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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2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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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덕진의 종가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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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광조와 고락 함께 한 양팽손, 호남 문풍에 큰 역할

●양팽손, 소쇄원 양산보를 중앙 정계에 추천하다.화순의 제주양씨 학포공파의 시조는 학포(學圃) 양팽손(梁彭孫, 1488~1545)이다. 그는 조카뻘되는 10대 양산보를 최고 실력자 정암 조광조에게 추천하여 중앙정계에 입문하게 했다. 또한 조광조와 함께 수학하고서 사림세력을 키우고 왕도정치를 주창한 인물이기도 하다. 기묘사화 때 능성현(1632년에 능주목으로 승격)으로 유배 와서 사약을 받고 죽은 조광조의 시신을 수습하기도 했다. 이렇게 볼 때, 양팽손은 사림정치와 전개와 호남지역의 문풍 진작에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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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 도와 공신 오르고, 병영성 지어 향토 방어하다

두 차례나 태종 이방원을 도와 ‘좌명공신’에 오르다.“한옥이 노후화 돼가지고 밀어 불고 지은 지가 올해 햇수로 한 5년 됐어요. 지금 사당 아래 영모재 지은 지가 95년 되었어. 사당도 그러고 집도 그러고, 원래 있던 터에다가.” 마천목 장군의 18대손 마원숙(馬元淑) 종손과 나눈 이야기이다. 종택은 노후화되어서 지금(2017년 대화)으로부터 5년 전에 새로 지었고, 사당은 20여 년 전에 원래 있었던 자리에 새로 지었다는 말이다. 곡성에 있는 장흥마씨 충정공 종가 이야기이다. 이 집안의 종가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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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대명당 운조루… '타인능해' 뒤주에 나눔과 배려 담겨

굴뚝을 낮게 만들어 밥 짓는 연기가 멀리 퍼지지 않도록 배려근래 가진 자들의 갑질이 서민들 마음을 상하게 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굴뚝을 낮게 만들어 밥 짓는 연기가 멀리 퍼지거나 보이지 않도록 하여 가난한 이웃들을 배려한 이가 있다면, 얼마나 ‘사이다’ 같을까? 우리는 이런 일을 200여 년 전에 실천에 옮긴 사람들을 구례에서 찾을 수 있다. 바로 문화류씨 곤산군파 귀만와 종가이다. 그래서 이 종가(흔히 운조루 종가라고 불린다)는의가난한 이웃을 배려한 정신을 여느 종가들과 비교해보면 다른 면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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父子가 단종 복위운동… ‘절의 정신’ 대를 잇다

부자가 단종 복위운동으로 목숨을 잃다.옥천(玉川)은 전북 순창의 별호이다. 옥천조씨가 순천에 터를 잡은 때는 지금으로부터 550여 년 전이다. 입향조는 조유(趙瑜, 1346~1428)라는 분이다. 영광군수를 역임하면서 왜구를 격퇴한 사실이 사서에 기록되어 있다. 조유의 아들 가운데 조숭문(趙崇文, ~1456)이 있다. 조숭문은 세종 때 무과에 급제하여 병마절도사를 역임했다. 단종 복위운동을 펼치다 세조에 의해 처형되어 1791년(정조 15) 단종 묘정에 배향되었다. 묘정 배향 때에 받은 시호가 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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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슬 가볍게 여겼지만 나라는 중하게 여겨 장렬히 순절

목천장씨, 사화를 피해 순천으로 이거한 신흥가문 우리 조사진 일행이 순천의 목천장씨 충의공파 제14대 종손인 장정휴(張正烋, 1947~ )님을 인터뷰 하기 위해 연락을 했으나 대화는 물론이고 뵐 수도 없었다. 종손의 건강이 좋지 않아서 였다. 만나는 것은 물론이고 오지도 말라는 요청도 정중하게 받았다. 아쉽지만, 종손 측의 의견을 존중하여 족보를 중심으로 종가 내력을 정리하였다. 상세한 내용을 직접 듣고 정리할 수 없어서 아쉬움으로 남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현 종손의 가훈인 ‘역지사지(易地思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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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집안에 4형제 '일문사문장'… 전국에 이름 날리다

