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민한의 동시대 미술 수첩> 미술 담론은 동시대미술 발전에 어떻게 기여하는가?
장민한 (조선대 시각문화큐레이터 전공 교수)
2020년 08월 18일(화) 16:46

배동신 무등산 1960 종이애 수채 광주시립미술관 소장

미술계에서는 오늘날 미술을 현대미술(modern art)라고 하지 않고 동시대미술(contemporary art)이라고 부른다. 두 미술의 차이는 작품의 외양에 있는 것이 아니라 미술을 바라보는 패러다임에 있다. 현대미술이 미이든 추이든 시각적 충격 효과에 기반을 둔 미술이라고 한다면, 동시대미술은 이미지를 통한 소통의 미술이라고 할 수 있다. 미술에서 '담론'이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는 점을 의식하게 된 것도 동시대미술이 등장한 이후이다. 광주시립미술관에서는 광주와 대구 시립미술관 소장품 교류전인 <달이 떴다고>전(2020. 7. 16 ~ 8. 16)이 열렸다. 이 전시를 통해 미술에서 담론이 왜 중요한지, 그리고 지역 미술의 발전을 위해 담론 발굴이 왜 필수적인지 등에 대해 논의해보려고 한다.

담론이란 한마디로 '이유의 담론'(discourse of reason), 즉 특정 작품이 '가치가 있는 이유에 대한 이야기'를 말한다. 미술에서 담론이 왜 중요할까? 이 점에 대해 이야기 해보자. 혹자는 감상자가 자유롭게 작품을 감상하고 감동 받으면 그만인데, "그 작품의 가치에 대한 담론을 아는 것이 감상에 왜 필요한가?" 혹은 "그 담론을 알면 오히려 자유롭게 작품을 감상하는 데 방해가 되는 것은 아닌가?" 라는 의문을 제기할 수가 있다. 이들은 미술작품을 감상하는데 담론이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이들은 미술에 대해 잘못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미술을 말로 기술할 수 없는 그 무엇을 시각 이미지로 표현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예컨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는 형언할 수 없는 인간의 아름다움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몬드리안의 <컴포지션>은 색과 형태의 완벽한 조화를 캔퍼스에 구현하고 있다. 몇몇 사람들은 훌륭한 작품을 제대로 감상하기 위해서는 작품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는 '순수한 눈'이 필요한 것이지, 작품 가치를 말로 설명하는 '담론'은 필요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이 두 작품을 감상하는 데 담론이 필요 없는 이유는 담론이 필요가 없을 만큼 그 자체로 훌륭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이미 이 두 작품의 담론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16세기 초에 제작된 모나리자를 16세기 조선시대에 우리 선조가 감상했다면 어떤 반응을 했을까? 그 작품을 훌륭한 작품이라고 했을까? 그러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떻게 진짜처럼 그렸을까 신기하게 생각할 수는 있어도 훌륭한 작품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몬드리안의 작품도 마찬가지다. 조화롭게 색이 칠해졌다고 했을지는 모르지만 그 작품을 위대한 작품이라고 이야기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우리가 이 두 작품을 훌륭하다고 하는 이유는 이 작품의 가치를 알려주는 담론을 중고등학교 미술 시간에 교육받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동시대미술 시대에 오면 그동안 의식하지 못했던 담론의 중요성을 쉽게 이해하게 된다. 오늘날은 무엇이든지 미술이 되는 시기이다. 우리가 친숙하게 사용하는 일상 용품이 버젓이 미술작품으로 등장하고 있고, 그것을 훌륭한 작품이라고 평가하는 시대이다. 그 일상 용품이 무엇을 의미하고 그것이 왜 예술이 되었는지 설명하는 '담론'을 이해하지 못하면 그 대상을 제대로 감상할 수 없다. 동시대미술 패러다임의 형성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한 뒤샹의 <샘>은 일상의 변기와 동일한 형태를 지니고 있다. 이 작품의 가치는 그 작품의 담론을 알고 있어야만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만약 이 작품의 가치를 변기의 우아한 곡선과 매끄러운 광택 등 시각적 성질에서 찾는다면 그 작품의 탁월함은 뒤샹이 아니라 그 변기 디자이너에게 돌려주어야 한다. 우리는 이 작품의 가치를 그 담론에서 찾고 있다.

또한 오늘날은 컴퓨터와 3D 프린터의 발달로 어떠한 이미지도 원하는 바대로 손쉽게 만들어 낼 수 있다. 레오나르도의 <모나리자>이든 미켈란젤로의 <성모자> 조각이든 마음만 먹으면 진품과 식별할 수 없는 정도로 정교하게 복제가 가능한 시대가 되었다. 이제는 이미지 제작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이미지가 어떤 예술적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제작되었는지가 중요하다. 오늘날에는 다양한 예술적인 목표가 있을 수 있고, 이것을 성취하기 위한 수많은 도전들이 있다. 이 다양한 도전이 오늘날 미술계의 역동적인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일반 감상자들은 이 도전 모두를 알 수 없다. 오늘날 비엔날레 전시에 가보면 예전과 달리 작품에 대한 긴 설명문을 작품과 함께 전시한 것을 볼 수 있다. 그 이유가 바로 그 작품과 관련된 담론을 알려주기 위해서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미술담론에서는 어떤 방식으로 작품의 가치를 주장하는가? 담론의 핵심은 서사(narrative)다. 서사란 글자 그대로 이야기를 말한다. 이야기의 주인공이 어떻게 성장하고 발전했는지에 대한 이야기 혹은 담화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의 가치는 '모방' 서사에 의해 보장받는다. 서구 르네상스 이후 미술가들은 세계를 눈앞에 있는 것처럼 생생하게 모방하려고 노력했는데 이것이 레오나르도 다빈치에 와서 스푸마토 기법으로 좀 더 생동감 있게 모방할 수 있게 되었고, 모방 서사를 한 단계 더 진전시켰기 때문에 <모나리자> 작품은 훌륭한 작품이라고 평가 받을 수 있는 근거를 확보하게 된다. 이와 달리 몬드리안의 <컴포지션> 작품은 '미적인 구성'의 서사를 진전시켰기 때문에 작품의 탁월성을 부여받게 된다.

