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1 반면교사
2014년 07월 15일(화) 00:00

박준영 전 전남지사의 지역발전에 대한 열정은 대단했다. 퇴근 후 관사에서 늦은 밤까지 일손을 놓지 않았다. 그래서 많은 성과를 냈지만 포뮬러원(F1) 국제자동차 경주대회에 대해서는 평가가 엇갈린다. 3번 대회를 치렀는데 운영 적자만 1910억원이다. 대회를 접자니 거액의 위약금을 물어야 할 처지다.존폐 기로에 놓여 있는 F1은 갓 취임한 이낙연 현 전남지사의 머리를 짓누르고 있다. 일각에서는 F1중단 여부를 빨리 결정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러나 서두르다보면 일을 그르치는 법. 찬찬히 검토하고 최상의 결론을 내야 한다. 특히 F1추진과정을 꼼꼼히 따져보면 의외의 부산물을 건질 수 있다. 바로 'F1 반면교사'이다.

영암에 자본주의 스포츠 총아인 F1을 하겠다는 것은 남루한 옷을 입은 시골 아낙에게 명품 핸드백을 들려주는 꼴이나 다름없었다. 그 행색이 얼마나 어색하겠는가. 박 전 지사는 F1이 서남해안 관광레저형 기업도시(J프로젝트)의 선도 역할을 하면 문제가 해결될 것으로 믿었다. F1 성공의 동력을 J프로젝트 추진의 밑거름으로 삼겠다는 구상이었다. 서양의 귀족 스포츠인 F1 대회를 전남의 허허 벌판에서 열기로 한 만큼 그에 어울리는 골프장, 카지노를 비롯한 대규모 위락시설 등을 갖출 방침이었다.

구상은 좋았지만 중앙정부는 외면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당시 정권이 대놓고 F1과 카지노를 반대했다. 그와 관련된 다양한 추측이 있다. 당시 민주당과 결별한 열린우리당측 인사들이 대거 포진한 청와대는 민주당 소속으로 당선한 박준영 지사에 호의적이지 않았다. 동교동계와 얽힌 인사들이 F1을 제안했다는 소문도 정권내 부정적 기류를 형성하는 데 일조했을 것이다. 박준영 전 전남지사는 그래도 호남을 기반으로 한 집권 여당이 전남의 미래 전략을 외면하지는 않을 것이란 기대를 했을 것이다.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당시 문화관광부와 농림부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기획재정부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우리와 상의없이 덜컥 사업을 가져와서 이제와서 손을 벌리느냐"고 했을 정도다. 지금은 국회의원 배지를 단 중앙부처 한 고위 관료는 전남도 간부들에게 "이런 식으로 일을 하지 말라"며 대면박을 주기도 했다.

지금와서 되짚어보면 아쉽다. 박 전 지사가 정권 및 중앙정부와 교감 속에서 F1추진여부를 상의했더라면….

F1 추진과정에서 민간업자의 제안을 받아들인 뒤 그들에게 전적으로 의존한 것도 결과적으로 독이 됐다. 한 때 F1추진을 검토하다 포기했던 경남도의 경우 자치단체가 경주장을 건설하고 민간업자가 대회개최권료를 내고 경기흥행을 맡는 식으로 진행됐다. 그런데 경남도에 F1을 제안했던 민간업자들 중 일부가 전남도에 와서는 정반대의 제안을 했다. 자신들이 경주장 건설을 하고 전남도가 대회개최권료를 내는 방식을 밀어붙였다. 전남도는 그 제안을 수용했고 첫대회 개최권료 360억원을 사실상 선납했다. 거액을 미리 낸 바람에 대회를 중도에 포기할 수도 없었던 전남도는 민간업자에게 휘둘리는 경우가 많았다. F1 대회 주관사인 FOM과 전남도간 불평등 계약서 논란이 빚어진 것 또한 그런 과정에서 비롯됐다.

더욱이 F1추진 과정에서 각종 논란이 제기되자 박 전 지사와 전남도는 지역 사회와 소통을 하는 것을 중단했다. 부정적 여론이 형성되면 전남도는 그 배후를 의심하기도 했다. 심지어 "광주 일고 출신 '마피아'들이 박 지사를 음해하고 있다"는 허황된 정보가 박 전 지사 집무실로 흘러들어가기도 했다. F1추진 방식에 대해 일부 공직자가 반대 의견을 피력하면 '도정에 발목을 잡는 공무원'으로 찍히기도 했다. 그런 상황에선 건전하고 합리적 결정이 나오지 않는다.

F1을 둘러싼 논란을 점검했을 이낙연 전남지사 인수위측이 대회 중단을 염두에 둔 발언을 한 것은 일견 이해된다. 그러나 F1의 합리적 해법을 모색하고 있는 시점에서 대회 중단 발언이 나오는 것은 부적절했다. 협상 전략을 노출한 셈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전남도가 중단을 결정했다면 F1의 실질적 수장인 버니 에클레스톤 회장은 위약금만 받으면 그만이다. 버니 회장이 전남도의 열악한 현실을 동정하거나 한국에서 F1이 처해 있는 처지를 고려할 리 만무하다. 그는 전남도(이전 KAVO)와 맺은 계약서만 바라볼 것이다. 민선 6기 전남도가 성급하게 F1의 존폐를 거론하기보다는 최상의 대안을 연구해야 하는 이유다.


김기봉 정치부장 gbkim@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