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민한의 동시대 미술 수첩> 동시대 사진 예술의 방향을 묻다.
장민한 (조선대 시각문화큐레이터 전공 교수)
2020년 04월 28일(화)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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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사진작가는 프로 작가로서 전문성을 어떻게 주장할 수 있을까? 디지털 사진 기술의 발달로 품질 높은 사진을 쉽게 찍을 수 있게 되었고, 각종 SNS가 유행하게 되면서 수많은 사진 애호가들이 등장했다. 그뿐만 아니라 일부 미술가들은 매체의 융합을 주장하면서 사진을 오브제로서 자신의 작품에 자유롭게 편입시키고 있다. 사진작가들은 아마추어 사진 애호가들이 접근할 수 없는 특별한 점이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혹은 사진 이미지를 자기 작품의 일부로 이용하는 미술작가들과는 다른 차별성을 주장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해 논의해보고자 한다. 이와 더불어 광주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주요 사진작가들의 작품들 보면서 동시대 사진 예술이 어떤 방향으로 가야하는지를 고찰해볼 것이다.

사진 예술, 카메라의 눈으로 보이지 않는 존재를 잡아내다.

사진과 미술의 관계는 라이벌 혹은 상호보완적인 관계로 발전되어 왔다. 미술의 위기가 시작된 것도 사진기의 발명 때문이다. 이 발명으로 인해 20세기 초 다양한 미술사조가 등장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진은 외부 세계의 단순한 복제가 아닌 미술처럼 특별한 가치가 있다고 주장하기 위해 미술을 이용했다고 할 수 있다. 예컨대 사진은 미술처럼 진리의 모방이나 정서를 표현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사진의 역사는 자신만의 독특한 정체성을 주장하는 역사라고 말할 수 있다.

20세기 초까지 사진이 예술로서 인정받기 어려웠던 이유는 역설적으로 사진의 탁월한 묘사 능력 때문이었다. 사진 기술이 발달하면서 피사체를 점점 투명하게, 다시 말하면 사실적으로 포착해낼 수 있게 되었고, 사진작가의 촬영 기술은 사진 이미지 품질을 결정짓는데 그렇게 중요한 요소가 아닌 것이 되었다. 사진작가들은 전문가로서 사진으로 어떤 특별한 것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 그 작업은 크게 두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하나는 사진만이 제시할 수 있는 투명한 재현의 특성을 강조하는 방향이었다. 다시 말하면 '왜곡 없는 현실 재현'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사진 예술의 위상을 주장하는 방향이라고 할 수 있다. 다른 하나는 역사적 혹은 개인적인 기록이라는 측면을 배제하고 오로지 사진 이미지의 형식적 혹은 표현적 요소를 강조하여 사진 예술로서 위상을 주장하는 방향이었다.

한국 사진 예술의 역사도 이 두 방향으로 발전되어 왔다. 1960년 이후 사진은 미술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생각으로 사진만이 제공할 수 있는 객관적 현실의 재현 속에서 사진 예술의 지위를 확보하려고 했다. 이때는 현실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포착하는 '스트레이트 사진'이 대세를 이루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사진예술가들은 사실 이미지 속에도 작가의 이념과 주장을 펼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고, 이것이 70, 80년대 다큐멘터리 사진이 발전하게 된 원동력이 되었다.

80년대 후반 이후에는 사진 예술은 현실을 기록하는 객관적인 언어의 차원에서 벗어나 자아 표현에 중점을 둔 작품들이 대세를 이룬다. 무엇이든지 미술이 될 수 있는 동시대미술 패러다임에 영향을 받아서 연출 사진 또는 합성 사진 등 다양한 기법을 이용하여 사진 이미지는 세상에 대한 다양한 주장을 펼치고 있다. 사진 이미지는 그 자체가 물감, 돌, 흙 등과 같은 재료와 마찬가지로 세상과 소통하는 하나의 효과적인 매체로 이용된다. 이러한 입장에서 사진 이미지는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소통 매체가 되면서 전문 사진작가뿐만 아니라 어떤 미술작가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매체가 되었다.

