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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8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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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 공프로젝트

공프로젝트

유엔의 지속가능발전목표 14번째

전남일보가 지속가능한 한국사회를 위해 두번째 제언을 합니다. 이번 제언은 유엔의 지속가능발전목표 14번째 '해양생태계 보전' 입니다. 육지에 사는 인간의 반성과 노력이 없으면 인류의 미래인 바다는 이대로 파괴됩니다. 인간의 '제어 안되는 오염'을 '의도적으로 통제'해야 합니다.
UN이 정한 17가지 지속가능발전목표들(Sustainable Development Goals)

‘지속가능은 가능한가?’

19세기에 이르기까지 인간에게 가장 큰 두려움의 대상은 전쟁과 질병과 기아였습니다. 전쟁은 늘 존재했고, 2천만명 가까운 사상자를 낸 페스트, 아메리카 원주민의 1/3을 죽음으로 내몬 천연두, 아직도 아프리카를 여행 할 때는 백신을 맞아야 하는 말라리아가 창궐했습니다. 19세기 아일랜드에선 감자농사 흉년으로 대기근이 일어나 1백만명이 사망했습니다. 21세기 현 시점에서도 인간의 몸과 마음을 갉아 먹는 두려움의 요소가 나날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극단에 이른 빈부 차이, 그에 따른 신분의 양극화, 늘...
아이없는 공화국, 나이드는 대한민국

아이없는 공화국, 나이드는 대한민국

출산을 포기한 '출포세대', 잉여인간이 된 '베이비부머 세대'. 현 한국사회의 부녀 세대를 규정짓는 키워드가 되다.

공프로젝트가 새로운 날개를 달고 찾아온다

지난 2015년부터 이어져 왔던 전남일보 공공캠페인인 '공'프로젝트가 4년5개월의 대장정을 마친다. '공'프로젝트는 사회 전반의 본질을 짚어보고 화두를 던지기 위해 출발했던 공공캠페인이다. '공'에는 다양한 의미가 담겼다. 공익(public interest), 즉 공공성 회복을 뜻하는 '공'(公)과 '공'(共)의 의미다. 여기에 아라비아 숫자 '0', 영어의 'Zero'를 의미하기도 한다. 그래서 '기본(basic)'에서 다시 출발하자는 뜻도 담겨있다. 욕심을 비우고 내려놓아야 삶의 고통(번뇌)을...
 안성례 오월어머니집 설립자 / 광주시 동구 장동 (사)알암 인권 작은도서관 / 김양배 기자

솔갱이가 병아리를 채갈때엔 닭도 목숨걸고 싸우는 벱이여

하물며 평화롭던 집 앞에서… 내 새끼고 남의 새끼고 죽어 자빠지는 판국에 가만 있을 엄마가 어딨단가. 우리 병아리들 죽이고 간 솔갱이들은 저리 살아 멀쩡한디, 어미들 보고 싸우지 말라는 것은 말이 안되잖어. 왜 싸우느냐 그만 묻고, 언제까지 싸워야 하는지나 말해주소. 이 질기고 긴 싸움을 이 엄마들이 언제까지 해야 하는지 말이여. 다시 정의(正義)를 생각한다
안성례 오월어머니집 설립자가 오월 어머니들의 한(限)을 이야기 하고 있다. 김양배 기자

뭐 있었것소. 죽으면 죽으리라 사필귀정 그 하나로 싸웠을 뿐

 198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까지 광주에서 격렬한 시위가 벌어질 때쯤 나서는 이들이 있었다. 앳된 얼굴의 대학생들이 전경들과 치열하게 대치할 때쯤 서로의 팔짱을 낀 어머니들이 도로에 선 것이다.  "아그들아 다칠라. 물러나 있어라. 인자부터 엄마들이 나설랑께."  최루탄 속에서 집회를 하던 대학생들은 "아따 어머니 뭣하러 나오요. 다친당께라"라고 만류하지만, 어머니들은 "느그들이나 저짝 가 있어. 다치믄 니 엄니 속 터진다"라며 전경들 앞으로 걸어 나갔다.  이들이 바로 민주화실천가족운...
안성례

(영상)”아그들아, 물러나 있어라 인자부터 엄마들이 나설랑께.”

1980년 5월. 그것은 전쟁이었다. 사방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이 밀려들어 왔고, 방금 숨을 거둔 시체를 지나쳐 다른 환자에게 가고 있다. 이제 겨우 아이티를 벗은 10대가 총에 맞았고, 곤봉에 머리가 터진 이들이 비명을 질러댔다. 손에 묻은 피가 닦아질 틈도 없이 다음 환자가 밀려 들어왔다. 잠을 자는 것, 먹는 것조차 미안하던 그 봄이 그렇게 피비린내 속에서 지나갔다. 그런데 세상은 고요했다. 광주를 제외한 어디서도 분노의 목소리는 없었다. 1980년대 후반부터 광주에서 격렬한 시위가 벌어지면 ...
독립운동가 김철 선생 후손 김만선씨.

“100년뒤의 대한민국은 자주독립을 이루었소?”

"신의 도끼로 귀신을 주살하는 것이 역사의 대의다. 해가 뜨고 달이 두루 비치니 강과 산이 모두 정연하다." (독립신문 1921년 1월1일자 '신년의 감상'이라는 제하의 일강 선생의 글) ● 영웅의 탄생 천석꾼의 셋째 아들이었다. 비록 나라가 일제의 수탈에 피눈물을 흘리고 있었지만, 처신만 잘하면야 한 생 넉넉하게 지내고도 남았다. 더하여 공부도 오래했다. 어려서는 영광군 묘량면에 있는 외가에서 한학을 공부했고 1908년 영광 광흥(光興)학교에서 중학과정을 이수했다. 1912년 서울에서 경성법률...
독립운동가 김철 선생 후손 김만선씨. 전남 한평군 신광면 김철 선생 기념관.

“나, 일강 김철의 정의는 조국의 완전한 독립이요. 100년 뒤의 그대들은 그러한 세상에서 살고 ...

고향 함평을 떠나올 때 문득 하늘을 쳐다보았다. 멀고 먼 상해까지 가는 길, 열차의 차창에 기대어 동지들과 만든 새로운 조국의 이름, '대한민국'을 마음으로 몇 번이고 서럽게, 벅차게 되새겼다. … 100년이 지난 2019년 대한민국, 그는 조국을 위해 쓰러졌지만 조국으로 돌아오지는 못했다. 과연 그의 정의는 실현 됐을까? 김철 선생과 그의 손자 김만선씨/ 함평 일강 김철 기념관/ 김양배 기자

일강 김철 선생은 누구

조선이 국호였던 시대인 1886년 10월15일 생이다. 함평군 신광면 함정리 구봉마을에서 태어났다. 4남 1녀중 3남. 1908년 영광에 있는 광흥중학교에서 중학과정을 이수하고, 1912년 서울에서 경성법률전수학교를 마치고 1915년 일본 메이지대학(明治大學) 법학부를 졸업하고 귀국했다. 2년 뒤인 1917년 2월 중국 상해로 망명했다. 1918년 8월20일 중국 상해 프랑스 조계지 백미로 25호에서 김철은 여운형, 장덕수, 조동호, 선우혁, 한진교 총 6명과 함께 발기인이 되어 신한청년당을 창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