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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6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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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이윤선의 남도 인문학

이윤선의 남도 인문학

베트남 다낭 남오마을 앞 바다에서 멸치를 잡고 있는 바구니배(건너편이 다낭 시내임). 이윤선 촬영

이윤선의 남도인문학>베트남의 느억맘(Nước Mắm)과 우리 젓갈

베트남 중부 다낭 해안의 젓갈 담던 마을 남오(Nam O) 베트남을 방문하면서 가장 놀랐던 것이 느억맘과 맘넨이 한국의 젓갈과 너무 비슷하다는 점이었다. 나는 20여년 전 베트남을 처음 방문했을 때부터 이 관심사를 확대시켜 왔다. 하지만 정작 심도 있는 연구의 단계로 끌어올리지는 못했다. 여전히 숙제로 남아 있는 셈이다. 최근 2014년 베트남 중부 다낭 해안에 있는 남오 마을을 다시 찾아 느억맘 제조 전문집을 조사했다. 2015년과 2016년 재차 방문하여 바구니배(흔히 '통버이'라고 부름)로 ...
광주지산유원지에서 남도민요하는 강송대 박초향 명창. 강송대 명창 제공

이윤선의 남도인문학>육자배기란 무엇인가

어머니의 '흥그레타령'으로부터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모방(작은방)에 상방을 모셨다. 어머니는 아침마다 상방에 메를 지어 올렸다. 메를 올릴 때마다 향을 피우고 나지막하게 우셨다. 아니지 노래했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그것이 노래인지 울음인지 분간하지 못했다. 초하루와 보름날이면 머리 풀고 앉아 통곡을 하셨다. 어린 나의 아침잠을 깨는 이 울음소리는 내가 가장 듣기 싫어하던 소리였다. 잠 많은 내게 그 울음들은 때때로 꿈결 사이를 비집고 들어와 혼몽의 세계로 인도했다. 몇 시간이면 기억에서 사라지...
니람 만들기-쪽 색소물을 석회에 부은 다음 독에 넣는다

이윤선의 남도인문학>청어람(靑於藍), 득음을 닮은 색

수의(壽衣)에서 배내옷으로, 쪽빛의 매혹 "한 인간의 존재가 그 참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점진적일 수도 있다. 저 자신 속에 너무나도 깊이 꼭꼭 파묻혀 있어서 도무지 새벽빛이 찾아들 것 같지 않아 보이는 어린이들도 있다. 그래서 그들이 문득 수의(壽衣)를 밀어붙이며 나사로처럼 일어서는 것을 보면 우리는 의외라는 듯 깜짝 놀란다. 그런데 사실은 그 수의란 다름이 아니라 어린아이의 배내옷이었던 것이다." 내가 즐겨 인용하는 장그르니에의 섬에 나오는 한 장면이다. 나도 그랬다. 홰치는 닭소리가 해무 자...
지난 2013년 국립부산국악원 연악당에서 크라운-해태제과 임직원 100명이 판소리 효(孝) 공연을 펼치고 있다. 뉴시스

이윤선의 남도인문학> 청암 김성권을 통해 보는 고수론(鼓手論)

일고수 이명창, 암고수 숫명창 "북치는 맛은 뭐니뭐니 해도 명창들이 할 때 신바람이 나지. 못하는 사람한테 북을 치면 답답하고 짜증나고 그래. 북을 궁글려 버리고 싶은 심정이제. 북은 소리에 따라 북이 소리를 내는 것이야. 이런 말이 있어. 일고수 이명창, 이 말은 무슨 말이냐 하면 고수가 잘 쳐줘야 소리를 잘 할 수 있다 이런 뜻이지" 명고수 청암 김성권의 구술이다. 판소리 창자의 '소리길'을 도와주는 것이 고수의 일차적 역할이다. 하지만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판소리를 진행하는 것을...
여수시지부록

이윤선의 남도인문학> 여수 영당(影堂)

여수 국동 영당은 우리나라에서 이순신 장군을 신격(神格)으로 모신 유일한 당산(堂山)이다. 도서해안지역에서는 줄여서 당(堂)이라 한다. 표지판에 간략하게 영당의 역사를 기록해두었다. "예부터 바다를 수호하는 해신당으로 1443년 단을 두어 고려 충신 최영 장군을 모셨다. 임란 후인 1763년 사당(해신당)을 건립, 충무공 이순신 장군을 주벽으로 녹도만호 이대원, 정운 장군 영정을 같이 봉안하고 풍어제 및 용왕굿을 행해왔다. 1943년 일제의 탄압으로 영정이 철폐되고 당우는 1976년 국동어항단지 ...
여수 영당풍어굿(1983년 5월 8일), 고 정홍수 제공

