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하정웅>일곱 번 째 맞이하는 토끼해에 생각 - 인생에서 가치 없는 것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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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하정웅>일곱 번 째 맞이하는 토끼해에 생각 - 인생에서 가치 없는 것은 없다
하정웅 광주시립미술관 명예관장
  • 입력 : 2023. 01.26(목) 13:05
  • 편집에디터
하정웅 명예관장
2022년 섣달그믐날, NHK-BS에서 논픽션 작가이며 평론가이자, 지식의 거인이라 불리는 다치바나 다카시(立花隆)(1940-2021)의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프로그램 마지막 내레이션에서 “사람의 죽음은 숙명이다. 내가 죽거든 무덤도 계명(戒名)도 필요 없으니, 뼈와 함께 수집 자료와 장서 모두 쓰레기처럼 버려 달라”고 유언했다고 한다. 그리고 인생은 무(無)라며 다큐멘터리를 끝맺었다.

나보다 한 살 어린 다치바나 다카시는 어린 시절부터 삶과 죽음에 대한 관심이 깊었다. 지적 욕구를 중요하게 여겼던 나로서는 ‘알고 싶은 욕구는 인간에게 성욕이나 식욕과 함께 중요한 본능이다’라고 말한 그의 생각이나 성장과정에 많은 공감을 느꼈다.

 현재 다치바나 다카시의 유골은 수목장을 했기 때문에 꽃나무 뿌리에 뿌려져 잠들어 있다. 나의 중학교 시절 은사이신 나카지마 쇼지로(中島昭二郎) 선생님과 내 친척도 유언으로 에노시마(江ノ島) 앞 누마즈(沼津) 앞바다인 사가미(相模) 여울에 뿌려져 잠들어 있다. 고등학교 은사이신 오이 기요시(大井潔) 선생님은 게이오대학 의학부에 몸을 기증하셔서 후학들의 의학에 공헌하셨다.

여든이 넘은 나는 인생의 끝자락을 어떻게 보내야 가장 아름다운 것일지 생각하며, 반드시 찾아올 죽음을 바라보고 있다. 나는 20세기 불행한 역사 속에서 희생된 우리 민족 동포의 넋을 위령하기 위해 아키타 현(秋田県) 다자와지(田沢寺)와 사이타마 현(埼玉県) 쇼텐인(聖天院)에 위령비와 위령탑을 건립해 기도의 길을 걸어왔다.

 또한 나는 1960년대 중반이었던 25세 때부터 미술품 수집을 해왔다. 그 미술품을 다자와 호반에 ‘기도의 미술관’을 건립해 수습하려 했으나, 한일(韓日) 양국의 여러 가지 정치적 갈등으로 꿈을 단념하였다. 인연이 닿아 이 미술품들은 부모님의 고향이자 5.18 광주민중항쟁의 땅인 광주의 미술관으로 기증하였다. 그러나 재일교포의 잡동사니 같은 작품을 기증했다는 비방이 쏟아져, 나는 정신적으로 많이 괴로웠었다. 내가 과거 일본에서 이 작품들을 수집할 때도 돈도 안 되고 이름도 없는 재일교포 작가가 무슨 가치가 있냐며 쓰레기고 공해라며 야유와 모욕을 당했었다. 그러나 이렇게 평가받지 못한 작품들이 나중에 세계적인 경매에서 억엔 단위의 가치를 인정받게 되자 그런 잡음은 일절 일어나지 않게 되었다. 인간의 욕구는 물욕, 금욕의 지배가 우위이며 평가도 이에 따라 좌우된다고 생각하니 세상이 의아했다.

 나의 컬렉션은 한평생 살았던 인간이 그 시대를 숨 쉬며 바라봤던 삶의 기록이고 증언으로서 기록유산이자 문화예술품이다. 사람이 죽은 뒤에도 남겨진 작품은 살아 숨 쉰다. 그들이 담아낸 생각은 사람들의 마음을 동요시킨다. 시대를 초월해 우리의 삶을 계속 바라본다. 예술이 영원하다고 하는 이유이다.

 나는 인생은 무(無)라고 “뼈를 쓰레기처럼 버려 달라”고는 원하지 않는다. 그 뼈야말로 살아있었음을 증명하는 기록이며 기억의 예술품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많은 사상이나 기도가 담긴 문화와 사람의 역사를 웅변하는 예술품이라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 기록, 기억의 증거는 다음 시대를 만들고 이어가는 문화와 역사의 중요한 윤활유가 된다.

나는 1939년생 토끼띠이다. 토끼는 행복을 날라주며 도약하는 길조의 십이지라고 한다. 코로나19 사태, 우크라이나 전쟁의 먹구름이 아직도 감도는 새해 연초 이지만, 일곱 번째 토끼띠를 맞이하게 된 것을 행복하게 생각한다. 이 행복을 널리 비추는 빛으로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싶다. 인생의 기록·기억을 휴지처럼 거칠게 다루며 끝내지 않기를 새해를 맞아 다시 한 번 간절히 바란다.



*재일교포 하정웅(1939년 일본 오사카 출생, 가와구치시 거주)은 광주시립미술관을 비롯해 전국 10여 곳의 국공립미술관에 만천여점의 미술작품과 유물을 기증하였다. 또한 일제강점기 강제징용으로 끌려가 억울하게 죽은 노동자들을 찾아내는 진상규명 활동을 펼치며, 무연고 조선인 노동자들을 위로하기 위해 아키타현(秋田県) 다자와지(田沢寺)와 사이타마현(埼玉県) 쇼텐인(聖天院)에 위령탑을 세우고 추모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편집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