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 서석대> 오월 광주 레퀴엠
  • 페이스북
  • 유튜브
  • 네이버
  • 인스타그램
  • 카카오플러스
검색 입력폼
서석대
[전남일보] 서석대> 오월 광주 레퀴엠
최도철 미디어국장
  • 입력 : 2023. 05.17(수) 16:20
최도철 국장
진혼(鎭魂)은 ‘죽은 사람의 넋을 달래 고이 잠들게 함’이란 뜻이다. 진혼의 의미에 더해 곡조를 붙인 진혼곡은 레퀴엠(Requiem)이라 하여 죽은 이들을 위령하는 장례미사곡을 말한다.

모차르트 레퀴엠, 베르디 레퀴엠, 드보르자크 레퀴엠 등은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진혼곡들이다.

하지만 대중에게 가장 익숙한 곡은 우리나라에서 ‘밤하늘의 트럼펫’으로 소개된 ll Silenzio(Silence)이다. 이 노래는 우수에 찬 눈빛의 미남 배우로 1950년대에 큰 인기를 끌었던 몽고메리 클리프트가 전쟁영화 ‘지상에서 영원으로’에서 나팔로 애처럽게 불었던 곡이다.

영결식이나 추모제 등의 의례에서 가장 많이 연주되는 이 노래를 듣다 보면 병영생활의 추억이 떠오르기도 한다. 오래전 군생활을 했던 사람들은 힘든 일과를 마치고 일석점호후 잠자리에서 들었던 ‘취침나팔’의 기억을 소환하게 된다.

‘진혼곡’의 대명사로 알려진 이 곡이 만들어진 사연이 애달프다. 미국 남북전쟁때의 일이다. 북군의 한 중대장은 어느 날 밤, 산속에서 죽어가는 군인의 신음소리를 들었다. 짙은 어둠 속에 그 병사의 피아를 식별하는 것조차 힘들었지만, 그 중대장은 꺼져 가는 생명을 살리기로 마음먹었다.

가까이 가서 보니 그 병사는 남군의 군악대 복장을 했다. 중대장은 램프를 들어 군인의 얼굴을 확인하는 순간 울부짖으며 주저앉았다. 그 병사는 자신의 아들이었다. 음악을 배우던 아들이 아버지에게 알리지도 않고 남군에 입대했던 것이다.

중대장은, 아니 아버지는 아들을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결국 숨지고 말았다. 떨리는 손으로 시신을 수습하던 중대장은 아들의 호주머니에서 구겨진 악보를 발견하게 된다. 전쟁중에도 틈틈이 작곡을 했던 것이다. 다음날 중대장은 특별허가를 얻어 아들의 장례를 치르게 된다. 중대장은 장례식에 군악대 지원을 요청했으나 적군이라는 이유로 거절됐고, 겨우 군악병 한 명만 쓰도록 허락했다. 아버지는 나팔수를 선택해 아들이 남긴 악보를 연주하게 했다.

이후 악보는 미국 전역으로 퍼져 나갔고, 진혼곡으로 뿐만아니라 취침 나팔로, 자장가로 남·북군을 가리지 않고 매일 밤 연주됐다.

광주땅에 통한의 눈물이 떨어졌던 5월 그날이 다시 왔다. 5월에 하얀 꽃이 피는 것은 죽은 자의 영혼을 달래 주는 것이라고 했던가. 5·18 민주묘역 가는 길에 상복은 입은 듯 하얗게 핀 찔레꽃에 늦봄 햇살이 가득하고, 나부끼는 만장(挽章)들이 함성이라도 지르는 듯 하다.

묘역을 따라가며 오월 광주의 레퀴엠 ‘임을 위한 행진곡’을 가만가만 읊조리니 가슴이 먹먹해지고 한숨이 나온다. 레퀴엠은 슬픔과 고통이 아닌 안식을 부여하는 노래이다. 오월 영령들이여! 그대들을 영원히 기억할 것이니 이제 편히 쉬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