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자율로’… 위축되는 ‘민주·인권 동아리’
  • 페이스북
  • 유튜브
  • 네이버
  • 인스타그램
  • 카카오플러스
검색 입력폼
광주시교육청
‘학교 자율로’… 위축되는 ‘민주·인권 동아리’
광주 학생들 민주의식 함양 역할
교육청, 동아리 사업 예산 불책정
필수 통합사업→학교장 선택 변경
“현장 업무 피로 과중” 해명 불구
“인권 정책 추진 의지 감소” 비판
  • 입력 : 2023. 01.11(수) 18:04
  • 양가람 기자
광주시교육청 전경
 광주 학생들의 인권 의식 함양에 크게 기여하고 있는 민주·인권·평화 동아리 활동이 앞으로는 위축될 것으로 보인다. 광주시교육청이 매년 편성해 온 관련 예산을 올해 책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교육청은 의무적인 동아리 운영에 따른 현장의 피로감을 반영하겠다는 취지지만, 동아리 운영 결정 권한이 학교장에게 국한돼 있어 학생들의 민주의식 함양 기회가 줄어들 것이란 우려가 제기된다.

 11일 광주시교육청 ‘2023학년도 학교회계예산편성기본지침’에 따르면, 전년도까지 통합사업(필수사업)에 해당했던 ‘민주·인권·평화’, ‘문화예술’, ‘역사’, ‘독서·토론’ 등 학생 동아리 운영사업 4개가 올해부터 권장사업으로 전환된다.

 민주·인권·평화, 문화예술, 역사 동아리는 광주지역 초·중·고(특수학교는 선택)에서, 독서·토론 동아리는 중·고(초·특수학교 선택)에서 필수로 운영됐으며 광주 학생인권조례에 의거, 전국에서 광주만 유일하게 전면적으로 실시해 오고 있다.

 광주시 학생인권조례에는 학생들의 휴식과 문화활동을 보장하기 위해 교육청과 학교가 행·재정적 지원을 하도록 명시돼 있다. 이에 장휘국 전 교육감 시절에는 시교육청이 광주 지역 학교들이 위의 4가지 주제로 학생 동아리를 운영할 수 있게끔 사업비(동아리 운영비)를 지원해 왔다. 행정예산과가 해당 사업비(사업별 100만원씩)를 포함해 책정한 표준운영비를 각 학교에 교부하면, 담당 사업부서가 추진 내역, 예산 집행 등을 관리하는 식이었다.

 당시 시교육청은 학교폭력 등 문제가 민주·인권의식의 결여에서 기인한 것으로 판단, 인권친화적 생활교육을 위해 해당 사업을 실시했다. 2012년 100개였던 동아리는 10년 간 꾸준히 늘어 각급 학교에서 여러 개의 민주·인권·평화 동아리가 꾸려지기도 했다.

 지난해의 경우 광주지역 전체 319개교(휴교 2교 제외) 가운데 301개 초·중·고(특수학교 1개교 포함)에서 총 341개의 민주·인권·평화 동아리가 구성됐다.

 동아리 활동을 통해 학생들은 기후위기 대응부터 노동, 통일 등 문제에 대해 스스로 기획·토론하면서 민주시민으로서의 자질을 키워왔다.

 효과도 좋았다. 지난해 12월 광주시교육청이 발표한 ‘2022 광주교육 종합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광주지역 학생들의 인권, 다양성, 사회적 신뢰에 관한 긍정적 인식이 타 시·도 학생들보다 높았다. ‘우리 사회는 인권을 존중하는 사회이다’라는 문항에 대한 응답을 100점으로 환산한 점수는 광주 학생 74.6점, 전국 학생 67.3점이었다.

 하지만 올해부터 해당 사업이 필수(통합)에서 권장으로 바뀌면서 각 사업별로 교부됐던 예산은 더이상 편성되지 않는다. 대신 시교육청은 학교로 보내는 전체 (학교)운영비 예산을 5% 정도 늘렸다. 늘어난 운영비 안에서 알아서 지원하라는 의미다. 동아리 운영 자체도 학교장의 권한에 맡겨졌다.

 시교육청은 해당 사업 정책 변경과 관련 ‘학교 현장의 피로도’를 꼽았다. 필수적으로 운영해야 하는 동아리이다보니 소규모 학교에서 운영상 어려움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이다. 특히 민주·인권·평화 동아리는 ‘누가 담당할 것이냐’를 놓고 교사들 사이에 업무 분담 갈등도 있어 학교에 ‘자율성’을 부여하기로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필수 운영에 대한 부담은 동아리 운영 개수 조정이나 교사 지원 등의 방식으로 줄여나갈 수 있어 시교육청의 운영 의지가 부족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커지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시교육청은 많은 동아리를 필수적으로 운영하는 데 부담이 있는 일부 학교들을 위해 학교 규모별로 동아리 운영 개수를 탄력적으로 조정한 바 있다.

 당시 민주·인권·평화 동아리가 크게 위축될까 염려가 컸는데, 340여개 학교가 해당 주제의 동아리를 꾸리는 등 기대 이상의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교육계 일선에서는 ‘운영비도 명확히 책정되지 않는 사업을 굳이 ‘업무 배정’으로 갈등까지 빚는 교사들이 자진해서 할 이유가 있느냐’면서 학생 동아리 운영 사업이 사라질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광주교사노조 관계자는 “사업별 지원이 없는데 자발적으로 운영비를 쪼개 동아리를 운영하겠다는 학교는 거의 없을 것”이라며 “민주·인권·평화 동아리 사업 운영과 관련해 학교장에게 선택권을 넘긴 것은 정책 의지가 약해졌다는 반증”이라고 답했다.

 이와 관련 시교육청 민주시민교육과 관계자는 “해마다 실시하는 동아리 운영 실태조사를 보면, 학교 현장에서 어려움을 많이 호소한다”며 “앞으로는 동아리 운영 학교에 교원 연수 참여 우선권, 국제교류 기회 제공 등 인센티브를 도입하는 방식으로 (운영을) 독려해 나가려 한다”고 말했다.
양가람 기자 lotus@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