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념 떠나 여순사건 관통하는 말은 ‘민간인 학살’
김화선 전남취재본부 기자 hwasun.kim@jnilbo.com
2018년 10월 25일(목) 21:00

“문재인 정부에 들어 그나마 큰 목소리가 나온 것 같아요. 그 전에는 여순사건에 대한 언급조차 힘든 공포사회였죠. 말 조차 할 수 없으니 진상규명을 꿈 꿀수가 있나요. 이 지역에선 여전히 많은 이들이 자신의 가족들이 왜 희생당해야 했는지 모르고 있어요.”

여순사건이 올해로 70년을 맞았다.

여순10.19특별법제정범국민연대 대변인으로 활동하는 최성문 순천대 여순연구소 연구원은 여순사건이 그동안 좌우 이념논리에 갖혀 공론화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특히 여순사건 과정과 이후에 대규모의 민간인 학살도 이뤄졌지만 이 같은 사실이 제대로 조명되지 못했다.

여순사건에서 자행된 민간인 학살은 좌.우익 세력과 상관없이 무차별적으로 자행됐기 때문이다. 오히려 연구결과는 좌익세력보다 정부군과 경찰에 의한 학살이 훨씬 많았다고 말한다. 광주.전남지역 민간인 학살 희생자 현황을 살펴보면, 인민군.좌익세력이 가해자인 경우는 20~30%인데 반해 국군.경찰에 의해 희생된 사람은 70~80%에 달한다. 한마디로 ‘국가폭력’이다.

우리사회에서는 오랫동안 ‘빨치산’(좌익세력을 부르는 은어)에 의한 죽임은 말할 수 있어도 국군에 의한 죽임을 언급하는 것은 ‘불문율’이었다. 때문에 대부분이 참사를 침묵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최근 언론매체를 통해 여순사건 진압군의 증언이 처음 공개됐다. 70년 만이다.

당시 진압군에 참여한 한 장교는 “반란군이 지나갈 때 밥 한 덩어리만 줘도 혐의를 받았으며, 간단한 고발로 종신형이 내려졌고 그 자리에서 총살했다”고 털어놨다. 이어 이 장교는 “애매한 사람을 많이 죽였고 여학생들, 꽃 같은 학생들이 다 죽었다”라며 “6.25전쟁에도 참여했지만, 그렇게 비참한 전투를 본 일이 없다”고 말했다.

이 증언록은 국방부 군사편찬위원회가 1960년대부터 80년대까지 진압군을 면담해 작성한 내용이다. 국방부는 증언록을 토대로 여순사건을 서술한 ‘한국전쟁사’ 등을 펴냈지만, 민간인 학살의 참상은 누락됐다.

최 연구원에 의하면 ‘제주 4.3’과 긴밀한 연관이 있는 여순사건은 ‘제주 4.3’에 비해 연구와 진상규명이 더디다. 여순사건 과정에서의 국가폭력과 관련된 사실을 면밀히 살핀다면 여순사건 특별법 제정을 막을 명분이 없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겐 미래가 없다는 말이 있다. 과거의 잘못을 거울삼아 더 나은 미래로 출발하기 위해서는 왜곡되고 묻혀진 역사를 바로잡고 발굴해야 한다.



김화선 전남취재본부 기자 hwasun.kim@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