한 집안에서 4형제가 글을 잘 지어 전국에 이름을 날리다.전남도 장흥 땅에는 예부터 지금까지 문필가가 많이 나온다. 그 단초를 연 집안이 수원백씨 기봉공파이다. 그래서 이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파조는 백광홍(白光弘, 1522~1556)이다. 그의 집안은 본래 경기도 수원에서 살았다. 그의 조부인 백회(白檜)가 연산군 때 장흥으로 귀양살이 와서 살게 됨으로써 장흥 사람이 되었다. 그의 아버지는 백세인(白世人)인데 호가 삼옥당(三玉堂)이며, 어머니는 광산김씨로 첨정(僉正) 김광통(金廣通)의 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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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구 물리친 선조 뒤이은 후손들 충절 드높이다

명나라에서 귀화하여 왜구를 물리치고 보성에 정착하다.보성선씨의 시조는 선윤지(宣允祉)이다. 선윤지는 명나라의 학사(學士)로서 1382년에 황제의 명을 받들고 고려에 왔다가 귀화하였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1392년(우왕 8)에 전남도 보성에 왜구가 침입하자 전남도안렴사(全羅道按廉使)가 되어 왜구를 물리친 후 백성을 위로하고 안정시켰으며, 유학 보급에 힘썼다. 이후 보성(寶城)에 은거하여 보성을 관향으로 삼았다. 호는 퇴휴당(退休堂) 또는 용암(龍庵)이라고 하였다.이후 보성선씨는 여러 계파로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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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를 이어 의병활동… 한말엔 항일 운동 '기개'

청백리로 '진원군'에 봉해져 진원박씨 시조가 되다.진원박씨 시조는 조선전기 사람 박희중(朴熙中)이다. 그는 문과에 급제하여 관직에 나가 외교관으로 일본을 다녀왔다. 김제 벽골제 축조에 공을 세우니 백성들이 제방 위에 그를 칭송하는 공덕비를 세웠고, 집현전 직제학으로 있으면서 청백리에 이름을 올렸다. 세종 때에 공신으로 진원군(珍原君)에 봉해졌다. 그래서 그의 후손들은 '진원'을 관향으로 삼아오고 있고, 박희중의 유훈 '청백전가(淸白傳家)', 즉 청백의 정신을 대를 이어 전하겠다 또는 청백리로 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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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 숭상해 교육자 다수 배출… 호남 명문가 우뚝 솟다

안범, 기아자를 구제하자 기아자들이 보답으로 '보은장'이라는 담장을 쌓아주다. 죽산안씨는 고려말 문하시중을 지낸 안원형(安元衡, 1318~)을 시조로 삼는다. 그는 순흥안씨 안향의 증손자로 개성에서 관직 생활을 하다가 말년에 외가'광산김씨'가 있던 광주 평장동(현재의 담양군 대전면 평장리)으로 이주하였다. 안원형의 5대손 안민(安民)이 보성으로 내려와 보성선씨와 혼인하여 보성파의 중시조가 되었다. 안민은 무과에 급제한 뒤 훈련원 참군으로 이시애의 난을 진압하기 위해 출정했다가 순절하였다.안민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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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력한 문중 결속력… '호남 대표적 실학자' 배출

판서공파 종가. 청 황제에게서 하사받은 피리 보관두문동 72현 중의 한 사람인 위경(魏鏡)이 장흥에 처음 터를 잡았다. 그의 후손들이 장흥과 그 주변에 살고 있다. 그 가운데 관산읍 방촌리 후손들은 강한 결속력을 토대로 위씨 집성촌을 이루며 몇 개의 그룹을 형성하였다. 먼저 판서공파가 있다. 판서공파는 위덕화(魏德和, 1551~1598)가 파조이다. 그는 무과에 급제한 후 임진왜란 때 선전관으로 있으면서 선조를 모시고 의주까지 갔다가 돌아왔으며, 언양현감 때에 전공을 세워 호성ㆍ선무공신으로 책록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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