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대미술의 힘, 콘텐츠의 관전 포인트에서 찾다
장민한 (조선대 시각문화큐레이터 전공 교수)
2020년 03월 31일(화) 15:27

권승찬_나는나와이야기밖에할수없을것같다_네온,형광등,싸운드_2019

코로나19로 인해 공공미술관이 모두 문을 닫았다. 2월 말에 일찌감치 문을 닫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올바른 판단이었지만, 그때는 미술이 우리에게 주는 가치를 너무 간과한 것이 아닌가 생각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오늘날 미술이 우리의 힘든 삶을 위로해주고, 타인의 감정에 공감할 수 있게 만들고, 스스로 세상을 통찰할 수 있게 하는 효과적인 매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이번 글에서는 미술관 전시 비평 대신, 우리 시대 미술 작품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게 돕는 '관전 포인트'에 대해 설명하고자 한다. 미술 작품의 어떤 점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지, 그리고 질적으로 우수한 작품은 어떤 특징을 지니고 있는지 그 정보를 제공하려고 한다. 무엇을 어떻게 그려야 살아남을 수 있는지 고민하는 젊은 미술작가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우리 지역에서 활발히 작업을 하고 있는 동시대 작가 5명의 작품을 예로 들어 설명해보겠다.

동시대미술은 볼만한 가치를 지닌 소중한 물건(?)이 아니라 정보를 제공하는 콘텐츠라는 입장에서 접근해야 한다. 미술 작품은 텔레비전 예능 콘텐츠, 영화 콘텐츠, 유튜브 콘텐츠 등과 마찬가지로 콘텐츠의 일종이다. 모더니즘 시대에 미술은 소통할 내용을 담는 매체라기보다 그 자체로 가치 있는 특별한 경험을 주는 대상으로 취급되었다. 당시 현대미술 작가들은 자신들이 생각하는 특별한 경험을 제공하기 위하여 주제에 대한 고민 없이 자신만의 스타일을 찾으려고 했다. 이 모두가 미술을 소통 목적의 콘텐츠가 아니라 특별한 경험을 위한 매체로 생각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이러한 시각은 추상미술이 등장한 20세기 초에서 1960년대까지의 미술을 바라보던 하나의 관점, 더 정확히 말하면 서구에서 미술을 바라보던 특수한 관점에 불과하다. 미술 작품이 주제 없이 특별한 미적 경험을 주는 매체라는 생각은 50여 년간의 서구의 전통에 불과하다. 라스코 동굴의 벽화부터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 백남준의 비디오아트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알고 있는 대부분의 미술 작품들은 특별한 주제를 전달하는 효과적인 콘텐츠였다.

콘텐츠에서 핵심은 그것이 말하려는 주제와 그 제시방식에 있다. 동시대 미술도 마찬가지다. 그 핵심은 작품의 주제와 그 제시방식에 있다. 해당 작품이 생각해볼 만한 주제를 다루고 있는지, 그리고 작가 의도대로 효과적으로 전달되었는지가 그 작품의 진가를 판단하는 기준이 된다. 감상자의 입장에서 보면 작품의 주제가 무엇이고 왜 이런 방식으로 제작되었는지를 이해해야 한다. 만약 해당 작품의 주제와 제시방식이 익숙하지 않으면, 작품 해설이나 도슨트의 도움을 받아서 작가의 의도와 제시방식의 특징을 알고 작품을 감상하면 된다. 이렇게 접근한다면 세계적인 작가가 참가하는 비엔날레 전시 역시 올바로 감상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동시대 미술에서 중요한 것은 작가들이 무엇을 어떻게 관객과 소통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 내용과 소통 방식이 관람자에게 유의미한 결과를 줄 것인지, 혹은 그것이 다른 작가들보다 경쟁력이 있는지 고민을 해야한다. 그래서 주제를 심도 있게 접근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인문학 지식은 오늘날 작가에게 필수적인 요소가 된다. 또한 텔레비전 예능 프로그램 연출가가 새로운 프로그램을 내놓을 때 경쟁 프로그램을 열심히 자료 조사하듯이, 오늘날 작가는 자신과 유사한 주제를 다루는 작가들의 제시방식에 대해 연구하고, 자신이 어떤 점에서 경쟁력이 있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미술 콘텐츠가 다른 콘텐츠와 차별화되는 특징은 무엇인가? 그 장점은 주제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매체의 특수성에 있다. 어떤 콘텐츠 유형이라고 하더라도 정도에 따라 다르겠지만, 우리가 몰랐던 진실, 공감, 통찰, 위안, 희망 등을 줄 수 있다. 미술의 고유한 특징은 이러한 주제를 우리 기억 속에 강렬하게 경험하게 남긴다는 점에 있다. 미술은 그 주제를 일관적으로 배열함으로써 그 이미지를 통일적으로 경험하게 만들면서도 복합적으로 구성하여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미술 콘텐츠의 특성을 살리기 위해서는 해당 주제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세심한 매체 실험과 스타일 선정이 필요하다고 볼 수 있다.

