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일광장> 벨 에포크를 낳은 정신
천세진(문화비평가· 시인)
2019년 11월 25일(월) 14:38
1890년부터 1914년까지의 프랑스 파리의 시간을 '벨 에포크'라고 부른다. 지식 검색을 해보면 "약 80년 동안 혁명과 폭력, 정치적인 격랑을 겪은 후에 평화와 번영을 구가하던 1890~1914년 사이의 기간을 '아름다운 시절', '벨 에포크'라고 부른다."는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짧은 내용만으로 이해가 어렵다. 벨 에포크를 이해하기 위해 당시의 사회문화적 사건들을 살펴보면, 인상주의 화가들이 왕성하게 활동했고, 마르셀 프루스트(1871-1922)가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로 담아낸 시대이기도 했고, 1900년 '파리 만국박람회'가 열렸고, 역시 1900년 파리에 첫 지하철이 개통된 것과 같은 일들이 있었다. 가늠해 보면 벨 에포크는 예술, 문학, 경제적 활력의 시대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반까지의 프랑스 파리의 모습에 주목하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가에 대해 의구심을 가질 수 있다. 21세기에 남의 나라 옛 시대를 꺼내든 것은 모든 시대는 출현 배경을 갖고 있다는 점을 말씀드리기 위한 것이다.

20세기 최고의 비평가로 불리는 발터 벤야민은 2,500 페이지에 달하는 책 '아케이드 프로젝트'에서 여러 차례, "세계의 수도는 런던이고, 19세기의 수도는 파리"라고 말하고 있다.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불리었던 영국의 수도 런던이 당시 최강의 도시였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사회·문화적 관점으로 본다면 다양한 변화를 보여준 도시는 단연 파리였다. 그럼 무엇이 파리를 '19세기의 수도'라 부르게 하고, 런던과 파리의 모습을 달라지게 했을까?

그 배경에는 프랑스 대혁명(1789∼1794)이 있다. 대혁명 이후 파리와 런던은 서로 다른 길을 걷는다. 대혁명 이후 프랑스는 런던하고만 차이를 둔 것이 아니었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까지 유럽 대부분의 국가는 여전히 제국주의 담론이 지배하고 있었고, 왕실과 귀족계급이 지배하는 사회였다. 프랑스에서는 대혁명 이후 부르주아지 계급이 정치·사회적 주도권을 쥐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제국'으로 상징되는 모든 것들이 해체와 변화를 요구받았다.

현대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유파인 '인상주의'의 출현도 대혁명의 유산이었다. 지금의 시각으로 보면 느린 변화로 보이겠지만, 파리 미술계는 고전적인 시각이 아닌 새로운 시각으로 자연과 인간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인상주의자들이 변화의 물꼬를 트자, 후기인상주의, 아르누보, 분리주의, 표현주의, 야수주의, 입체주의 등이 정신없이 출현하여 미술계의 지형을 바꾸어 놓았다.

또 다른 유산은 나폴레옹 3세의 지시 아래, 조르주 외젠 오스만 남작이 진두지휘하여 이루어진 파리재개발 사업(1853∼1870)이었다. 19세기 어떤 대도시도 파리처럼 개조된 사례가 없다. 파리의 개조는 이유와 결과를 떠나서 그처럼 거대한 사업이 시행될 수 있었던 역동성과 유연함 또한 주목할 만하다. 그런 개혁성과 역동성과 연계하여 새로운 재료에 대한 시도 또한 눈여겨볼 만하다. 파리의 파사주는 철이 건축 재료로 등장함으로써 가져다 준 변화였다. 건축에만 그치지 않았다. 에펠탑은 과학과 기술을 예술과 접목시킨 결과물이었다. 당대 엄청난 비난을 들었지만, 에펠탑이 상징하는 실험정신은 어느 나라 어느 도시도 따라올 수 없는 것이었다.

'벨 에포크'의 모든 것이 좋고 아름다운 것은 아니었지만, 예술, 건축, 정치(사회적 계급), 경제 등의 분야에서 파리가 보여준 변화들은 현대를 낳은 것들이라고 평가해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억압적인 구시대의 산물들을 바꾸려는 의지가 런던을 비롯한 당대 유럽 도시들과 파리를 다르게 만든 것이다.

지금 우리도 혁명 이후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촛불혁명이 후대의 교과서에 단 한 줄로 기록되는 사건에 그치기 않기 위해서는 우리사회 전반에서 변화가 일어나야 하고 결과물이 속속 나타나야 한다. 정치적으로는 특정 직업군(법조) 출신들이 주도하는 낡은 권력 구조가 해체되어야 하고, 공적시스템도 검찰 같은 특정 기관이 국민의 의사와 무관하게 독선적 질주를 할 수 없어야 하고, 문화·예술적으로는 '등단'과 도제식 권력구조 등 모든 악습이 폐기 되어야 한다. 시민의식도 밖에서는 촛불을 들고, 안에서는 가부장과 남녀차별을 옹호하는 후진적 이중성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 이후에야 우리시대를 비로소 '벨 에포크'라고 부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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