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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2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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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자 이건상 선임기자

이건상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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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시나가와 나시오니 히토히로부미 무덤으로 도리이와 수많은 석등이 있다.

조선 침략원흉 무덤은 번듯한데… 안중근 혼백 찾을 길 없어

▩ 안중근 순국 109주년 - 도쿄 이토 히로부미 무덤을 가다  1910년 3월26일 오전 10시4분. 간수가 종이 두 장을 접어 눈을 가렸다. 그 위에 다시 흰 천을 씌웠다. 안중근은 앞서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것은 동양평화를 위한 것이었다"고 되뇌었다. 간수가 계단 7개를 올라 교수대로 이끌었다. 양반다리 자세로 앉으니, 한 명이 목에 밧줄을 감고 교수대 한쪽을 밟았다. 꽈당하는 소리를 내며 뚝 떨어졌다. 11분-. 10시15분, 그는 독립의 혼이 되었다.  ●도쿄 한복판에 들어선 이토 ...

전두환, 다시 감옥에 가야 한다

전두환 씨는 여전히 거만했다. 취재진에게 "이거 왜 이래" 라고 버럭했다. 23년 만에 다시 법정에 출두한, 노쇠한 89세 노인이 아니었다. 그는 형법 제308조 사자명예훼손죄로 처벌을 앞두고 있다. 이 죄는 '허위' 와 '고의성'이 쟁점이다. 허위성은 5·18 당시 헬기 사격이 있었는지, 고의성은 사격을 알면서도 회고록에 썼는가 여부다. 전 피고인이 감옥에 가야 할 이유는 단순하다. 그는 헬기 등 발포를 최종 승인 명령했고, 헬기 발포를 뻔히 알면서도 없었다고 강변했다. 무장 헬기의 광주 출동은...
1919년 2· 8 독립선언이 울려 퍼진 도쿄 치요다(千代田)구 니시간다에 위치한 옛 재일본 동경기독청년회 건물 터. 동경 Y건물이 헐리고 그자리에 6층 건물이 들어서 세탁 용역업체 등이 입주해 있다.

도쿄항일 현장 가다=와세다大 앞 산쵸안 식당서 독립선언서 작성

글·사진=도쿄 이건상 선임기자 "조선청년독립단은 이천만 조선민족을 대표하야 정의와 자유의 승리를 득한 세계 만국의 전에 독립을 선언하노라" 1919년 2월8일 오후 2시, 적국 일본의 수도 한복판에 "대한독립 만세"의 함성이 폭발했다. 조선 유학생 600여명은 조선청년독립단 이름으로 독립을 선언하고 혈전을 결의했다. 이어 '일한 합병이 동양의 평화를 요란케하니 독립을 주창' 한다는 4개항의 결의문도 외쳤다. 그들은 강당을 박차고 나가 도쿄 도심으로 진출하려 했다. 일제 경찰은 건물을 에워싸더니 무...
광주전남 시도민과 전국 유림이 1961년 전국에서 처음 광주공원에 건립한 '대한의사 안공 중근 숭모비'. 1987년 중외공원으로 이전한 뒤 1995년 맨 위 비신 대신에 동상을 세우면서 숭모비의 행방이 묘연한 상태다. 국가보훈처 제공

전국 제1호 ‘광주 안중근 숭모비’가 사라졌다

광주·전남 지역민들이 해방 후 전국에서 처음으로 1961년 광주공원에 건립했던 안중근 의사 숭모비가 사라져 버렸다. 숭모비는 1987년께 중외공원으로 이전해 상당기간 존치했으나, 1995년 숭모비 좌대를 재활용 안중근 동상을 세우면서 실종, 25여 년 째 행방을 알 수 없는 상태다. 국가보훈처 현충시설, 순흥안씨 문중 등에 따르면 지역유림과 시도민들은 1961년 4월3일 일본 신사, 일본군 충혼비가 있던 광주공원 내 성거사지 5층탑 뒤편에 '大韓義士安公重根崇慕碑'(대한의사안공중근숭모비)를 제작, ...
1910년대 측량학교. 신문종람소가 위치했다.

양림동 기독교계, 일본 유학생, 광주 비밀결사체 등 망라해 거사 도모

광주 출신으로 동경 메이지대학에 유학중이던 정광호가 최팔용 등 11인이 서명한 한국청년독립단(韓國靑年獨立團) 명의의 2·8독립선언서를 가지고 경성에 입국, 광주에 내려오면서 광주 3·1운동은 본격적인 준비에 들어가게 된다. 광주 3·1운동은 실상 신문잡지종람소(新聞雜誌縱覽所)라는 비밀 독서회 모임을 주목해야 한다. 이들은 신문·잡지를 윤독하고 역사공부도 하였으며, 일제강점기의 정치나 사회상황에 대해 열띤 토론을 하였다. 유명 인사들을 초청하여 세계정세에 대한 강연을 들었으며, 광주출신으로 서울·일...

