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박철우>스페인독감서 코로나19 찾기

박철우-한국은행 광주전남본부 기획금융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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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우 한국은행 광주전남본부 기획금융팀장.
박철우 한국은행 광주전남본부 기획금융팀장.

옛 것을 통해 새로운 것을 얻는 온고지신이라고나 할까. 100년 전 유행한 1918년 스페인독감 관련 자료를 보면 지금 코로나19 상황에서도 낯익은 장면이 나온다. 당시 사회상이나 정책적 대응 등을 엿볼 수 있다는 게 이런 역사 읽기의 소소한 재미다.

스페인독감은 제1차 세계대전이 막바지로 치닫던 1918년부터 1920년까지 전 세계적으로 유행한 감염병이다. 전미경제연구소(NBER)의 2020년 4월 연구에 따르면 당시 세계 인구의 2.1%인 4000만명, 미국의 경우 전체 인구 0.5%에 해당하는 약 55만 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각국 인구 대비 스페인독감 사망률은 케냐 5.78%, 인도 5.55% 순이고 우리나라도 1.38%였다. 스페인독감으로 인해 통상적인 국가들은 1인당 실질GDP가 6%, 개인소비가 8% 정도 감소된 것으로 나타났다.

스페인독감과 코로나19가 오버랩되는 첫 번째 장면은 최초발생지 논란이다. 코로나19는 세계보건기구가 ‘COVID-19’로 공식명칭을 정하기 전에는 ‘우한폐렴’으로 불릴 정도로 중국 우한이 유력하였으나 임상자료를 근거로 프랑스도 거론되고 있다. 그런데 스페인독감의 발생지는 스페인이 아니다. 제1차 세계대전 중 적국에 유리한 정보를 통제한 참전국들과는 달리 중립국 스페인에서는 검열 없이 맨 처음 관련 보도가 나간 연유로 이름에 ‘스페인’이 붙었다. 최초발생지로는 미국 캔자스 주가 유력한데 독일군은 ‘플랑드르 열병’, 일본은 ‘아메리카 플루’로 불렀고 프랑스, 중국 등도 기원지로 거론되지만 공식적인 컨센서스는 “알 수 없음”이다.

두 번째 장면은 이동제한과 사회적 거리두기다.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국내에서는 학교, 영화관, 클럽 등의 이용을 제한하는 정도이지만 외국에서는 지역봉쇄도 이뤄졌다. 스페인독감 당시에도 미국 필라델피아에서는 학교, 오락시설은 물론 교회까지 폐쇄했다. 코로나19 집단면역을 목표로 이동제한이나 격리 등을 아예 하지 않는 스웨덴의 사례도 있는데, 스페인독감 때 초기부터 강하게 제한조치를 한 미국 세인트루이스와 제한강도가 약했던 필라델피아 사례가 대비된다. 연구(Richard J. Hatchett 외)에 따르면 전자의 경우 사망률이 일정 낮은 수준에서 지속했으나 후자는 초기부터 크게 급등했다가 조기에 떨어지는 추세를 보였다. 2020년 4월 세계경제포럼(WEF) 연구에 따르면 스페인독감 초기부터 엄격하게 제한조치를 한 지역들이 사망률을 낮추고 경제회복 속도도 빨랐다.

세 번째 역사적 장면은 마스크 착용 강제다. 대구시에서 대중교통, 공공시설에서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 해 논란이 됐다. 스페인독감 때에도 미국 샌프란시스코 등에서는 조례로 마스크 착용을 강제해 처벌된 경우가 간혹 있었으나 시행 전 대부분 자발적으로 착용했다. 감염자 수가 줄어들자 일부 종교단체 등이 개인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등 이유로 착용을 반대함에 따라 폐지했다가 감염이 재확산되자 다시 의무화하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하였다. 지금은 다들 공감하는 마스크 착용의 효과 유무도 그 당시에는 논쟁거리였다.

이 외 국내 구로 콜센터 집단감염 사례와 같이 샌프란시스코에서도 전화교환원들이 스페인독감에 집단으로 감염됐고 소방관, 환경미화원 등 공공부문 감염사례도 발생했다. 4월 총선처럼 사회적 거리두기 속에 미국에서도 상·하원선거가 진행됐고, 일본 크루즈선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 입항봉쇄의 선례 격으로 알래스카나 호주에서도 상륙 전 해상격리가 이뤄졌다. 결정적으로 미국에서는 그때나 지금이나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초기대응을 안이하게 하는 바람에 화를 키웠다.

역사는 돌고 돈다. 감염병도 돌고 돈다. 아직 국내에서는 코로나19 1차 확산의 여파가 진행 중이라 예단하기는 이르지만 스페인독감의 경우 1918년 3월부터 1920년말까지 전 세계적으로 서너 차례 유행했다. 미국은 9월부터 이어진 2차 유행 때 사망률이 가장 높았다. 경각심을 가지고 보건당국의 지침에 따라 생활 속 거리두기와 마스크 쓰기 등에 힘써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