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돈삼의 마을이야기>보성 영천마을
이돈삼/여행전문시민기자·전라남도 대변인실
2020년 02월 27일(목) 13:25

마을 풍경-도강마을 앞 정자와 수령 200년 느티나무

코로나19 탓에 긴장감이 감도는 주말이다.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이 드물다. 도로도 한산하다. 평소보다 다심해지는 요즘이다. 쉬는 날이지만, 어디로 나간다는 것도 편하지 않다. 그래서 선택했다. 청정한 여행지, 보성차밭이다.

산비탈의 능선을 유려하게 휘감은 차밭을 그려본다. 판소리의 높낮이처럼 어깨를 절로 들썩이게 하는 풍경이다. 초록의 싱그러움을 뽐내는 봄과 여름에 더할 나위 없이 좋다. 가을은 가을대로, 겨울은 겨울대로 멋진 곳이다. 사철 언제라도, 하루 어느 때라도 낭만을 선사하는 차밭이다. 생각만으로도 몸과 마음이 서분해진다.

봇재에 서니, 사방이 차밭이다. 산등성이를 올려다봐도, 산자락을 내려다봐도 골골마다 차나무로 물결을 이루고 있다. 차밭이 이엄이엄 이어진다. 우리가 흔히 얘기하는 녹차나무가 아니다. 차나무이고, 차밭이다.

차나무의 어린잎을 따서 가공한 음료가 차(茶)다. 차는 찻잎을 따는 시기에 따라 이름을 달리한다. 곡우를 전후해 딴 첫물차를 시작으로 두물차, 세물차, 끝물차로 나뉜다. 차를 만드는 방법과 발효 정도에 따라 이름과 맛도 달라진다. 찻잎의 발효 여부에 따라 불발효차, 반발효차, 발효차로 구분된다. 절반 가량 발효시킨 것을 우롱차, 85%이상 발효시키면 홍차라 한다.

녹차는 발효시키지 않고 찻잎을 그대로 덖거나 쪄서 말린 것이다. 수분만 빼고, 찻잎의 모양과 엽록소는 그대로 남겨둔다. 녹차는 발효시키지 않은, 불발효차에 속한다. 우롱차나무, 홍차나무, 녹차나무가 따로 있는 게 아니다. 차나무가 있을 뿐이다. 녹차밭이 아니고 차밭이다.

차나무가 산비탈을 따라 층계를 이루고 있다. 판소리의 높낮이를 닮았다. 차밭 이랑은 다소곳하다. 해마다 많은 여행객을 불러들이고, 발길 오래 머물게 하는 풍경이다. 사랑하는 연인과 함께 사부작사부작 걸으며 마음을 전하기에 맞춤이다. 차밭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영화 속의 주인공이 된 것 같다. 낭만적인 로맨스 가든이다.

봄이 무르익을 때면 아낙네들이 차밭 이랑에 들어가 찻잎을 딴다. 바구니를 하나씩 옆에 끼고 차를 따는 아낙네들의 모습은 한 폭의 그림이다. 이 풍경을 담으려는 사진작가들의 발길도 줄을 잇는다.

보성의 차나무 재배는 16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보성군사〉에 의하면 서기 369년 마한의 복홀군(보성)이 백제에 통합되면서 차를 진상했다는 기록이 있다. 〈세종실록지리지〉에도 보성의 차가 언급돼 있다.

차나무가 널리 퍼진 것은 일제강점기다. 1939년 경성화학에서 야산 30㏊에 차 씨앗을 심었다. 1957년 대한다업에서 경성화학의 야산을 인수하고, 차나무를 더 심었다. 1962년부터는 차 가공을 시작했다. 산업화가 된 차밭이다.

차나무는 수분 공급이 원활하고 물 빠짐이 좋은 데서 잘 자란다. 보성의 차밭이 비탈진 산자락에 많은 이유다. 봇재 아래 영천리가 차나무의 주산지가 된 것도 매한가지다. 바다와 가까워 안개가 자주 끼는 것도 수분 공급을 도와준다. 산비탈의 물 빠짐도 좋다.

보성의 차 생산량은 전국의 3분의 1을 차지한다. 보성의 자연과 기후 그리고 보성사람들의 정성이 만들어낸 결과다. 보성에서 차나무를 가장 많이 재배하는 곳은 회천면 영천리다. 보성 차 생산량의 3분의 1을 점유하고 있다.

영천리는 양동, 영천, 도강 등 3개 마을로 이뤄져 있다. 봇재 아래로 연달아 자리하고 있다. 1960년대 후반에 산을 깎아 밭을 만들고, 차나무를 심었다. 보성차밭은 국가중요농업유산 제11호로 지정돼 있다. 지금은 세계중요농업유산 등재를 추진하고 있다. 한산한 도로를 따라 차밭을 맘껏 누릴 수 있다. 여구히 남아있는 돌담에서 활짝 핀 매화도 살그미 걸음을 멈추게 한다. 습습히 부는 봄바람도 좋다. 2월의 차밭에서 누리는 호사다.