자유한국당은 왜 5·18을 조롱하는가

한 국회의원이 연일 질환적 발언을 내뱉고 있다. 춘천의 힘(him)을 내건 자유한국당 김진태(54) 의원이다. 5·18은 북한군이 일으킨 폭동이 아니냐는 것인데, 말인 즉 북한군 개입 조사쯤으로 포장하고 있다. 국가 유공자로 인정 못하겠으니, 명단도 공개하란다. 망언 3인방 이종명은 폭동이 민주화운동으로 변질됐고, 김순례는 종북좌파가 5·18유공자라는 이상한 괴물집단이 만들어져 국민의 세금을 축내고 있다고 했다.  이들의 망언은 기존의 5·18 폄훼와 질적으로 다르다. 우선 국회라는 헌법 수호공간...
1955년 우리나라 최초로 세워진 안중근 사당인 해동사. 죽산안씨 사당인 만수사 옆에 1칸 건물로 세워졌다가 2000년 사당 밖에 부지를 마련, 3칸 건물로 다시 건립했다. 최초의 사당인 해동사.(오른편)

안중근 항일루트(5) 전국 최초의 사당, 비석, 동상이 여기에 있다.

광주, 전남은 기실 안중근의 땅이다. 그가 한 번도 이 땅을 스쳐간 일이 없지만, 인연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안중근이 지금의 남한 땅에 남긴 유일한 자취는 1907년 북간도, 연해주로 망명할 당시 부산항을 거친 것뿐이다. 그럼에도 남도는 안중근과 한 몸, 한 뜻이었다. 해방 후 대한민국에 세워진 최초의 안중근 사당, 동상, 기념비가 바로 광주, 전남에 존재하고 있다. 단지 기념관만 없으나, 이 조차도 올해 10월쯤이면 장흥에 착공한다고 한다. 장흥군 장동면 만년리 만수마을에는 1955년 세...
정종순 장흥군수 =장흥군 제공

해동사 주변에 대규모 안중근 역사공원 올해부터 조성

전국에서 처음, 유일하게 안중근 사당을 보유한 장흥군은 하얼빈 의거 110주년을 맞아 앞으로 3년 동안 대대적인 안중근 기념 역사자원화 사업을 펼칠 계획이다. 안 의사 사당인 해동사 주변에 기념관과 교육시설을 건립하고, 다양한 교직원 연수, 항일 독립유공자 공원 조성을 추진키로했다. 정종순 군수는 민선 7기 역점 사업의 하나로 안중근 항일 프로젝트를 추진하겠다는 복안이다. 다음은 정 군수와 일문일답. △장흥군에서 구상 중인 안중근 프로젝트는.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
안중근은 1910년 3월26일 오전 10시 14분 차가운 관동도독부 뤼순 감옥 사형장에서 순국했다. 만 31세, 안 의사가 절명한 곳에 작은 기념관을 조성했다.

안중근 항일루트(4) “내 죽은 뒤 하얼빈공원 곁에 묻었다가 고국으로…”

안중근은 형장으로 끌려갔다. 교수대가 보이는 검시실에는 미조부치 검찰관, 구리하라 전옥, 소노키 통역관, 기시다 서기관, 오리다 의사, 미즈노, 가마다 변호사가 있었다. "1910년 2월14일 관동도독부 지방법원의 판결이 확정됐고, 명령에 따라 사형을 집행한다. 마지막으로 할말은 없는가" "나의 행위는 동양 평화를 위해서다. 한일 양국 국민이 서로 일치 협력하고 평화를 도모하기를 희망한다. 마지막으로 교수대에서 동양평화를 위해 기도하고 싶다" 간수가 두장의 종이를 접어 안중근의 눈을 가리고, 그 ...

3인 거사단 그 후

▲우덕순=1915년 뤼순감옥 출옥(3년 징역형). 1913년 나올 예정이었으나, 함흥감옥 탈옥 사건이 탄로나 2년이 추가됐다. 석방 후 중국 하얼빈, 치치하얼, 만저우리 등지에서 교육 종교사업을 펼쳤고, 러시아 전로한족중앙회에서도 활동하며 독립운동을 지속했다. 해방 후 흑룡강성 한인민단 위원장을 맡아 아들과 함께 재중동포와 피난민의 귀국 수송에 헌신했다. 1948년 대한국민당 최고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안중근 추모사업을 벌였다. 한국전쟁 발발 때 서울에 남아 있다가 인민군에게 체포, 총살당했다.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