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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1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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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 역사기획

역사기획

충칭 대한민국임시정부청사 '연화지' 의 계단. 1945년 백범 김구 선생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들이 해방 후 조국으로 돌아갈 때 마지막 사진을 찍었던 곳이다.

“아! 광복” 계단에 선 임정요인들 마침내 환국사진 찍다

중국 충칭은 대한민국임시정부가 마지막 근거지로 삼았던 곳이다. 상하이에서 출범한 임시정부는 항저우, 전장, 창사, 광저우 등을 거쳐 1940년 9월 충칭에 자리를 잡았다. 충칭에서 임시정부는 항일 독립운동에 온 힘을 다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5년 후 해방의 기쁨을 맞이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충칭에서도 총 4곳의 청사를 옮겼다. 양유가, 석판가와 오사야항, 연화지가 그곳이다. 연화지는 충칭으로 옮겨온 뒤 입주했던 네 번째이자 마지막 청사다. 현재 충칭에서 유일하게 남아있는 청사이기도 하다. 중...
중국 가흥 김구 피난처 전경.

홍커우 폭발 뒤 길길이 뛴 일제… 항저우로 피해 전열 정비

1932년 4월 윤봉길 의사의 상하이 홍커우공원 의거 이후, 임시정부 요인들에게 목숨을 건 도피 생활이 이어졌다. 일제는 한인애국단장인 김구 선생을 체포하기 위해 60만 위안, 현재 한화 가치로 수백억원에 달하는 현상금을 걸고 강력한 수색작업을 펼쳤다. 임시정부 요인과 가족들도 일본의 탄압을 피해 상하이를 탈출해야만 했다. 김구 선생은 중국인 지사 주푸청 등의 도움을 받아 가흥으로 이동해 2년 간의 피난생활을 시작했다. 중국 가흥시 남문 매만가(梅灣街) 76호. 김구 선생이 일본 군경의 추격을 피...
중국 상하이 임시정부 청사 전경.

김구 선생 가족들 배추 주워 시래깃국 연명했던…

4월11일은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 되는 날이다. 100년 전 1919년 중국 상하이가 임정의 첫 출발지다. 이후 임시정부는 일제의 박해가 심해지자 항저우, 자싱, 전장, 난징, 창사, 광저우 등 중국 각지를 전전해야 했다. 임정 수립 100주년을 맞아 그 '고난의 여정'을 따라가봤다. 광복회 광주·전남지부와 함께한 5박6일간의 여정이다. 첫발걸음의 시작은 중국 상하이 '신천지(新天地) 거리'다. 현재는 상하이의 대표적인 패션의 거리이지만, 거리에 대한민국 임시정부청사가 있는 곳이다. 중국 상...
도쿄 시나가와 나시오니 히토히로부미 무덤으로 도리이와 수많은 석등이 있다.

조선 침략원흉 무덤은 번듯한데… 안중근 혼백 찾을 길 없어

▩ 안중근 순국 109주년 - 도쿄 이토 히로부미 무덤을 가다  1910년 3월26일 오전 10시4분. 간수가 종이 두 장을 접어 눈을 가렸다. 그 위에 다시 흰 천을 씌웠다. 안중근은 앞서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것은 동양평화를 위한 것이었다"고 되뇌었다. 간수가 계단 7개를 올라 교수대로 이끌었다. 양반다리 자세로 앉으니, 한 명이 목에 밧줄을 감고 교수대 한쪽을 밟았다. 꽈당하는 소리를 내며 뚝 떨어졌다. 11분-. 10시15분, 그는 독립의 혼이 되었다.  ●도쿄 한복판에 들어선 이토 ...

돌아온 안중근 숭모비 복원은 어떻게?

'전국 제1호' 안중근 숭모비 복원의 최대 난제였던 '비신(碑身)'의 행방이 25년 만에 극적으로 드러나면서 앞으로 재건립 방향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안중근 기념사업회나 숭모회 등과의 논의가 필요하긴 하지만, 재건립 된다면 원래 있었던 광주공원이 유력하다. 다만 현재 비신 대신 동상이 올려진 '좌대(座臺) 활용 등은 논의가 더 필요한 상황이다. 광주시 등 유관기관의 입장도 재건립에 긍정적인 상황이다. ●5대 과제 중 3대는 해결 앞서 전문가들은 지난 1995년을 마지막으로 사라진 안중근 숭모비를...
1968년 촬영한 광주공원 항공사진. 사진중앙 실내체육관과 오른편에 성거사지 5층탑이 보인다. 원내는 안중근 숭모비.  광주시 제공

