량'에 따르면, 올 상반기 폐종이 발생량은 하루 889톤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29.3%나 급증했다. 이렇게 쉽게 쓰고 버려지는 종이는 1톤당 나무 20그루를 살리고, 물 28톤, 이산화탄소 500톤을 줄일 수 있다.

폐기물의 급격한 증가 원인은 언택트 소비문화 확산이 꼽힌다. '코로나19' 확산으로 배달이 늘면서 포장재 폐기물이 늘고 있는 것이다.

공공기관이 밀집한 나주혁신도시의 고민도 크다. 보통 파쇄 종이를 모아 처리업체에 되파는 과정을 거치는데 환경적으로도 금액적으로 부담이 되기 때문이다.

이에 전남사회혁신플랫폼이 나섰다. 나주시민들을 대상으로 종이 공예 프로그램을 마련한 것이다. 환경보호에 앞장설 뿐 아니라 시민들의 문화생활까지 두 마리 토끼를 잡으면서 성공적인 의제 활동으로 평가받고 있다.

나주시민들 손에서 재탄생한 공예작품들은 오는 11월 말 나주혁신도시에 있는 한전KPS 본관 1층에 전시될 예정이다.

●그릇, 브로치 등 변신 무한해

나주시민들 손에서 재탄생한 종이 공예 작품.

3차례에 걸쳐 수거한 파쇄 종이는 총 50L 봉투로 10여 개가 나왔다. 지난 9월과 10월 나주시민 20여명을 대상으로 '생활문화공예 리빙랩' 공예 수업이 진행되면서 파쇄 종이는 공예품으로 재탄생했다.

종이 공예는 △종이 반죽 △틀 잡기 △황토, 치자 천연염색 칠 △말리기 등의 과정을 거친다. 보통은 한지를 이용하지만 김 작가의 아이디어로 파쇄 종이를 활용하게 됐다.

정성의 손길을 여러 번 거치면 비로소 단단한 하나의 작품이 된다. 종이라고 해서 물에 젖거나 쉽게 구겨질 것을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단단한 그릇, 도자기와 같은 생활용품은 물론 클러치 등 액세서리까지 종이의 변신은 무한하다.

김 작가는 "공공기관에서 나오는 파쇄 종이로 공예를 한다고 하니, 학생들이 낯설어하면 어쩌나 고민이 많았다. 그런데 이번 공예 수업에 참여하는 학생들 열의가 대단했다"며 "학생들이 시도한 창의적인 색감, 모양 등이 기억에 남는다. 오히려 아이디어를 얻곤 했다"고 말했다.

의제 '생활문화공예 리빙랩'에 참여한 수강생 한주랑씨는 "쓰레기로 버려지는 종이를 이용해 일상생활에 필요한 물건을 만드는 과정이 기억에 남는다"며 "나는 브로치를 만들었는데, 이번 기회에 종이 공예에도 관심이 생겼다. 앞으로 기회가 생긴다면 또 참여하고 싶다"고 말했다.

●"지역 예술인 돕고 싶어"

김미희 작가는 공공기관에서 나온 파쇄 종이를 활용해 공예품을 만드는 의제 '생활문화공예 리빙랩'을 발굴했다.

환경보호를 위한 공예 말고도 김 작가가 더 나은 사회를 위해 고민하는 일은 한 가지 더 있다. 지역 예술인을 위한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는 것이다. 김 작가는 "전남사회혁신플랫폼이 상설화되면 다양한 기관들의 자원이 지속해서 연계되면서 사회 공헌활동이 더 쉬워질 거라 믿는다"고 말했다.

김 작가는 남들보다 뒤늦게 작가 대열에 합류했다. 평범한 주부에서 한지공예의 예술인이 되기까지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김 작가가 맨 땅에 헤딩하듯 예술을 시작한 청년들을 돕고 싶은 이유다.

어느날 어린 자녀가 다녔던 유치원에서 엄마들을 대상으로 한지공예프로그램을 운영한다고 했다. 관심이 생겨 꾸준히 수업을 들었더니 어느 날 강사가 "더 가르칠 것이 없으니 다른 곳을 찾아가라"고 했다.

그 말을 들은 이후, 한지공예를 배울 수 있는 곳이면 전국을 돌아다녔다. 주부의 몸으로 한지공예를 하는 장인의 집에서 문하생 노릇을 하기도 했고 대학원에 들어가 한지디자인을 전공했다. 지금 생각하면 무슨 열정이었을까 생각에 잠길 때도 있다고.

반기문 전 UN사무총장, 노무현 전 대통령 관저에 공예품을 만들고 개인전을 반복하면서 김 작가는 어느새 한지공예의 장인이 됐다.

한지와 함께한 김 작가의 평생을 엿볼 수 있는 곳이 바로 지난 2011년 영암군에 마련한 '희 문화창작공간'이다. 한 폐교를 리모델링 한 이 공간은 김 작가가 지역인재를 돕고 싶은 마음으로 마련했다.

현재는 전남도문화재단의 지원사업에 선정돼 매년 청년 및 지역 예술인을 대상으로 레지더시 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또 대관료 없이 전시공간을 내어주고 홍보물을 제작하는 등 하나라도 더 돕고 싶은 엄마의 마음이 가득하다.

김 작가는 "가지고 있는 인프라가 부족한 지역 예술인, 청년 예술인에 든든한 배경이 되고 싶다. 내가 그랬듯 어려운 시대에 예술을 놓지 않고 꾸준히 활동을 이어 나갈 수 있도록"이라며 "상주하고 있는 예술인들을 대상으로 스피치 강연, 글쓰기 강연 등 역량 강화 프로그램을 지속할 예정이다"고 말했다.

도선인 기자 sunin.do@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