90년대 들어서 디지털 사진이 등장하면서 아마추어든 작가이든 누구나 자유롭게 자신이 원하는 이미지를 얻을 수 있게 되면서, 사진 예술의 정체성은 물론이고 앞으로 발전 방향에 대해 다양하게 논의되었다. 필자가 생각하기에 동시대미술에서는 예술가 자신의 주제에 적합한 매체와 스타일을 찾는 것이 핵심인 것처럼, 동시대 사진 예술에도 이 논리가 적용될 수 있다. 사진작가도 이미지를 생산하여 그 의미를 소통하는 것이 목표이다. 그렇다면 자신의 작업의 목표와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어떤 방식으로 이미지를 포착해야 하는지 세심한 실험과 연구가 있어야 한다. 예컨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작업을 목표로 한다고 해도, 단순한 기계적 복제로서는 그 현실을 잡아낼 수 없다. 사진가는 자신이 그리려는 객관적 현실이 무엇인지 정리하고, 그것을 구축하고 상징화하기 위해서는 어떤 방식으로 이미지를 포착해내야 하는지 연구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사진 이미지 역시 다른 매체의 미술과 마찬가지로 어떤 주제를 관람객과 소통하려고 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효과적으로 소통하는지의 고민해야 한다. 사진 매체는 다른 이미지보다 효과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매체적 특성이 있다. 예를 들면 사진 이미지는 외부 세계와 인과적 재현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점, 그리고 그 이미지들이 특정 문화적 함의를 명확하게 지니고 있다는 점 등을 특성으로 가지고 있다. 전문 사진가라면 사진 매체의 고유한 특성들을 보다 잘 이해하고, 이것을 효과적으로 이용하여 자신의 이야기를 사진 이미지로 제대로 구현해낼 수 있을 것이다.

광주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전문 사진작가 6명의 작업을 통해 동시대 사진 예술이 어떤 방식으로 소통을 하는지 살펴보자. 먼저 인춘교 작가와 조현택 작가는 자신의 원하는 특정 상황에 대해 감상자들이 성찰하게 만들기 위해, 일상 같으면 쉽게 놓칠 수 있는 특정 이미지를 포착한다. 인춘교 작가는 폐교의 굳게 잠긴 건물, 녹 쓴 동상, 머리만큼 자라 버린 풀들을 정물 사진처럼 포착해낸다. 이를 통해 지나간 시간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시간의 흐름을 멈출 수 없고 영원함은 없다는 점을 관객에게 보여주고 있다. 조현택 작가는 중국 레지던스 생활 중에 재개발을 위해 철거가 진행 중인 어느 마을의 폐가를 보고, 그 하나하나의 이미지를 파노라마 방식으로 포착해낸다. 조 작가는 그 폐가가 단지 인간 욕망의 신기루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한다.

박일구 작가와 문선희 작가는 미적인 투사가 가능한 방식으로 이미지를 포착한다. 박일구 작가는 남도 곳곳에 남아있는 해안 징검다리라고 할 수 있는 '노두'를 찍는다. 감상자로 하여금 자연의 섭리에 몰입하여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생각할 수 있도록 미적인 방식으로 화면을 구성한다. 문선희 작가는 <묻다> 시리즈에서 2010~2011년 구제역과 조류인플루엔자 확산으로 생겨난 매몰지를 정면에서 근접 촬영을 한다. 작가는 관람자에게 외면하고 싶은 진실을 들여다보게 한다. 그 이미지는 동물의 사체가 썩은 것이지만 ,그 이미지 자체는 흉직한 모습이 아니라 연민을 불러올 만큼 미적으로 구성되어 있다.

박세희 작가와 이세현 작가는 익숙한 이미지를 낯설게 구성함으로써 세상에 대한 또 다른 통찰을 주고 있다. 박세희 작가는 공항, 철도역, 레저 파크 등 고유한 정체성과 역사성이 부재한 장소를 가리키는 '비장소' 중 하나를 택해 그곳의 낯설음을 경험하게 만든다. 그 공간은 소통의 공간이 아니라 타자를 주목하지 않고 미디어만을 주목하는 소외의 공간이라는 점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이세현 작가는 특정 믿음과 신념을 함축하고 있는 스펙터클한 세계를 보여준다. 관람자는 낯선 장면 속에서 인간의 욕망, 좌절, 믿음 체계의 단면을 순각적으로 체험하게 만든다. 그는 이미지를 통해 오늘날이 다층적인 스펙타클한 세계라는 점을 보여준다.

장민한 (조선대 시각문화큐레이터 전공 교수)

문선희_묻다2654_2015

박세희_ pace in between _passengers_018

박일구_강진군 도암면 월곶로_2019

박일구_고흥군 득량면 안남_2019

이세현_episode_025_2012

이세현_episode_048_2012

인춘교_곡성군 목사동초등학교_2017

인춘교_나주시 산포초등학교 덕례분교장_2017

조현택_Another panorama8_2018

편집에디터 edit@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