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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4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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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 공프로젝트

공프로젝트

독립운동가 김철 선생 후손 김만선씨.

“100년뒤의 대한민국은 자주독립을 이루었소?”

"신의 도끼로 귀신을 주살하는 것이 역사의 대의다. 해가 뜨고 달이 두루 비치니 강과 산이 모두 정연하다." (독립신문 1921년 1월1일자 '신년의 감상'이라는 제하의 일강 선생의 글) ● 영웅의 탄생 천석꾼의 셋째 아들이었다. 비록 나라가 일제의 수탈에 피눈물을 흘리고 있었지만, 처신만 잘하면야 한 생 넉넉하게 지내고도 남았다. 더하여 공부도 오래했다. 어려서는 영광군 묘량면에 있는 외가에서 한학을 공부했고 1908년 영광 광흥(光興)학교에서 중학과정을 이수했다. 1912년 서울에서 경성법률...
독립운동가 김철 선생 후손 김만선씨. 전남 한평군 신광면 김철 선생 기념관.

“나, 일강 김철의 정의는 조국의 완전한 독립이요. 100년 뒤의 그대들은 그러한 세상에서 살고 ...

고향 함평을 떠나올 때 문득 하늘을 쳐다보았다. 멀고 먼 상해까지 가는 길, 열차의 차창에 기대어 동지들과 만든 새로운 조국의 이름, '대한민국'을 마음으로 몇 번이고 서럽게, 벅차게 되새겼다. … 100년이 지난 2019년 대한민국, 그는 조국을 위해 쓰러졌지만 조국으로 돌아오지는 못했다. 과연 그의 정의는 실현 됐을까? 김철 선생과 그의 손자 김만선씨/ 함평 일강 김철 기념관/ 김양배 기자

일강 김철 선생은 누구

조선이 국호였던 시대인 1886년 10월15일 생이다. 함평군 신광면 함정리 구봉마을에서 태어났다. 4남 1녀중 3남. 1908년 영광에 있는 광흥중학교에서 중학과정을 이수하고, 1912년 서울에서 경성법률전수학교를 마치고 1915년 일본 메이지대학(明治大學) 법학부를 졸업하고 귀국했다. 2년 뒤인 1917년 2월 중국 상해로 망명했다. 1918년 8월20일 중국 상해 프랑스 조계지 백미로 25호에서 김철은 여운형, 장덕수, 조동호, 선우혁, 한진교 총 6명과 함께 발기인이 되어 신한청년당을 창당...

(영상)상해 임시정부 요원이자 독립운동가 일강 김철 선생

REP〉 전라남도 함평군 신광면에는 독립운동가 일강 김철 선생의 기념관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김철 선생은 3·1운동을 계획하고 독립자금 모금활동을 펼친 독립운동가입니다. 그리고 그가 마련한 자금을 기반으로 중국 상해에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가 세워졌습니다. 당시 국무위원을 맡은 김철은 백범 김구, 도산 안창호 등과 함께 임시정부를 이끌었습니다. INT〉 김만선 일강 김철 후손 "일강 김철 할아버지께서는 호남의 대표적인 애국지사 독립운동가입니다. 임시정부의 요원으로서 국무위원으로 활동하시며 의정 ...

이금주 전 태평양전쟁희생자 광주유족회 회장은 누구

빛바랜 흑백사진 속의 스무살 신부 옆에는 키가 큰 신랑이 서 있다. 신부도 부끄러운 표정이 아니었다. 1940년 10월10일의 행복한 사진 한 장. 2년 뒤 남편은 일제에 의해 끌려갔다. 그리고 1943년 '길버트 제도 다리와에서 사망. 충렬(忠烈)하게 전사한 데 대해 깊은 조의를 표합니다'라는 전사 통지서 한 통이 그녀의 손에 쥐어졌다. 그때부터 그녀의 싸움이 시작됐다. 이금주(99) 전 태평양전쟁희생자 광주유족회 회장. 사단법인 태평양전쟁유족회 이사(1988년)이었으며 호남문화진흥회 고문(20...
공프 이금주(전 태평양전쟁희생자 광주유족회장) 할머니. 순천시 별량면 한 요양병원. 김양배 기자

