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수기 의회
최동환 정치부 부장대우
2019년 09월 23일(월) 17: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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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회는 주민의 뜻을 대신하는 대의제 민주주의의 보루다. 의회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면 민의는 왜곡되고 권력자의 횡포는 제어되지 못하게 된다. 의회에서 제어되지 못하는 권력자는 결국 독재자가 되며 그 피해는 주민들이 고스란히 입게 된다.
18세기 계몽주의 철학이 출현하면서 왕의 전횡을 막는 의회의 모습을 서구의 역사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것도 같은 이유다.
시사만화가 김성환 작가의 고우영 현대사 1편 '시사만화로 보는 시대상'에는 우리나라 국회의 '거수기 시대' 가 나온다.
김 작가는 "이승만 대통령의 말이라면 비판 없이 무턱대고 "찬성이요" 하고 따르는 국회의원들이나 장관들을 '거수기 국회의원' 또는 '거수기 내각' 이라 비꼬았던 시절이 있었다. 대통령 말이라면 무조건 옳다고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하고 따르는 국회의원이나 장관들에 대하여 '지당장관(至當長官)'이라고 불렀다"고 적었다.
권력자의 독주가 제어되지 못하는 자유당의 실상을 보여주지만 70여년이 지난 지금도 다른 형태로 '거수기 시대'는 되풀이 되고 있다.
제11대 전남도의회 농수산위원회가 지난 20일 열린 제334회 임시회 상임위에서 집행부 감시 견제기능을 스스로 무력화하고 있다는 빈축을 사고 있다.
이번 임시회에서 최대 안건인 농어민 수당과 관련해 농수산위는 이날 전남도와 도의원, 주민청구 등 3개로 발의된 조례안을 병합 심의해 도 발의안 중심의 대안 조례안을 마련해 통과시켰다.
이를 두고 전남도의회 농수산위원회가 거수기 역할을 자초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정의당 전남도당과 민중당 전남도당, 농민단체들은 "농수산위 조례안은 도민의 뜻을 묵살하고 가장 후퇴한 부실 조례이고, 도의회는 전남도의 시녀로 전락했다"고 비판했다.
전남도의회 농수산위가 기존에 발의된 3개의 조례안에 대해 공청회 등 의견수렴절차를 거치지 않고 전남도안을 그대로 수용한 점은 비판받아 마땅한 일이다. 향후에는 도의회가 거수기 역할이 아닌 도민을 위한 민의의 장으로 거듭나길 기대해본다. 최동환 정치부 부장대우 dhchoi@jnilbo.com
최동환 기자 cdstone@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