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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2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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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옥연의 문향

백옥연 광주 광산구 문화재활용팀 팀장 광산구 역사문화전문위원

광양 봉양사, 화순 도원서원_신재 최산두

"여보게, 이제 나갈 시간이 되었네. 오늘이 내 삼오 젯날이라 먹을 것이 푸짐할 거야" "미안허이, 오늘은 귀한 손님이 오셔서 내 나갈 수가 없네. 자네나 귀한 음식 대접 잘 받고 오시게나" 사람이 자기 삼오제에 나가서 젯밥을 얻어먹을 수는 없고, 귀신이나 가능한 이야기다. 그러니까 이 대화는 귀신들끼리 주고받는 바람결의 말이다. "아니 누가 왔단 말인가? 도대체 누구길래 걸신 들려 죽은 자네가 젯밥을 마다하나?" "허허 천기누설이라 말하면 아니 되네. 훗날 조선의 어둠을 밝힐 한림학사가 오셨으...
1.방산서원 전경_촬영_백옥연

구례 방산서원, 문효공 윤효손

백두산에서 시작하여 금강 설악을 거쳐 동해를 끼고 굽이치다가 태백에서 서향하여 지리산까지 흘러 내려온 백두대간, 이 땅의 근골을 이루는 한반도 등뼈의 저 아래 꼭짓점이 지리산 천왕봉이다. 강을 건너지 않고, 끊기지 않고, 산맥으로만 이어지는 큰 줄기에서 1개의 장백정간과 13개 정맥들이 나무의 줄기와 가지처럼 온 산하로 펼쳐진다. 그 능선과 계곡의 주름 폭 사이사이에 철 따라 춘하추동이 깃들고, 때에 따라 우리들의 생로병사가 있다. 지금 찾아가는 길은 방산서원. 지리산의 주능선, 천왕봉-장터목-세...
경원문_해촌서원 외삼문(최부(崔溥), 임억령(林億齡), 류희춘(柳希春), 윤구(尹衢), 윤선도(尹善道), 박백응(朴伯凝) 등 6현을 배향)

미암 유희춘과 덕봉 송종개

우슬재 넘으면 해남이다. 고개가 높아 소도 무릎을 꿇는다는 그 재 넘어 저수지 사이로 난 숲길을 따라, 해촌서원 가는 길이다. 초록도 지고, 단풍도 지고, 나무는 옷을 벗어버린 가을의 끝자락. 자리 잡지 못한 낙엽들이 바람 따라 쓸려 다니고 있다. 겨울과 어둠이 내리기 직전의 실루엣 같은 시간들. 사랑이 사랑에 도착하기 전에 더 설레고 조바심 나는 것처럼, 500년 전 조선의 최고의 격조높은 로망스를 찾아가는 발길이 그러하다. 해촌서원에는 최부, 류희춘, 임억령, 윤선도 등 6현이 배향되어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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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忠의 대가는 죽음이었다

천지인(天地人), 무등산 꼭대기 세 개의 봉우리에서 시작된 단풍이 느린 걸음으로 하산하고 있다. 단풍은 서석대 입석대 광석대의 현묘한 주상절리를 휘돌아 규봉암에서 며칠 머물고는 내려온다. 능선을 타고 흐르면서 장불재에 이르러 억새와 어우러지는 풍경은 가히 천상의 그것이라 할 만하다. 저렇게 수직으로 솟아오른 돌기둥은 아득한 옛날, 그러니까 7만년 전 중생대, 이 땅을 주름잡던 공룡의 등뼈처럼 보인다. 단풍은 그것이 무너져 내려 돌의 강을 이룬 너덜을 지나 원효스님처럼, 신라의 원효계곡으로 내려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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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롱나무 아래서 물었다 忠인가 孝인가, 무엇이 우선인가

선비 최부(崔溥)는 제주에서 ‘추쇄경차관(推刷敬差官)’으로 일했다. 이 벼슬은 도망간 노비를 추달하거나, 범죄수사를 담당하던 그 시대의 경찰이었다. 임무를 수행하던 중 부친상을 당했다. 한시바삐 고향인 나주로 돌아가야 한다. 기상이 어지럽다고 주위 사람들이 말렸다. 그러나 선비가 한낱 날씨에 굴할 것인가. 만류를 뒤로하고 최부는 출항한다. 때는 한겨울, 북서계절풍이 몰아치고 시시각각 변하는 바다의 너울은 사납다. 43명을 태우고 제주 별도포를 떠난 배는 거센 폭풍우를 만나 추자도 앞바다에서 표류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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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번 훼철되고 복건… 애절한 수난의 역사