동시대미술 작가라고 한다면 자신의 작품을 옹호할 수 있는 서사를 염두해두고 창작을 해야 한다. 오늘날은 다양한 목표를 추구할 수 있는 다원주의 시대이다. 이 시대의 작가들은 자신의 작업이 어떤 측면에서 가치가 있는지 생각하고, 이것을 감상자들에게 설명해야 한다. 한마디로 자신의 작업을 옹호해줄 수 있는 서사를 직접 발굴하는 작업을 해야 한다. 그 서사를 설득력 있게 구성하여 관람객들과 소통할 수 있게 된다면 가치 있는 작품으로 평가받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 작업은 비평가의 작업이기도 하지만 동시대 작가들 역시 스스로 자신의 작업 가치를 부여할 수 있는 서사를 생각하고 작업을 해야 한다.

어떻게 보면 위대한 작품을 만드는 일은 그에 적합한 서사를 만들어내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동시대 작가들은 인류 보편적인 가치를 추구할 수도 있으나 문화권마다 다른 미적 전통과 가치가 있고, 이것을 바탕으로 특정 서사를 발굴해낼 수 있다. 새로운 서사의 창출을 통해 특정 작품의 가치를 부여할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이번에 진행되었던 광주·대구 교류전의 의의를 찾을 수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광주, 대구 시립미술관 소장품 중 자연과 심상 풍경을 보여주는 대표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근대 화단을 태동시킨 지역 대표작가부터 현재 활발히 활동 중인 작가의 작품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된 풍경화를 감상할 수 있다. 미술관 관람객들은 자연스럽게 두 지역의 작품들을 비교하게 되면서 두 지역의 작품들이 서로 다른 미적 전통이 있다는 점을 느끼게 된다. 좀 더 관심 있는 관람객들은 전시기획 서문과 에세이에 도움을 받아 광주 풍경화 서사와 대구 풍경화 서사가 다르다는 점을 이해하고 이 서사의 측면에서 전시 작품을 감상하고 그동안 몰랐던 그 작품 가치를 이해하게 된다.

풍경화를 그리는 작가들은 풍경 속에서 자신이 본 것 중 인상 깊은 점을 강조하여 그리기 마련이다. 그 장면을 어떻게 미적으로 강조하여 그리는지는 그 지역의 철학 혹은 감수성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호남 작가들의 풍경 작업에 대한 두 서사를 보여주고 있다. 하나는 소치 허련, 미산 허형, 의재 허백련, 남농 허건으로 이어지는 관념 산수화 서사이다. 남종문인화 전통을 이어받아 사의 중시하면서도 남도의 실제 풍경을 도입하여 발전하는 독자적인 서사를 보여주고 있다. 또 하나는 서구의 인상주의 사조에 영향을 받아 풍광의 순간적인 인상을 화려한 색채로 사실적으로 그려내는 전통의 서사를 보여주고 있다. 오지호를 기점으로 삼아 양수아, 배동신, 손동, 김형수, 김영태, 오승우 등이 그 서사를 풍부하게 발전시키고 있다.

대구는 광주와는 다른 풍경 서사를 만들고 있다. 백두대간 끝자락의 험준한 산악 지역에 자리 잡고 있는 지역적 특성과 대대로 내려온 유교 문화의 영향으로 인해 험준한 자연 풍광을 통해 만물의 실체를 찾아내려고 한다. 그들은 이것을 투박하면서도 묵직한 형태의 자연 모습으로 그려낸다. 이 전통이 영남 근대 서양화가의 태동이라고 할 수 있는 서동진을 거쳐 이인성, 배명학, 김수명, 손일봉으로 이어지고 있다.

우리는 지금까지 언급한 지역 미술 서사 말고 또 다른 서사를 찾아낼 수 있다. 새로운 서사의 발굴은 지역 미술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만드는 기틀을 마련해주기 때문에 작가나 비평가는 항상 새로운 서사의 발굴에 관심을 기울어야 한다. 지역미술관 역시 새로운 서사의 발굴과 확장을 위한 플랫폼 역할을 해야 한다. 지역미술관의 설립목표가 지역미술의 발전에 기여하고, 지역민들에게 미적 향수의 기회를 확대하는 것이라면, 새로운 서사의 발굴은 지역미술관의 최고 목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술관은 새로운 서사 발굴을 통해 기존 작품의 새로운 가치를 찾아내고, 이 방향으로 창작을 유도하여 지역 미술을 풍성하게 만들어야 할 것이다.

장민한 (조선대 시각문화큐레이터 전공 교수)

오지호 吳之湖 Oh Jiho, 1905-1982, 목포항 Mokpo Port, 1966, 24x33cm, 캔버스에 유채 Oil on c_

이인성 Lee Insung 1912-1950 경주풍경, Gyungju Landscape, 1938, 25.5×48.5cm, 종이에 수채_

허달용 하현 2009 한지에 수묵 채색 광주시립미술관 소장

구자현 Gu Jahyun 1955- 무제 Untitled, 2002, 193,0x259.1cm, 수묵담채, 캔버스에 금잎 Orienta_

달이 떳다고(전시전경)

달이 떳다고(전시전경)

달이 떳다고(전시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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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중 기자 nega@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