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민한의 동시대미술 수첩 >동시대미술은 기억을 어떻게 소환하는가?
장민한 (조선대 시각문화큐레이터 전공 교수)
2020년 10월 20일(화) 14:17

공성훈, 무궁화와 비행기구름 등, 2014

미술비평과 전시기획은 콘텐츠라는 점에서 볼 때 동전의 양면과 같다. 한 작품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즐거움은 다양하다. 예컨대 한 작품에서 삶의 위안을 얻는 감상자도 있고, 이와는 다르게 화면 색들의 극적인 배열에서 즐거움을 찾는 감상자도 있다. 미술비평이 한 작품의 다양한 장점 중 하나를 찾아서 하나의 논리로 작품 가치를 정당화하는 작업이라면, 전시기획은 기획자가 의도한 특정 관점에서 전시된 작품들을 읽어 달라고 요청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비평가든 전시기획자이든 자신이 주장하려는 특정한 예술적 가치가 있어야 하고 이것을 설득할 수 있는 논리가 있는지의 여부가 그 콘텐츠를 평가하는 잣대가 될 것이다.

미술비평이나 전시기획은 작품의 가치를 설명해주고, 작품들을 효과적으로 감상하게 도와주는 보조적인 역할을 수행하지만, 비평이나 전시 콘텐츠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 자체로 또 다른 즐거움을 얻을 수 있다. 비평의 경우 특정 작품을 옹호하는 논리가 설득력이 있는지를 따져보고, 전시기획의 경우 참여 작품을 묶을 수 있는 전시 주제는 무엇인지, 혹은 그 주제가 작품들의 가치를 적절하게 부각하고 있는지 살펴보는 것도 흥미 있는 일이다. 광주시립미술관에서 진행되고 있는 <별이 된 사람들>전(20. 8. 15. ~ 21. 1. 31.)을 이 측면에서 살펴보려고 한다. 이 전시는 5·18 광주민주화운동 40주년을 맞이하여 5·18정신을 재조명하고자 하는 취지로 개최되었다. 해외작가 5명(팀)을 포함하여 작가 24명(팀)의 작품이 선보이고 있다. 5·18광주민주화운동 희생자들을 추모하여 그들을 하늘의 별로 형상화한 회화 작품부터 시리아 내전의 참상을 담은 영상작품까지 '국가 폭력과 그에 대한 개인의 기억'을 다채로운 형식으로 보여주고 있다.

동시대미술의 핵심은 특정 기억을 어떻게 소환하느냐에 달렸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오늘날 작품은 순수 미적 경험 자체를 주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작가가 의도한 특정 경험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 변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 동시대 작가들의 작업은 색깔, 형태, 재질, 소리, 냄새 등을 불러일으키는 특정 매체를 이용하여 작가가 의도한 기억을 소환해내고 구축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만약 세간에서 뛰어난 작품이라고 평가하는데 본인만 납득이 안 된다면, 자신이 미적 감수성이 떨어져서 그런 것이 아니라 그 매체가 주는 기억을 작가와 공유하지 못해서 그런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마디로 동시대미술은 다양한 매체를 이용하여 특정 기억을 소환하고, 작가가 의도한 대로 새롭게 기억하도록 구축하는 놀이라고 할 수 있다. 작가는 작품을 제시한다는 것은 이 놀이에 관람객을 초대하는 것이다. 관람객이 이 놀이를 즐기려고 한다면 그 놀이의 규칙을 잘 이해하고 참여하면 되는 일이다.

그런데 이 놀이가 단순한 놀이로 끝나지 않고 우리에게 더 유익한 이유는 내가 겪지 못했던 삶을 이해하고 그들과 기억을 공유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기 때문이다. 작품 감상은 우리의 삶 공동체를 굳건하게 만드는 촉매제가 된다. 다른 어떤 소통 수단보다 동시대미술은 다양한 매체를 통해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삶의 내용과 방식을 효과적으로 공유하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작가들은 회화, 영상, 오브제, 소리 매체 등을 이용하여 우리가 공유해야 할 삶의 가치를 다양한 방식으로 전달하고 있다. 이번 전시에 소개된 작품 중, 기억을 소환하는 데 초점을 맞춘 몇몇 작품들을 소개해보겠다. 동시대 작가들이 자신의 기억을 어떻게 관람자와 공유하는지 살펴보자.

