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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돈삼의 마을이야기
이돈삼의 마을 이야기 >화순 야사마을
이돈삼 여행전문 시민기자·전라남도 대변인실
  • 입력 : 2019. 07.04(목) 14:16
  • 편집에디터

화순(노루목)적벽

농사에서 가장 중요한 게 물이다. 물이 없으면 농사를 지을 수 없다. 논이든, 밭이든 매한가지다. 지금도 그렇지만, 하늘에 의지해 농사를 짓던 시대에는 더욱 그랬다. 바가지라도 이용해 물을 퍼야 했다.

그 시대에 수차(水車)에 눈을 돌린 학자들이 있었다. 석당 나경적(1690-1762)이다. 나경적은 물의 힘으로 회전날개를 돌려 물을 끌어올리는 자전수차(自轉水車)를 생각해냈다. 오늘날의 양수기이다. 전해지는 자료가 남아있지 않아 그 실체를 정확히 알 수 없을 뿐이다.

규남 하백원(1781-1844)도 있다. 문헌을 통해 수차의 구조를 익힌 하백원은 수차보다 한 수 위인 자승차(自升車)를 개발했다. 사람이나 가축의 힘에 의지하지 않고, 아래에 있는 물을 자동으로 끌어올리는 신식 양수기인 셈이다. 흐르는 물을 통에 넣어 회전날개를 돌리게 하고, 그 힘으로 피스톤을 움직여 물을 퍼 올리는 방식이다. 강물의 흐름을 활용해 수차를 돌리는 현대 수력발전의 원리와 같다. 1810년, 그의 나이 30살 때였다.

하백원은 자승차를 생각해낸 동기와 의도를 담은 '자승차도해설(自升車圖解說)'과 자승차의 설계도와 제작방식을 담은 '자승도해(自升圖解)'를 남겼다. 누구라도 직접 만들어 쓸 수 있도록 했다. 당시 중국식 수차나 일본식 수차가 있었지만, 가난한 농민들에게는 그림의 떡이었다. '자승차도해설'과 '자승도해'는 서유구의 〈임원경제지〉를 통해 전해졌다. 이후 〈규남문집〉에도 실렸다.

자승차는 자동 물시계인 자격루에 버금가는 발명품이었다. 하백원의 집안은 비교적 넉넉했다. 어려서부터 주자학을 배웠다. 하지만 관념적인 학문에 머물지 않았다. 경험을 중시하면서도 실생활에 유용하게 쓰이는 학문이 돼야 한다고 믿었다.

천하게 여기던 농업과 공업, 상업도 학문의 영역에 포함시켰다. '세상에 학문 아닌 것이 없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하백원은 천문과 지리, 세금, 군사 등의 문제도 학문으로 받아들였다. 엄격한 차별과 불평등이 존재했던 시절이음에도, 하백원은 신경 쓰지 않았다. 모름지기 학문은 백성을 이롭게 하는 데 기여해야 한다는 신념 때문이었다.

하백원의 관심에는 경계가 없었다. 동국전도(東國全圖)와 팔도분도(八道分圖)도 그의 손끝에서 그려졌다. 동국전도는 우리나라 전체를, 팔도분도는 9폭으로 그린 우리 지도를 일컫는다. 팔도의 군과 현의 이름을 다섯 가지 색깔로 구분한 것이 별나다. 1811년이었다. 김정호의 '대동여지도'보다도 50여 년 앞선 지도였다.

하백원은 여암 신경준, 존재 위백규, 이재 황윤식과 함께 조선 후기 호남의 4대 실학자로 꼽히고 있다. 성리학이 대세이던 시절에 자신의 출세보다는 백성을 먼저 생각한,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의 본보기였다.

나경적과 하백원이 살았던 고장이 동복현이다. 지금의 전라남도 화순군 이서면 야사리에 속한다. 이서면의 소재지로, 무등산 규봉이 품고 있다. 무등산에서 발원한 이서천을 중심으로 터를 잡았다. 면사무소, 우체국 등이 여기에 있다. 동복댐이 들어서기 전까지만 해도 이서면에는 2000여 명이 넘게 살았다. 댐 건설공사가 시작되면서 많은 주민들이 정든 터전을 떠났다. 지금은 이서면의 전체 인구가 1000명도 안 된다.

"누에를 키우면서 살았던 마을입니다. 집집마다 누에를 키웠어요. 누에 키워서 자식들을 학교에 보냈고요. 10년 전까지만 해도 많이 키웠습니다. 주민들이 노령화·고령화되면서 많이 줄었죠. 예전의 5분의 1이나 될까요."

이서면사무소 하경래(56) 씨의 말이다. 누에는 지금도 키우고 있다. 농가가 많지 않을 뿐이다. 판로도 환, 가루, 진액 등 건강보조식품으로 가공해서 나간다. 일부 농가의 부업 수준이다.