이윤선의 남도인문학>풍수의 본질

풍수(風水)란 무엇일까 장풍득수(藏風得水)에서 온 말이다. 우리나라의 기후 특성상 겨울에는 북서풍이 드세고 여름에는 남동풍이 많다. 이 바람을 피하고 물을 구하기 쉬운 곳이 풍수 명당이다. 국어사전에는 "집, 무덤 따위의 방위와 지형이 좋고 나쁨과 사람의 화복(禍福)이 절대적 관계를 지닌다는 학설, 또는 그 방위와 지형"으로 설명하고 있다. 좌청룡 우백호, 뒤편에는 산이 있어야 좋고 앞쪽으로는 물이 흘러야 좋다는 배산임수의 원리들이 여기서 나왔다. 모두 땅에 대한 관념과 철학이자 과학이기도 ...
윤상원 열사와 박기순 열사 (사)들불열사 기념사업회 제공

이윤선의 남도인문학> 창작판소리 윤상원歌

사람들이 모여든다/ 휑하니 널려있는 공동묘지/ 찬바람이 몰아치는디/ 무거운 걸음으로/ 두리번거리며 모여든다/ 어느 외진 무덤 앞에 서더니만/ 사진 두 개를 세워 놓는디/ 한사람은 대학 학사모 청년이요/ 또 한 사람은 앳띤 여고생 차림이라/ 그 앞에다 젯상을 차려놓고/ 신방에 쓸 이불이며/ 혼례복을 널어놓고/ 무녀 한 사람 나오더니/ 넋이야 넋이로다/ 두 사람 영혼을 불러내니..../ 세마치장단의 판소리가 장엄하게 울려 퍼진다. 임진택의 창작판소리, 영혼결혼식을 읊는 대목이다. 불러낸 영령은 누구...
1963년 목포 가족계획 계몽공연-목포예총 제공

이윤선의 남도인문학>근대목포의 공연예술

유행가는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질문이 적절치 않다. 유행가는 특정한 시기에 대중의 인기를 얻어서 많은 사람이 듣고 부르는 노래다. 이 풀이를 적용한다면 유행가 없는 시대가 어디 있겠는가. 시경의 풍요(風謠)으로부터 향가, 고려가요, 근대기의 가요, 지금의 대중가요에 이르기까지 모두 유행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범박하게 장르의 하나로 호명했던 것은 근대기 대중가요부터다. 대중가요는 창가로부터 시작한다. 창가(唱歌)는 갑오개혁 이후에 발생한 근대음악 형식을 일컫는 말이다. 서양악곡의 형식을 빌려 지...
1963년경 목포예술제 공연 장면-목포예총 제공

이윤선의 남도인문학 > 목포 공연 소사

목포 최초의 극장은 어디일까 연극 혹은 공연이란 호명으로 소환할 수 있는 첫 번째 대상은 근대기 극장이다. 1904년 목포 복만동의 '목포좌'를 주목한다. 목포에 처음으로 들어선 근대적 극장이라고 할 수 있다. 목포좌는 운영 미비로 1908년 없어진다. 같은 해 상락동에 '상반좌'가 설립된다. 1914년에 증축하여 138평 규모에 이른다. 1929년 허가기간 만료로 문을 닫는다. '상반좌'가 폐쇄되기 이전, 무안동에 활동극영화 상설극장으로 '희락관'이 설립된다. 1926년 화재로 없어진다. 1...
1-진달래화전-이애섭 의례음식장 제공

이윤선의 남도인문학> 봄날의 혼인, 잔치음식의 인문학

봉채떡은 왜 만들까 찹쌀 3되와 붉은 팥 1되로 찰시루떡을 했다. 2켜다. 중앙에는 대추 7개를 둥글게 돌리고, 그 가운데 밤 하나를 놓았다. 떡시루의 술이 바깥원이요 안으로는 팥이 원이며 7개의 대추가 또한 원이다. 찹쌀의 흰색을 더하니 마치 여러 개의 원이 겹을 이룬 듯하다. 사과에 비유해본다. 사과껍질이 떡시루의 술이라면 안으로 꽃받기가 있고 씨방이 있으며 배(씨앗)가 있다. 감을 잘라본다. 외과피(껍질)가 있고 중과피, 내과피로 이어져 씨앗이 들었다. 시루 가운데 밤 한 톨을 놓으니 마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