정정주 작가는 설치 작품인 <응시의 도시_광주>(2020)을 통해 작가 자신이 초등학교 5학년 때 겪은 5.18 기억을 소환한다. 그는 '구 도청과 상무관' 모형을 제작하고, 그 안에 카메라를 설치하고 그 이미지를 벽면에 투사한다. 이를 통해 어린 시절의 공포 기억을 객관화하려고 시도하고 있다. 자신의 겪었던 잊지 못할 암울한 경험을 미니어처의 투사물 형태로 보여줌으로써 역사적 사건의 하나로 거리 두기를 시도하고 있다. 부부 작가인 뮌(Mioon)은 설치작품 <오디토리움_광주>(2020)에서 광주 거리 이미지, 그리고 움직이는 기계나 동물 모형의 이미지를 원형 극장의 불투명한 그림자로 보여준다. 작가들은 점멸하는 수많은 이미지의 그림자로 자신들이 기억하는 광주를 표상하고 있다. 20대 여성 작가 둘로 구성된 장동콜렉티브는 영상설치 작품인 <오월 식탁>(2020)을 통해 5.18 이야기를 젊은이에게 익숙한 '먹방'과 '쿡방' 형식으로 들려준다. 40년 전의 잔혹한 사건이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의 친근한 이웃과 그 삶 속에서 일어났다는 것을 친숙한 소통 형식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 전시에서는 5.18과 직접적인 연관성은 없지만 '국가폭력과 개인의 기억' 문제를 다룬 작품들도 선보이고 있다. 하태범 작가는 영상작품인 (2016)에서 시리아 내전을 흰색 이미지로 보여주고 있다. 특정 개인의 삶을 송두리째 망가뜨린 사건들도 탈색 되어 잊혀지고 있다는 것을 흰색 이미지로 제시하고 있다. 탈색된 흰색 이미지는 우리 삶에서 잊혀져서는 안 되는 사건이 있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연기백 작가는 설치작품인 <푸른 언덕>(2020)을 통해 근대화 역사가 우리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반추한다. 20세기를 살았던 사람들은 누구나 기억하고 있는 자개장에 대한 기억을 소환하여 그 당시 삶이 지니는 의미를 반성하게 유도하고 있다. 공성훈 작가는 <무궁화와 비행기구름>(2014)을 통해 무궁화, 비행기구름 이미지 자체가 아니라 작업 과정에 느낀 작가의 경험을 보여주려고 시도한다. 이 작품에서는 붓질의 흔적을 통해 작가의 기억을 감상자와 공유하고자 한다.

기억의 총체는 바로 '나'이다. 기억하고 있는 바가 그 사람의 정체성을 규정한다. 기억을 공유한다는 것은 특정한 삶의 방식을 공유한다는 이야기다. 친구가 소중한 것은 나와 기억을 공유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는 내가 중요시하는 삶의 가치를 이해한다는 뜻이다. 진정한 공동체란 가치 있는 삶의 기억을 보존하는 공동체, 그리고 그 기억을 새롭게 확장하고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는 열린 공동체이다. 아마 동시대미술이 이 일을 가장 잘 수행하리라고 생각한다.

장민한 (조선대 시각문화큐레이터 전공 교수)

뮌, 오디토리움(광주), 2020

연기백, 푸른언덕, 2020

연기백, 푸른언덕,2020

장동콜렉티브, 오월식탁, 2019-2020, 5채널비디오

정정주, 응시의 도시_광주, 2020

정정주, 응시의 도시_광주, 2020

하태범, 시리아 시리즈,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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