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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3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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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 기획시리즈

기획시리즈

지난해 거제에서 열린 제3회 킥복싱 무예타이 전국대회장에서 취임식을 가진 조무수 세계전통무예총연합회총재

인물박스 : 나의 삶, 나의 도전 , 조무수 5·끝-프로태권도 육성 세계적 UFC선수 배출 꿈

 조무수 총재가 격투기와 인연을 맺은 것은 태권도인으로 자연스런 만남이었다. 직접적인 인연은 태권도 공인 9단인 박석우 (사)세계전통무예총연합회 및 대한청소년전통무술연맹 총괄이사장과 교류하면서 시작됐다. 그는 태권도 국가대표를 지낸 박 이사장과 20여 년 전부터 교류하며 부총재로서 이들 행사를 후원하며 관심을 가졌다.  그가 본격적으로 격투기에 참여한 것은 지난 2010년 경북 문경 킥복싱·무에타이 국제대회에 2억원을 지원하고, 이듬해인 2011년에도 예천 국제대회에 역시 2억원을 지원하면서부터...
지난해 대한비료 시무식에서 발언하고 있는 조무수 회장.

나 의삶, 나의 도전 , 조무수4-고향 선배 지원받아 사업적 성공 경험

  1980년대 중반, 미국에서 귀국한 조무수는 김수한 의원과 인연을 맺기전 사업에 뛰어든다.  40대에 들어선 그가 한신공영 김현종 회장을 만나 잠시 상무로 일하고 있을 때다. 김 회장이 한신이 따낸 서울대 미술대자리에 한국디자인포장센터 공사를 하청줄테니 직접 공사를 맡아보라고 했다. 문제는 자금이었다. 고향 선배이자 본인을 전남대 경영대학원 석사과정으로 이끌었던 전남대 조성근 교수를 떠올렸다. 조 교수는 보성지역에서 주조장을 하며 부잣집으로 소문난 집안 사람이었다. 그는 직접 편지를 써 자금지...
김무성 의원(왼쪽 두번째)이 한나라당 원내대표이던 시절 조무수(오른쪽 끝) 자택을 방문한 당직자들.

나의 삶, 나의 도전 조무수3- 민주화 과정서 ‘용팔이 사건’ 등 직접 겪어

1980년대 후반으로 접어들 즈음, 88서울올림픽이 다가오면서 민주화를 요구하는 국민적 요구가 극에 달했다. 당시 김수한 의원 조직총괄본부장을 맡고 있던 조무수는 민주화 투쟁의 현장에 있었다. 그는 시위대를 향해 날아온 최루탄으로 얼굴이 퉁퉁부을 정도로 최일선에 나가 싸웠다고 했다.  통일민주당 창당때는 폭력배들이 지구당 창당을 방해한 사건인 이른바 '용팔이 사건'을 직접 겪게 된다.  당시 사건 주모자인 김용남의 별명 '용팔이'에서 유래되었다. 이 사건은 전두환 정권의 지시로 안기부가 개입한 ...
아시아.중동지역 태권도시범단으로 파견돼 직접 시범을 보이고 있는 조무수 단장.

‘나의 삶, 나의 도전’ – 조무수2… 엄혹한 시절, DJ 미국 망명길...

  태권도와 인연은 계속된다. 88서울올림픽이 임박할 시점에 그는 태권도가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채택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아시아·중동지역 시범단장으로 파견된다. 42명의 단원을 데리고 현지로 달려간 조무수 단장은 직접 시범을 보이면서 태권도 홍보에 나섰고 결국 태권도가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채택되는 데 일조하게 된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김영삼 대통령 시절에는 국기원 이사 자격으로 터키 한국태권도 체육관 건립 현장에 직접 파견돼 한국-터키 태권도 교류를 잇는데도 역할을 하게 된다.  태권도는 그...

‘나의 삶, 나의 도전’ - 조무수 세계전통무술총연맹 총재

    '나의 삶, 나의 도전'  조무수 세계전통무술총연맹 총재-1  (강덕균 선임기자가 만난 사람)  보성 겸백 출신으로 어릴 적 태권도와 인연을 맺으면서 삶의 방향이 결정된 조무수(74) 세계전통무술총연맹 총재 겸 대한청소년전통무술연맹 총재. 그는 전국체전에서 금메달을 따내면서 그 인연으로 김대중 전 대통령 경호업무를 담당하게 됐고 이후 정치권에 참여하며 우리나라 민주화를 이끄는데도 적극 참여했다.  태권도 공인 6단인 그는 88서울올림픽이 임박했을 즈음, 올림픽 정식종목 채택을 위해 아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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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삶, 나의 도전 – 김대화 금호종합건설회장 ⑤·끝> 수도권향우회 수장 맡아 고향...

