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C
Gwangju, KR
2019년 6월 27일
전화번호 : 062-527-0015
이메일 : [email protected]
주말& 주말기획

주말기획

완도의 대발을 이용한 지주식 김양식(1930년)

김덕진의 역사속 생업> 김과 꼬막을 양식하여 남도식탁을 풍요롭게 하다.

김, 광양에서 김여익이 최초로 양식에 성공하다. 갯벌이 넓기 때문에 전라도에서는 각종 조개류와 해조류가 산출되었다. 조개류로는 주로 전복, 홍합, 맛, 꼬막, 굴 등이, 그리고 해조류로는 주로 미역, 감태, 가사리, 다시마, 김 등이 산출되었다. 전라도 사람들은 이들의 자연 산출에 만족하지 않고 인공 양식에 도전했다. 그리하여 성공한 것이 한 둘이 아닌데, 김과 꼬막이 대표적이다. 먼저, 김에 대해 알아보자. 김을 영미권 사람들은 보통 'black paper'라고 한다. '검은 종이'이니, 김으...
'공선정례'. 전라도에서 대전(大殿) 삭선(朔膳)으로 3월에 '세린 석수어' 50속, 5월에 '구비석수어' 15속을 각각 바쳤다.

김덕진의 역사속 생업> 굴비와 홍어, 남도문화를 만들다.

다양한 어종, 재미있는 이야기를 남기다. 전라도에서는 역대로 갈치, 게, 고등어, 낙지, 멸치, 문어, 민어, 삼치, 상어, 새우, 숭어, 오징어, 전어, 조기, 청어, 해삼, 홍어 등이 많이 잡혔다. 이들 어종은 나오는 때도 다르지만, 서식하는 곳도 각기 다르다. 이런 점으로 인해 지역마다 물고기와 관련된 이야기가 많다. 조기와 홍어 이야기는 뒤에서 하고, 여기에서는 청어, 숭어, 고등어 이야기만 해보겠다. 첫째, 청어. 청어는 한류 어종으로 동해 바다의 대표적인 물고기이다. 함경도 바다에서 ...
세계적으로 유명한 신안의 천일염 체험. 뉴시스

김덕진의 역사속 생업> 전라도 바다, 전국 최대 수산물 생산지

전라도 수산물, 전국 최대 생산량 전라도는 우리나라 최대의 수산물 생산지이다. 1932년 어업 현황 통계를 보면, 각 도 가운데 어획고가 가장 많은 곳은 경상남도이다. 당시 경남은 다수의 일본 어민 이주와 대일 수출로 인해 전국에서 어업이 가장 성황을 이루었던 곳이다. 그 다음이 전라남도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경남과 경북의 수산물 생산량이 전남과 전북보다 훨씬 많았다. 그런데 해방 이후부터는 상황이 완전히 바뀌었다. 2014년 7월에 호남통계청에서 발표한 최근 5년간의 어업 동향에 따르면,...
영암 상대포. 백제 왕인이 배를 타고 일본으로 간 곳이다. 일제 때 간척지 공사로 현재는 포구 흔적을 찾을 수 없다. 군에서 물을 가두고 정자를 짓고 배를 띄어 옛 포구 정취를 되살려 놓았다.

김덕진의 역사속 생업>포구, 경제와 문화의 중심지

상대포⋅회진, 국제항 전라도 지역은 배가 자유롭게 드나들고 풍랑을 막아줄 수 있는 포구가 많았다. 조선시대 '증보문헌비고'에서는 경상도(171), 전라도(148), 황해도(68), 충청도(56), 경기도(45), 평안도(25), 함경도(21), 강원도(20) 순으로 포구 현황을 기록하고 있다. 이들 전라도 포구에는 상선이나 어선 또는 세곡선이 드나들어 옛날부터 해상 교역업이나 운송업이 그 어느 지역보다 발달하였다. 그리하여 해외에까지 알려진 포구가 전라도에는 적지 않게 있었다. 남북국 시...
강진 다산초당. 강진군 제공

김덕진의 역사속 생업> 활발한 해상활동, 많은 표해록을 남기다.

전국에서 가장 높은 표류 빈도 전라도 군현 가운데 읍내 코앞에 포구가 있는 곳이 많아 전라도 사람들은 이 고을에서 저 고을을 갈 때 배로 빠르게 이동했다. 섬이 전국에서 많아 섬과 섬, 섬과 육지를 오가는 선박 운항도 잦았다. 또한 전라도 선원들은 원양 항해에 능해 자주 먼 바다를 나갔다. 동쪽으로 경상도를 돌아 강원·함경도까지, 서쪽으로 충청도를 돌아 경기·평안도까지 항해했다. 제주도는 나주·영암·해남·강진·장흥 선원들이 주로 다녔기 때문에, 타지역 사람들은 나주 등지의 배를 타고 제주도를 왕...
완도선. 길이 9m, 너비 3.5m. 11세기에 해남에서 청자를 싣고 여수 쪽으로 가다 완도군 약산도 앞바다에서 좌초되었다.