“피해자라고 부르지 마라. 아직 해방을 맞지 못한 사람들일 따름”

"인터뷰가 힘드실 수도 있을 겁니다." 전화기 너머로 이국언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상임대표의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이 대표는 3월 공프로젝트의 인물로 선정된 이금주 전 태평양전쟁희생자광주유족회 회장의 수제자 같은 존재였다. 오마이뉴스 기자였던 그가 소명처럼 이 길에 뛰어 든 것이 바로 이 전 회장 때문이었다. 때는 2008년 이었다. 당시 이 전 회장은 정부에 항의하기 위해 '국적포기 시위'를 계획하고 있던 중이었다. "꼿꼿한 조선 여인, 그 자체였습니다. 당당하면서 품위가 넘치...

(영상)일제시대 전쟁 피해자를 위해 헌신한 이금주 할머니

REP> 태평양전쟁 희생자 광주 유족회. 일제시대 전쟁 피해자를 위해 헌신한 이금주 할머니 집에 걸려있던 현판입니다. 이금주 할머니는 일제 강제동원으로 남편을 잃은 피해자입니다. 1942년 신혼의 부부는 남편의 강제징용으로 인해 생이별하고 맙니다. 그 후 홀로 아들을 키운 이(금주) 할머니에게 돌아온 건 남편이 아닌 남편의 전사 통지서. 그렇게 이(금주) 할머니는 남편의 이야길 세상에 알리기로 결심합니다. 1980년대 후반부터 일본 정부를 상대로 수많은 소송을 주도하며 일본의 사죄와 배상을 ...
공프 이금주(전 태평양전쟁희생자 광주유족회장) 할머니. 순천시 별량면 000요양병원.

“일본, 나쁜 사람들이지…암, 나쁘고 말고 징용가서 사망한 남편… 아직 해방 요원”

"어디서 오셨소?" 말투는 흐렸다. 허나 일본이야기가 나오자 안광에 힘이 돌아왔다. "나쁜 사람들이지…암, 나쁘고 말고." 징용 가서 사망한 남편 이야기를 묻자 잠시 하늘을 바라봤다. 더는 묻지 못하고 앉아 있자, 이번엔 이쪽을 바라보고 다시 묻는다. "어디서 오셨소?" 그 웃음이 너무 환해 마음이 미어졌다. 그녀는 아직도 해방을 맞이하지 못했다. 이금주 전 태평양전쟁희생자광주유족회 회장/ 순천 모 요양병원/ 김양배 기자
이소아 변호사.

다시 정의다-이소아 변호사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들이 주저하지않고 자신 목소리를 낼수 있는 게 正義입니다 "정의란 무엇일까요? 어려운 질문이네요. 제 정의요? 음… 모두가 각자 존재가 있는 그대로의 모습과 목소리를 드러내 놓을 수 있도록 하는 것? 다시 말해 사회적 약자나 소수자, 또는 이방인이라 하더라도, '내가 나라는 것'을 말하는 것에 주저하거나 불안해하거나 그로인한 피해를 입지 않는 것, 그것이 제 정의입니다." 이소아 변호사 / 광주 전남일보 사옥 / 김양배 기자
이소아 변호사.

“침묵하라니요. 민주주의는 원래 수다스러운 거예요”

겨울치고는 생각보다 따뜻한 1월의 어느 날이었다. 프로젝트 섭외 대상이라는 전화에 쾌활한 목소리로 "그런데 어쩌죠. 저희 사무실은 비좁고 문패도 없어요. '같이돌봄가게'에 얹혀 살거든요. 오시는 것은 좋은데 사진 찍기가 힘드실 거예요"라고 답한다. 너무 쾌활해서 잠시 농담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다. 몇 군데의 장소가 거론되고 결국은 전남일보 본사로 결정됐다. 보통 이런 인터뷰는 편한 장소나 자신을 표현하기 좋은 장소에서 하기 마련인데 그녀는 그런 것에 연연하지 않았다. 허나 왜 그런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