고흥농축산물유통법인 설립 산파흐트러진 향우회 재정비 솔선수범500만 수도권 향우 수장으로 지휘부자가 망해도 3년은 간다고 했던가. 그는 남아있는 재산을 정리, 경기도 광주에서 부동산컨설팅사업에 뛰어든다. 사업수완이 남다른 그는 1년만에 소기의 성과를 거두며 안정을 찾아갔다. 향우회와도 일정한 거리를 두며 사업에 전념했다. 건설회사도 설립, 사업적 성과를 올려갔다. 그러던 중 운명과도 같은 향우회와의 인연이 또 다시 시작된다. 경기도 광주시호남향우회 연합회장을 맡아 달라는 것이었다. 몇번의 고사 끝...
2017년 4월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재경광주전남향우회와 전남일보 공동 주최로 열린 전라남도귀농귀촌박람회에 참석한 김대화 회장. 사진 왼쪽부터 양준욱 전 서울시의회 의장, 최봉인 상임부회장, 김대화 회장, 이낙연 총리, 이재욱 전남일보 사장, 천정배 국회의원.

수도권 향우회장 맡아 고향사랑 실천

강덕균 선임기자가 만난 사람'나의 삶, 나의 도전' - 김대화 금호종합건설회장 ⑤·끝 고흥농축산물유통법인 설립 산파흐트러진 향우회 재정비 솔선수범500만 수도권 향우들과 함께할 것 부자가 망해도 3년은 간다고 했던가. 그는 남아있는 재산을 정리, 경기도 광주에서 부동산컨설팅사업에 뛰어든다. 사업수완이 남다른 그는 1년만에 소기의 성과를 거두며 안정을 찾아갔다. 향우회와도 일정한 거리를 두며 사업에 전념했다. 건설회사도 설립, 사업적 성과를 올려갔다.  그러던 중 운명과도 같은 향우회와의 인연이 또...
경원대 대학원 졸업장을 받고 있는 김대화 회장.

이주일 등 유명 연예인과 호형호제

강덕균 선임기자가 만난 사람 '나의 삶, 나의 도전' - 김대화 금호종합건설회장 ④ 대학원 진학 세계 견문 넓혀 유류파동으로 된서리 사업 접어 제조업으로 기업가 대변신 시도  김대화의 특별한 사업적 이력은 자연스럽게 유명 연예인들과 돈독한 관계를 맺게 했다. 지금은 고인이 된 서영춘·이주일씨와 남철·남성남씨 등과는 각별했다. 그는 지금도 "영춘이 형님" "주일이 형님"이라고 했다. 그들이 살아온 이력도 꿰뚫고 있었다.  서영춘씨는 그가 야간업소를 하던 시기에 상당기간 고정출연을 했다고 한다. ...
김대화 회장과 교류했던 무궁화축구단 멤버들. 개그맨 故 이주일(앞줄 오른쪽 세번째)과 영화배우 이덕화(뒷줄 왼쪽 두번째).

<나의 삶, 나의 도전 – 김대화 금호종합건설회장 ③> '이웃돕기·향우 민원해...

지역 소년소녀가장 물품 돕고亞게임 3관왕 임춘애 숨은 지원김대중 지원하다 고초 겪기도김대화는 돈이 벌리기 시작하자 본격적으로 향우와 이웃돕기에 나선다. 1985년 BBS(청소년 선도운동)성남시부장을 맡은 그는 호형호제하던 이주일씨에게 부탁, 무궁화축구단(연예인축구단)을 성남으로 불러들인다.  이 축구단은 이주일씨가 단장, 이덕화씨가 재무, 석현(현 한국연예예술인협회이사장)이 총무를 맡을 때였다. 성남조기축구회과 친선경기를 하도록 주선했다. 성남공설운동장에서 열린 이날행사에서는 입장료를 받았다. 무...

전남일보 창사 30주년 이낙연 총리 축사

전남일보 창사 30주년을 축하드립니다. 전남일보는 대통령 직선제 부활 이후 대한민국 민주화의 새벽이 열린 1988년에 창사했습니다. 전남일보는 창사 직후 2년 동안 기획보도를 통해 남부군과 여순사건 등 광주전남의 굴절된 현대사를 바로잡았습니다. 특히 1995년에는 전두환 대통령이 광주학살에 개입한 사실을 세상에 처음으로 알렸습니다. 전남일보는 민주화라는 시대의 요구에 부응한 것입니다. 또한 전남일보는 지방을 살리는데 앞장섰습니다. 1989년에는 서해안 고속도로의 필요성을 처음으로 제기했습니다.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