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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0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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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전라도 재발견

전라도 재발견

출처:대륙철도 연결개요의 사진(통일시대 Vol 141,2018년 7월;.phpnumber=2093)

전라도의 역사문화 정체성으로 호남의 지속발전 추진하자

문재인정부가 구상중인 한반도 신경제지도를 보면 호남발 한반도 상생평화루트, 유라시아횡단루트가 있다. 전라도 속의 한민족, 한민족 속의 전라도를 재발견 하면 21세기 전라도 속의 유라시아, 유라시아 속의 전라도를 구현하는 길잡이를 찾을 수 있다. 한민족의 고대사 특히 전라도 속의 한민족 고대사는 오늘날 한민족의 유라시아 웅비처럼 특정영역에 갇혀 있지 않고 민족이동, 문화교류, 문화융합 등과 같은 영역과 영역 간의 빈번한 이동, 상호작용을 특징으로 한다. 그렇기에 그러한 고대사의 민족적 특징에 맞...

영암지역 관광전문가의 왕인박사 아리랑

왕인은 백제 14대 근구수왕 380년경 3월 3일 월나군(月奈郡) 이림(爾林)의 성기동(聖基洞)에서 왕 순(王旬)의 외아들로 태어났으며 지금의 전남 영암군 군서면 동구림리의 성기동이다. 성기동은 '신령스런 바위(靈巖)'인 명월(明月)의 기운(氣運)이 가득한 월출산(月出山)의 주지봉(朱芝峰) 밑에 자리한 아늑한 터(址) 이다.지금으로부터 1600여년 전 박사 왕인이 탄생한 고택지(古宅地)가 자리잡고 있다. 고택지 앞으로 차고 맑은 냇물이 흐르는데 이 천이 성천(聖川)이며 성천 건너편으로 월출산의 아...

내가 아는 馬韓

김한남 (영암문화원장) 영산강 유역의 독자적인 정치체를 구축한 마한 남부 연맹은 150년이상 백제와 공존 했던 것으로 추정 되고 있다. 마한은 경기, 충청, 전라지역에 걸쳐 있었지만 4세기까지 대부분이 백제로 편입 되었지만 마지막 세력이 강한 영산강 유역의 마한은 늦게까지 발전해 왔다. 영암 시종면과 나주 반남면은 고대 마한의 마지막 중심지였던 영산강 유역의 비옥한 농토와 당시 바다와 같은 영산강을 이용한 내륙과 바다를 통한 대외교류가 활발히 이뤄졌기에 마한의 최대 세력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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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 1000년의 역사연구 이제는 한단계 발전해야 한다

이상 표는 연구자들 간의 키워드 가운데 반복되는 것을 빼고 압축했다. 전라도.전주.나주 등 전라도 대표 읍지에 대한 키워드나 후삼국통일 과정, 호족세력, 서남해안 지역, 삼별초, 조운제도에 대한 키워드도 공통적이다. 이와 별도로 지역 연구자들은 지역의 인물과 산신 그리고 나주 팔관회에 같은 행사 등에 대해 집약해서 관찰하고자 했다. 특히 나주 팔관회에 대한 관심을 키운 것이나 박영규.최지몽.은원충.탁광무.김구 등에 대한 발굴은 지역 연구자들의 역할이 컸다. 이와 같은 움직임은 향후 지속적인 관심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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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들 보란듯 쏟아내는데… 잊혀져가는 왕국

주지하다시피 역사는 정체성을 이해하고 올바른 가치관을 형성하는데 중요하다. 특히 역사는 특정한 정치, 사회적 체제의 산물로 현재성을 반영하고 있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집권자들은 자신들의 입장에서 서술하려 한다. 인조 정권이 광해군 정권에서 기술된 선조실록을 수정하여 서술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라 하겠다. 이러한 측면에서 부친의 유신 독재 평가에서 자유롭지 못한 박근혜 대통령이 무리하게 교과서 국정화를 시도하려 한 것이라 생각된다. 그러나 역사 서술은 ‘述而不作(술이부작)’ 정신에 입각하여 객관적인 ...
경양방죽 사진 경양방죽의 원래규모, 축소규모, 두 갈래의 수원과 물길

견훤을 호남의 역사적 인물로 재발견하자! 복원하자! 추앙하자!