김덕진의 역사속 생업 > 전라도 바닷가 사람들, 조선과 항해의 달인

우리나라 발굴 고선박은 대부분 전라도 것 선박은 철도의 등장 때까지 우리 인류의 대표적인 운송수단이었다. 배 모양의 선사시대 토기가 여러 곳에서 발견된 것으로 보아, 우리 민족은 일찍부터 배를 만들어 항해했음을 알 수 있다. 생활 터전의 3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어 활발한 해상활동을 전개하며 살아왔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전라도는 조선업으로 유명한 곳이다. 백제 때 일본을 왕래하던 선박, 신라 말기 때 중국을 왕래하던 선박은 전라도 사람이 만든 것이 많았을 것이다. 왕건과 견훤이 후삼국을 통...
한지 뜨는 모습. 닥나무 껍질을 물에 풀어 발로 떠서 말리면 종이가 된다. 뉴시스

김덕진의 역사속 생업>전라도 종이, 1천년을 가다

종이 만드는 원료 닥나무, 전국에서 가장 많이 재배 종이는 문자를 기록하거나 그림을 그리기 위해 인류에 의해 발명되었다. 자연에서 자라는 나무나 풀이면 모두 종이 원료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종이를 주로 닥나무로 만들었다. 뽕나무과에 속한 닥나무의 껍질을 깨끗이 씻고 잘 삶아 죽을 만든 후 '외발뜨기'로 틀에 떠서 말리면 종이가 된다. 이 결과 우리 종이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우선 질기다. 그래서 1천년 이상을 견디어 오고 있다. 그리고 매끄럽다. 그래서 먹물을 잘 받아 글씨와 ...
전주 부채문화관. 전주 부채에 대한 역사적 가치와 문화사적 의미를 소개하기 위해 2011년에 설립되었다. 전주부채문화관 제공

김덕진의 생업>전라도 부채, 멋드러진 한국문화를 만들다.

전라도 부채, 멋드러진 한국문화를 만들다. 부채의 나라 조선 부채는 더위를 날리고 파리를 내쫓고, 그리고 우정을 나누고 멋을 내는 데에 긴요했다. 부채는 임금이 단오날 신하들에게 주는 선물로 이용되었는데, 그 부채를 절선(節扇)이라 했다. 선비들은 친구에게 정의의 표시로 부채를 선물로 주었고, 의관을 정제할 때에 합죽선(合竹扇)이라는 첩선(貼扇, 줄부채)를 쥐어야 외출이 가능했다. 아낙네들이 웃을 때 단선(團扇, 둥근 부채)으로 입을 살짝 가렸다. 우리 부채는 접는 부채와 둥근 부채가 대표적이었다...
담양의 대나무밭. 뉴시스

김덕진의 역사속 생업> 대나무, 전라도 산업의 근간이 되었다.

대나무, 무거운 공물 대나무는 그 자체가 국가에 세금으로 내는 공물이었다. 청대죽, 전죽, 장대죽, 죽순, 죽제품 등이 공물로 배정되었다. ①청대죽(靑大竹)은 약재로 사용되는 죽력(竹瀝)을 만드는 데에 사용되었다. 이는 내의원에 납품되었다. ②전죽(箭竹)은 무기로 사용되는 화살을 만드는 데에 이용되었다. 이는 내궁방이나 병조에 납품되었다. 청대죽과 전죽은 인조 때에 그것이 산출되지 않는 후금⋅청에게 주는 외교선물로도 사용되었다. ③장대죽은 야외 천막용이나 군대 깃대용으로 사용되었다. ④...
해남 옥매산. 김정호의 대동여지도.

김덕진의 역사속 생업 13> 사금과 옥돌, 전라도 광물을 대표하다.

전라도의 광산촌 고려왕조까지 전라도 땅에서 어떤 광물이 많이 나왔는지에 대해서는 알 길이 없다. 조선시대 지리지를 보면, 각도⋅각읍에서 산출되는 광물이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이도 이름이나 산지만 나열되어 있을 뿐 수량에 대한 언급이 없어 한계가 있다. 가령, 15세기 '동국여지승람'을 보면, "철, 무등산 장불동에서 생산된다"(광주), "화반석, 황원현의 매옥산에서 난다. 자연동, 현의 서쪽 황원리 망포에서 난다"(해남)는 식이다. 일제가 1936년에 도별 광산액을 28개 광물별로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