야사마을은 화순적벽으로 가는 길목에 자리하고 있다. 적벽투어 버스가 멈추는 이서커뮤니티센터가 그 중심이다. 오래 전 폐교된 옛 이서중앙초등학교와 중학교 분교 자리다. 규남박물관이 커뮤니티센터 앞에 자리하고 있다. 하백원의 삶과 흔적을 만날 수 있는 공간이다. 만국전도, 동국전도, 서화 등 그의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지난 2011년 문을 열었다. 박물관 부근에 하백원의 생가가 있었다. 하백원이 다니던 서당도 언저리에 있었다. 무덤 자리도 멀지 않다.

어린 나경적과 하백원을 묵묵히 지켜보며 응원했을 노거수도 마을에 있다. 느티나무와 은행나무다. 옛 학교 운동장에 우뚝 선 느티나무는 두 그루이면서도 흡사 한 그루처럼 서 있다. 키가 23∼25m, 가슴둘레 5m 남짓, 수령 400여 년으로 추정되고 있다. 서로 가지를 부대끼지 않으면서도 하나를 이루고 있다. 서로 배려하면서 사이좋게 사는 금슬 좋은 부부 같다. 서로 사랑하는 연인 같기도 하다. 마을사람들이 당제를 모시고 있다. 전라남도 기념물(제235호)로 지정돼 있다.

은행나무는 지척의 이서천변에서 자태를 뽐내고 있다. 1400년대 후반에 마을이 형성되면서 심어진 것으로 전해진다. 공자가 제자들과 함께 공부했다는 행단(杏壇)의 기품을 지니고 있다. 오랜 세월의 주름골인 듯, 유주(乳柱)가 군데군데 보인다. 오래 된 은행나무에서만 나타나는 유주 탓에 수령을 500년 훨씬 넘게 보는 눈도 있다.

유주는 은행나무의 젖이라기보다는 큰 혹처럼 생겼다. 남근을 닮기도 했다. 아기를 갖고 싶은 아낙네가 이 가지를 만지며 지성을 드리면 아기를 점지해준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유주를 붙잡고 비는 소원도 다 이뤄진다는 얘기도 있다.

은행나무는 암수가 마주 보면서 열매를 맺는다. 조금은 떨어져 있더라도 암수가 한데 어우러져야 하지만, 이 나무는 한 그루밖에 없다. 그럼에도 해마다 열매를 주렁주렁 매단다. 이서천 물에 비치는 자신의 자태를 연인이라고 착각이라도 한 것처럼.

전란 때나 나라에 큰 불운이 닥치면 은행나무가 울음을 운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도 전해진다. 1980년에도 나무가 거품을 토해내며 심하게 흔들렸다고 한다. 주민들은 신령스런 나무로 여기고, 해마다 음력 정월대보름에 당산제를 지내고 있다. 천연기념물(제303호)로 지정돼 있다.

규남박물관 옆에 있는 빵집 '누룩꽃이 핀다'도 마을의 명물이다. 조유성(49)·이미경(48)씨 부부가 운영하고 있다. 맛의 비결은 누룩으로 빚은 발효빵에 있다. 서양의 빵 만드는 기술과 우리 전통의 막걸리 빚는 방식이 버무려졌다. 설탕 없이 빵을 만들어 달지 않고 담백한 맛이 자랑이다.

"빵집을 하겠다니까, 마을사람들 모두가 손사래를 쳤어요. 차라리 산골에서 많이 나는 칡으로 즙을 내서 팔라고 조언도 했죠.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제빵 기술밖에 없었는데. 빵집이 안 됐으면 야반도주라도 했을지 몰라요."

조유성 씨의 말이다. 그의 야반도주 우려를 씻겨 준 게 적벽 개방이었다. 30년 동안 베일에 싸여있던 화순적벽이 개방되면서 여행객들이 산골마을까지 찾아들었다. 빵맛을 본 여행객들의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빵집은 화순적벽과 함께 산골마을에 새바람을 일으켰다.

투어버스를 타고 가서 만나는 화순적벽도 매혹적인 풍광을 지니고 있다. 적벽이 하늘과 호수 사이에 펼쳐진 아담한 병풍 같다. 수직으로 깎아지른 바위가 거꾸로 서있는 모양새다. 백아산에서 발원한 동복천이 항아리 모양의 옹성산을 휘돌아 나오면서 이룬 절경이다.

야사마을에서 동복댐 수변도로를 따라 드라이브하면서 만나는 물염적벽과 물염정, 창랑적벽의 풍광도 아름답다.

화순(노루목)적벽

화순(노루목)적벽

규남박물관

규남박물관

규남박물관

규남박물관

규남 하백원 묘

누룩꽃이핀다 빵집

누룩꽃이핀다 빵집

누룩꽃이핀다 빵집

누룩꽃이핀다 빵집

누룩꽃이핀다 빵집

누룩꽃이핀다 빵집

누룩꽃이핀다 빵집 조유성 대표

느티나무와 규남박물관

느티나무와 규남박물관

야사마을 전경

야사마을 전경

야사마을 전경

야사마을 전경

야사마을 전경

야사마을 전경

야사마을 전경

야사마을 전경

은행나무

은행나무

은행나무 유주

은행나무 유주

이서천변-은행나무 풍경

이서천변-은행나무 풍경

이돈삼 여행전문 시민기자·전라남도 대변인실

편집에디터 edit@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