견훤을 호남의 역사적 인물로 재발견하자! 복원하자! 추앙하자! 조성식(대한민국을 생각하는 호남미래포럼 정책위원장) 견훤은 후백제를 건국한 역사적 인물임에도 주인공 대접을 제대로 받고 있지 못하다. 최근의 연구성과를 반영하지 못하는 기존의 역사서술에서는 견훤은 여전히 부정적인 인물로 묘사하고 있다. 특히 왕건은 긍적인 반면에 견훤은 부정적인 역사서술이 많다. 왕건에게 멸망 당한 것도 서러운데 천년 이상을 건너뛴 후예들한테 칭찬을 받지 못할 지언정 나쁜 인물로 치부 당하는 것은 더욱 억울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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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건보다 무덤 초라하지만 그는 꿈꿨다, 마한의 부활을

후백제를 개창한 견훤(甄萱.867~936)처럼 역사적 평가가 극명하게 나누어지는 인물은 좀체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후삼국이 정립된 시기에 최후의 승자가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견훤의 탄생에는 두 가지의 이야기가 전승되고 있다. 먼저 삼국사기를 보면, 그는 이(李)씨의 성을 가진 상주 가은현(加恩縣.문경) 출신의 아자개의 아들로서 변방에 근무하다 고위 군관으로 성장하여 일군의 세력을 형성한 인물로 나중에 견(甄)씨로 성을 바꾸었다는 내용이다. 또 하나의 이야기는 야사를 중심으로 하는 삼국유사에 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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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관광객 유치 육해공 교통망 대폭 확충 절실

828년 신라로 귀국한 장보고는 그의 고향 청해진을 수군(水軍)기지로 설진(設陣)하는 한편, 신라와 중국, 일본을 잇는 최초의 민간무역전진기지로 만들었다. 그는 견당매물사와 대일회역사를 당과 일본에 각각 파견, 국제민간무역을 벌였다. 이들 상단은 중동 및 동남아 등지에서 생산된 진귀한 물화(남해박래품)를 사서 주변국은 물론, 페르시아 상인들에게도 팔았다. 이 때문에 당시 청해진에는 온갖 물품을 실은 교관선(무역선)의 입출항이 빈번했으며 아랍 및 페르시아 상인들로 넘쳐났다. 이처럼 9세기의 청해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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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산강 유역의 독자 정치체… 150년 이상 백제와 공존

영산강 유역의 독자적인 정치체를 구축한 마한 남부 연맹은 150년 이상 백제와 공존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마한은 경기, 충청, 전라지역에 걸쳐 있었지만 4세기까지 대부분 백제로 편입됐다. 영산강 유역의 마한 세력은 마지막까지 저향했다. 영암 시종면과 나주 반남면은 고대 마한의 마지막 중심지였다. 영산강 유역의 비옥한 농토와 당시 바다와 같은 영산강을 이용함으로써 내륙과 바다를 통한 대외교류가 활발히 이뤄졌기에 마한의 최대 세력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 기원전 3세기 무렵 마한, 진한, 변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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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대표 ‘물과 숲의 현장’ 경양방죽 되살릴 수 없나

5.18항쟁은 궁극적으로 한반도 민족자주, 대한민국의 민주인권평화를 실현해가고자 하고 있기에 5.18 원형복원은 그런 항쟁계승의 장으로 복원해야 한다. 아시아문화중심도시는 한국적 고유성과 아시아적 교류.융합성의 상생발전을 실현해가고자 하고 있기에 아시아문화전당과 5대지구는 그런 상생발전의 장으로 조성해가야 한다.5.18항쟁계승은 한반도 민족자주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체험계승으로 실현해가고, 한국적 고유성과 아시아적 교류.융합성의 상생발전은 아시아 교류.융합 체험발전으로 실현가면서 상생발전의 관계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