다섯 번 헐리고, 다섯 번 새로 지으니, 당쟁이 휩쓴 올곧은 한 선비의 수난사함평 자산서원 가는 길, 피고 지고 난만했던 백일홍이 끝물이다. 붉은 꽃이 몇 닢 안 남았다는 것은 백일이 다 돼 간다는 뜻이다. 꽃이 진 나뭇가지는 노인의 등뼈처럼 메마르게 보인다. 나무는 이제 껍질을 벗을 것이다. 구각(舊殼)의 탈피, 그것을 청렴과 무욕의 상징으로 보아 서원 마당에도 이 나무를 많이 심는다. 배롱나무 꽃이 처음 피었을 때는 늦봄이었다. 사람들은 그 무렵 모를 심었다. 백일이 흐르는 동안 모가 자라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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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스승… 푹푹 찌는날 찾아뵌 서슬퍼런 대쪽정신

염천 복중이라, 한낮이 찌고 끓는다. 체온을 넘는 저 열기에 사람은 휘청거리지만, 세상만물은 안 크는 것이 없다. 들에 옥수수 내 키 만큼 자라 곡식이 알알이 들어찼고, 깨 콩 고추 마늘 하루가 다르게 크고 있다. 처음 백일홍 피었을 때 모내기 했던 어린 벼는 이제 무릎까지 차 올랐고, 백일 뒤에 백일홍 질 때, 벼가 되어 있을 것이다. 밤도 숨이 턱턱 막히게 후끈거리더니, 새벽이 되어서야 바람도 좀 불고 한숨 돌릴만하다. 장성 가는 길에 안개가 자욱하다. 안개가 밀리면서 서서히 열리는 여름 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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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마저 초월한 두 선비, 정암과 학포의 ‘브로맨스’

세상에 머무는 동안 필연적으로 맞이해야 할 반가운 손님들이 있다. 첫 손님은 나를 태어나게 한 부모일 것이고, 둘째가 친구다. 어느덧 성장해 사랑이 찾아오고, 자식이 태어난다. 그런 만남들 속에 좋은 스승이 다녀가셨다면 더 없이 행복한 일이다. 세상을 떠나기 전에 하나 더 남아 있으니, 그동안 바르게 잘 살았는지를 물어볼 저승사자와의 만남이다. 그 한 생애 속에서 사랑이 나비처럼 날아오는 순간이 생이 개화하는 절정의 시간이 될 것이고 우정은, 오래도록 생의 지극한 시간으로 남을 친구는 어느 교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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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분ㆍ시대 초월한 선비와 기녀의 '세기적 로맨스'

사랑하는 사람이 아프다고 멀리서 들려오는 소식. 가고 싶어도 갈 수가 없다. 하나는 신분이 가로막고 또 하나는 제도가 가로막고 있다. 사대부가의 관리와 천한 신분인 관기의 사랑이 애초에 용인되지도 않았거니와, 님은 새 부임지로 천리 길을 떠난 지 오래이고 기녀는 자기가 속한 함경도 관청을 벗어날 수가 없다. 이럴 때 여인의 선택은 대개 탄식과 울음이다. 그러나 기녀 홍랑은 법의 울타리를 벗어던지고, 님을 찾아 먼 길을 떠난다. 훗날 닥칠 고초와 난관 따위가 어찌 사랑을 가로막을 수 있겠는가.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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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성전 앞 연한 봄빛… 새로운 천년을 꿈 꾸다

전라도 정명 유교문화의 산실, 나주향교입춘부터 곡우까지 널을 뛰는 날씨가 거듭되고 '누런 먼지가 만 길 까지 뻗쳐 있다'는 황사만장(黃砂萬丈)이 며칠 지속된다. 곡우(穀雨)지나 곡식을 윤택하게 하는 봄비가 내리니 산과 들의 연두빛은 진한 초록으로 물들것이고, 들에서는 볍씨를 틔워 못자리를 마련하고 농사를 시작할 것이다. 서해에서 잡힌 알이 통통하게 벤 곡우사리(흑산도 근처에서 겨울을 보내다 북상해 서해에서 잡힌 조기)가 밥상에 오를 것이고, 푸르른 보리밭길 맑은 하늘에는 종달새가 무어라고 지껄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