오늘날 미술에서는 어느 시기보다 '담론'이 중요하다. '담론'이란 콘텐츠가 작가에게, 혹은 그 문화권에서 왜 중요하고, 가치 있는지 그 근거를 제시하는 것이다. 프로야구에 빗대어 말하자면 경기의 관전 포인트를 찾는 것을 의미한다. 비평가의 임무는 자신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관전 포인트를 지적하고 그 관점에서 해당 작품의 가치를 평가하는 것이다. 동시대 작가들에게 중요한 것은 스스로 관객들에게 작품의 관전 포인트를 제공하는 일이다. 작가들은 작품에서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점, 고민하고 있는 점 등을 관객들에게 제시하고 그 작품에 대한 관심을 유도시켜야 한다. 작가 스스로 관점 포인트를 제시하려면 작가가 명확한 문제의식을 지니고 작업을 해야 가능한 일이다. 작품의 형식에 대한 감상이 아니라 작가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그렇게 표현했는지, 앞으로 이야기를 어떻게 전개시키고 싶은지 등 작가의 관전 포인트를 알고 있으면 관람객들은 그 작품의 진면목을 쉽게 보게 될 것이다.

권승찬 작가는 자신의 정체성 문제와 타인과의 소통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작업을 한다. 이 작품에서는 오랜 시간 방치되었던 실제 공간을 찾아서 그 공간의 의미를 재해석하는 작업을 보여준다. 그의 관심은 그 공간의 의미를 어떻게 재규정하고 그것을 제시하기 위해 어떤 방식으로 공간을 구성하느냐에 있다. 다음의 장소는 어디가 되고, 그것을 어떤 방식으로 꾸며서 어떤 의미를 제공할지가 우리 관람자의 관전 포인트가 된다.

노여운 작가는 자신이 살았던 지역이 재개발로 사라진다는 사실에 대한 아쉬움에서 작업을 시작했다. 오래된 골목길이 그의 작업의 주요 무대이다. 사라진 것에 대한 쓸쓸함은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세월이 지남에 따라 작가 심경이 변하고, 그에 따라 이미지의 구도와 색감도 변화한다. 누구나 겪었을 지나간 것에 대해 노여운 작가만큼 쓸쓸하면서도 애틋하게 그려낸 작가는 보지 못했다. 이후의 골목길 작업에서는 그 애틋함이 어떻게 나타날지 궁금하다.

문형선 작가는 자신의 내면 깊숙한 곳에 자리 잡고 있는 '유토피아' 관념을 실제 장소에 투사한다. 작가는 특정 장소의 이미지를 그곳의 다양한 이미지를 활용하여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향을 보여주는 방식으로 패턴화하여 보여준다. 이를 통해 실제 풍경 이미지에서 몽환적이면서 강렬한 에너지를 경험하게 만든다. 앞으로 그의 유토피아가 실제 특정 풍경에서 어떻게 변화되어 나타날지가 그 작품의 관전 포인트라고 할 수 있다.

정광희 작가는 문자로 잡아낼 수 없는 세계를 표현하려는 시도를 해왔다. 그는 세계에 대한 자신만의 통찰을 붓과 먹의 에너지를 이용해 다양한 방식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전 작업이 언어로 드러내지 못한 세계를 드러내는 작업이었다면, <나는 어디로 번질까?> 시리즈는 먹의 강렬한 번짐 효과를 이용하여 개인과 사회의 관계에 대해 조명하고 있다. 앞으로 그의 작품에서 붓과 먹이라는 매체가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정신세계를 어떤 방식으로 보여줄지 자못 궁금하다.

하루.K 작가는 전통 산수화에 대한 관심과 음식에 대한 현대인의 관심을 연결시켜서 관람객에게 이상향과 속세, 영원과 순간, 정신과 육체의 관계에 대해 질문을 하고 있다. 그는 산수와 음식을 다양한 방식으로 병치하여 하나의 풍경을 완성시킨다. 산수의 여러 형태와 음식의 종류, 그리고 그 병치 형식에 따라 우리 현실과 이상향에 대한 작가 시각의 변화를 느낄 수 있다. 앞으로 산수와 음식의 병치가 어떤 새로운 시각을 제공할지가 그의 작업의 관전 포인트가 될 것이다.

장민한 (조선대 시각문화큐레이터 전공 교수)

권승찬_재활용 재구성 _ 혼합매체 _ 2016 (광주가톨릭평생교육원 지하실에 설치)

노여운_기억하다_ oil on canvas_ 2019

노여운_스며들다_ oil on canvas_ 2019

문형선_SPACE-UTOPIA 화순 세량지_ mixed media on wood pane_2017

문형선_UTOPIA IMAGE_acrylic on canvas_ 2019

정광희_나는 어디로 번질까_한지에 수묵_2018

정광희_인생2_한지에 수묵_2013

하루.K_바닷가재_한지에 수묵채색_2017

하루.K_편집된산수(무등산주먹밥)_한지에수묵채색_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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