영천리는 서편제 보성소리의 태 자리이기도 하다. 송계 정응민이 만든 독특한 창법을 '서편제'라 부른다. 잘 짜인 형식에다 음악적 다양성을 통한 세련미, 예술성이 뛰어난 악조, 사실적인 가창력이 돋보인다는 평을 받고 있다. 사설에서도 기품과 문학성이 묻어난다. 비속어가 배제되는 것도 특징이다.

소리꾼들이 목청 높여 수련하며 소리를 깨친 득음정(得音亭)과 득음계곡가 가까이에 있다. 지금도 '산공부'를 한다며 소리꾼들이 심심찮게 찾는다.

도강마을에 서편제 테마공원이 만들어져 있다. 보성을 '판소리의 성지'로 만들어 준 박유전·정재근·정응민·조상현 등 서편제 명창을 기리는 공간이다. 보성소리의 역사와 정통도 잇고 있다. 판소리 전시관과 판소리 전수교육관, 생활관, 정응민 생가, 다섯마당 등으로 이뤄져 있다. 코로나19 탓에 전시관의 문이 닫혀 있다.

테마공원에 정응민 선생 예적지가 있다. 묘지가 있고, 생가도 복원돼 있다. 강산 박유전 선생 기념비도 있다. 박유전은 보성소리의 살아있는 전설로 통한다. 서편제를 창시하고, 동편제와 서편제의 장점을 조화시킨 강산제도 만들었다.

성창순 국창 추모비도 세워져 있다. 성창순은 무형문화재 제5호 강산제 심청가 보유자로 심청가를 기품 있게 다듬었다. 생전 명창의 목소리로 심청가, 홍보가, 춘향가, 성주풀이 등을 들을 수 있다.

테마공원을 돌아보고 나오는데, 한 손에 호미를 든 어르신이 텃밭으로 향하고 있다. 붉은 동백꽃과 흰 매화가 둘러싼 텃밭에는 쪽파가 자라고 있다. 쪽파의 잎이 가늘고 부드러워 보인다. 야들야들하면서도 향긋한 내음이 전해져 입안에 침으로 고인다.

넓은 들에 감자도 심어져 있다. 득량만의 바닷바람과 안개를 맞으며 자랄 회천감자다. 아침저녁의 추위를 막아줄 검정비닐 속에서 새순을 틔워 올리고 있다. '집 나간 며느리도 돌아오게 한다'는 전어, 벚꽃 필 무렵부터 맛있는 바지락, 스태미나 식품의 상징인 낙지도 앞바다에서 많이 잡힌다.

마을 입구에 수령 200년 된 느티나무가 두 팔을 양쪽으로 벌리고 서 있다. 나무 아래에는 정자가 있다. 마을사람들의 쉼터다. 마을을 지나는 여행객들이 잠시 쉬어가는 곳이기도 하다. 저만치 남쪽으로는 득량만이 품은 회천 앞바다가 보인다. 귓전에는 성창순 명창의 목소리로 듣던 심청가 한 가락이 줄곧 맴돌고 있다. 어느새 해거름이 되면서 날씨가 조금 쌀쌀해졌다. 배도 촐촐해진다.

이돈삼/여행전문시민기자·전라남도 대변인실

마을 풍경-도강마을 앞 정자와 수령 200년 느티나무

마을 풍경-감자 심은 밭

마을 풍경-감자 심은 밭

마을 풍경-골목길

마을 풍경-녹차된장 장독대

마을 풍경-담장에 핀 매화

마을 풍경-텃밭에서 일하는 마을주민

마을 풍경-텃밭에서 일하는 마을주민

마을 풍경-판소리 성지 앞

마을 풍경-활짝 핀 매화

마을 풍경-활짝 핀 매화

마을 풍경-활짝 핀 매화

보성차밭-눈 내린 날 풍경

보성차밭-봇재에서 내려다 본 풍경

보성차밭-봇재에서 내려다 본 풍경

봇재에서 내려다 본 해질무렵 영천저수지

서편제 테마공원-강산 박유전 선생 기념비

서편제 테마공원-강산 박유전 선생 기념비

서편제 테마공원-성창순 국창 추모비

서편제 테마공원-소리를 배우는 장면을 형상화 한 조형물

서편제 테마공원-소리를 배우는 장면을 형상화 한 조형물

서편제 테마공원-송계 정응민 묘

서편제 테마공원-송계 정응민 생가와 예적비

서편제 테마공원-송계 정응민 생가와 예적비

서편제 테마공원-전시관과 교육관

서편제 테마공원-전시관과 교육관

서편제 테마공원-정응민 생가로 가는 길

서편제 테마공원-정응민 생가로 가는 길

편집에디터 edit@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