가까스로 되찾은 ‘안중근 숭모비’ 바로 다시 세운다

25년 만에 되찾은 전국 제1호 안중근 의사 숭모비를 재건립하자는 움직임이 본격화 됐다.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 의거 110주년에 맞춰 재건립해, 안 의사의 항일독립정신을 기리고 미래세대 역사교육 공간으로 활용하자는 뜻깊은 움직임이다. 28일 안중근 의사 숭모비 재건립 추진위원회(추진위)에 따르면, 지난 1995년 이후 사라졌던 안중근 숭모비가 최근 나주에서 발견됨에 따라 광주시와 추진위가 공동으로 현 소유자로부터 기증 절차를 밟고 본격적인 재건립 추진에 나서기로 했다. 추진위는 이날 긴급 모임을 ...
25년간 안중근 숭모비가 보관됐던 나주의 한 석재상 야적장. 이 석재상 대표가 25년 전 광주에서 옮겨와 이곳에서 보관해 오다 최근 나주에 사는 이모씨에게 숭모비를 팔았다.

중외공원서 나주 석재상까지… 숭모비 25년 미스터리 풀렸다

지난 1961년 전국 최초로 광주공원에 건립됐던 안중근 의사 숭모비는 어떻게 해서 나주 한 석재상까지 흘러 들어갔을까. 본보 취재 결과 숭모비는 모종의 이유로 해당 석재상(공장)에 넘겨져 무려 25년간 가공소 한켠에 방치된 것으로 확인됐다. 광복 후 세워진 제1호 숭모비라는 역사적 의미를 지녔음에도 누군가에 의해 팔려간 비운의 비석. 역설적이지만 긴 세월 누구도 그 가치를 알아보지 못하면서 방치된 까닭에 오늘날 글씨 하나 훼손되지 않고 제 모습을 지킬 수 있었다. ● 중외공원에서 나주로 옮겨져 2...
광주 중외공원에 있는 안중근 의사 동상 안내문에는 단지동맹(斷指同盟)에 참여하지 않은 추정인물(우덕순)이 명단에 올라와 있다.

보훈청 홈페이지엔 安 의사 하얼빈 의거가 ‘1879년’

 26일은 안중근 의사가 순국한 지 109주년 되는 날이다. 정부는 내년 110주년을 맞아 안중근 의사 유해발굴, 독립운동 항적지 순례 등 다양한 기념사업을 준비 중이다.  그러나 정작 국가보훈처 홈페이지 등에는 여전히 안중근 의사에 대한 잘못된 정보들이 가득하다. 정부마저도 잘못된 역사를 전달하는 부끄러운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국가보훈처 홈페이지 '현충시설 정보서비스'를 보면 안중근 의사와 관련된 사당(해동사), 기념관, 동상 등을 소개하고 있다.  하지만 이 시설물을 소개하는 내용 대다수가 ...
광주 동구는 26일부터 다음달 10일까지 동구 계림동 푸른길공원 원형광장에서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념하는 독립투쟁 기록사진 60여점을 전시한다.

독립운동 재평가 좌우이념 벗어야

일제에 맞서 독립운동을 했던 인사가 사회주의 활동 전력 탓에 여전히 공로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남북 화해 분위기에도 여전히 벽이 높은 '반공 이데올로기'의 낙인이다. 대표적 인사가 김범수(1899~1961), 이기홍(1912~1996) 선생이다. 김범수 선생은 일제 치하에서 의사 생활을 하다 1919년 광주의 3·1운동인 '3·10만세운동'이 전개되는 과정에서 태극기를 제작·공급했고 일본 군·경에 체포돼 3년간 옥고를 치렀다. 이기홍 선생은 1929년 광주 고보 재학 당시 광주학생독립운동에 투...
1919년 2· 8 독립선언이 울려 퍼진 도쿄 치요다(千代田)구 니시간다에 위치한 옛 재일본 동경기독청년회 건물 터. 동경 Y건물이 헐리고 그자리에 6층 건물이 들어서 세탁 용역업체 등이 입주해 있다.

도쿄항일 현장 가다=와세다大 앞 산쵸안 식당서 독립선언서 작성

글·사진=도쿄 이건상 선임기자 "조선청년독립단은 이천만 조선민족을 대표하야 정의와 자유의 승리를 득한 세계 만국의 전에 독립을 선언하노라" 1919년 2월8일 오후 2시, 적국 일본의 수도 한복판에 "대한독립 만세"의 함성이 폭발했다. 조선 유학생 600여명은 조선청년독립단 이름으로 독립을 선언하고 혈전을 결의했다. 이어 '일한 합병이 동양의 평화를 요란케하니 독립을 주창' 한다는 4개항의 결의문도 외쳤다. 그들은 강당을 박차고 나가 도쿄 도심으로 진출하려 했다. 일제 경찰은 건물을 에워싸더니 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