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에세이·기세규> 달팽이 뿔 위에서 싸우다니!(蝸牛角上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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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에세이·기세규> 달팽이 뿔 위에서 싸우다니!(蝸牛角上爭)
기세규 광주유학대학교수·漢詩 시인
  • 입력 : 2023. 02.02(목) 11:46
기세규 광주유학대학 교수
개인이나 국가, 일반 사회에서 사소한 다툼과 큰 분쟁은 시도 때도 없이 일어나는 것이 세상사 현실이다. 외부에서 말하기를 가장 도덕적이고 연륜이 쌓인 인격자들의 단체라 일컬어지고 있는 곳에서 조차 내부의 실상을 보면 오랜 세월 동안 끊임없는 다툼과 내부 분열로 인한 이전투구(泥田鬪狗)를 하고 있다. 가장 큰 원인은 무엇인가. 단언하건데 명예욕이다. 명예욕에 온통 마음이 쏠리게 되다 보니 공맹(孔孟)께서 그토록 외치셨던 서(恕)와 양보는 찾아 볼 길이 없게 되어 버린 것이다.

인간의 삼대 욕망은 식욕(또는 재물욕), 색욕, 명예욕이라고 한다. 이중에 가장 버리기 어려운 것이 명예욕이란 말이 있다. 물론 개인의 가치관과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명예욕은 무엇인가. 명예는 도덕적 또는 인격적으로 두루 인정받아 스스로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공적이나 성과 등을 나타내는 말이니 명예욕은 이러한 욕심을 말한다. 곧 남에게 인정받고 싶어하는 욕망인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명예를 얻으려고 노력한다. 때에 따라 그 열망은 재물욕보다 강할 수도 있다. 흔히들 세상에서는 남자들이 충동을 이기지 못해 성폭력을 저지르는 일이 많으니 성욕이 가장 강한 것 아니냐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두루 보편적인 욕망은 단연 명예욕(권력욕)임이 틀림없다.

불가의 이야기로 석가모니의 성도 과정을 그린 팔상도의 6번째가 수하항마상(樹下降魔相)인데 석가모니가 보리수 아래서 깨달음을 얻을 때 마왕이 나타나 방해했다. 세 딸을 보내 유혹기도 하고 폭력으로 협박하기도 하였지만 실패하자 끝으로 전륜성왕을 시켜주겠다는 권력욕을 자극했지만 역시 실패했다는 내용을 그린 그림이다. 이는 색욕이나 두려움 보다 명예욕을 떨쳐 내기가 더 어렵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말하고 있음이다. 기독교 성서에서도 유사한 내용이 있다. 예수가 세례를 받은 후에 40일 간 광야에서 금식 기도를 하는데 사탄이 나타나 빵과 두려움과 명예욕으로 예수를 유혹했다. 세상 모든 나라의 영광을 보여 주면서 ‘나에게 엎드려 절하면 이 모든 것을 주겠다’고 유혹한 장면(마태복음 4장)이 그것이다. 사탄은 명예욕이야말로 예수도 거부하지 못할 것으로 본 것이 틀림없다.

이런 명예욕(권력욕) 때문에 사람은 살아가는 도중 다양한 관계 속에서 크고 작은 시련이나 파멸의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유혹의 순간을 맞이하게 되고 이 가운데 괴로움과 즐거움이 교차 반복적으로 일어난다. 아주 사소한 일에 순간 자칫 잘못 선택을 하여 인생 전체가 허물어질 수도 있다. 별것이 아니라고 여겼던 것이나 실제로 별게 아닌 일로 인해 자신의 인생이 무너질 수도 있다는 의미다. 따라서 때로는 져주는 것도 필요하다. 대단한 명예로 보였던 일들이 세월이 지나고 보면 너무나 허망하고 하찮한 일들이었음이 비일비재하니 더욱 그렇다.

중국 당나라 시인 백거이는 장자(莊子) 잡편 중 칙양편을 인용해 아래와 같이 읊었다. 蝸牛角上爭何事 (와우각상쟁하사) 달팽이 뿔 위에서 무슨 일로 다투는가? 石火光中寄此身 (석화광중기차신) 부싯돌 불빛 속에 이 몸 맡긴 짧은 인생이라. 와우각상지쟁은 와각지쟁(蝸角之爭)이라고도 하며 ‘세상일이란 달팽이 뿔 위에서 싸우는 것과 같이 사소한 다툼에 불과하다’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곧 달팽이의 머리 위에 난 촉각끼리의 싸움이란 말로써 우주에서 보면 좁디 좁은 인간 세상에서의 부질없는 싸움, 애써 다투어 보았자 얻을 수 있는 것이 없는 쓸데없는 싸움을 말한다.

백낙천은 역사적 사실 속의 우화를 빌어 보잘것 없는 일로 다투는 것은 아무런 이득이 없음을 말했다. 인생이란 홀연 번쩍이는 부싯돌 불 같이 순간인 것을 인식한다면 더더욱 그렇다. 널리 세상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자리임에도 명예욕 때문에 사소한 이해관계로 얼굴을 붉히면서 서로를 상하게 하고 주변까지 온통 시끄럽게 하는 경우를 너무 많이 본다. 이제 한해의 시작이다. 사소한 일에, 사소한 명예욕에 목숨 걸 일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