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원 국장 |
누구도 예상 못했던 R&D 예산 삭감을 놓고 내년 총선을 염두에 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유권자들이 직접 체감하는 복지 예산이나 SOC 예산은 늘리는 대신 건전재정 기조를 유지하기 위해 결국 ‘만만한’ R&D 예산을 깎았다는 해석이다.
한국 정부의 R&D 예산 삭감을 국제사회도 주시하고 있다. 세계 3대 과학학술지로 불리는 사이언스(Science)는 ‘과학비 지출 챔피언인 한국이 삭감을 제안했다’는 제하의 기사를 통해 한국 정부가 지난 달 갑자기 내년도 연구비를 삭감하고 국가 R&D와 관련한 새로운 계획을 수립했다고 전했다. 이 학술지는 한국이 최근 몇 년 동안 R&D 예산에서 크게 두각을 드러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우리나라가 10년 전 국내총생산(GDP)의 3.9%였던 R&D 지원 비중을 지난해에는 4.9%까지 끌어올렸기 때문이다. 한국보다 R&D 지원 비중이 높은 건 5.9%의 이스라엘뿐이었다.
과학기술계는 정부가 현장 의견수렴 없이 일방적으로 예산을 삭감해 장기 계획에 따라 추진 중인 여러 연구와 사업이 중단되거나 좌초될 위기에 처했다며 반발하고 있다. 정부 지원금으로 기초 연구를 진행하는 특성상 새로운 연구는 고사하고 기존 연구도 구조 조정이 불가피해졌다. 특히 입자 가속기·원자로·핵융합로 등 기초 연구 기반이 되는 주요 대형 연구 설비의 경우 정상 가동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과학입국 기술자립’을 위해 매진해온 과학자들의 연구 의욕이 꺾이는 것이다. 예산안이 국회를 통과하기까지 아직 시간이 남아 있다. 여야는 국회 예산 심의 과정에서 정부가 무리하게 삭감한 R&D 예산을 되살려 과학기술계의 충격을 최소화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