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발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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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가람 기자 lotus@j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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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공평한 발걸음은 가난한 자의 오두막집과 임금의 궁궐을 모두 찾아가 문을 두드린다.” – 호라티우스

로마시대 시인 호라티우스에게 죽음은 이런 모습이었다.

하지만 21세기 한국에서 죽음의 발걸음은 공평하지 않았다. 죽음은 늘 가난한 자의 집 앞에 일찍 도착했고, 가난한 자의 대문을 먼저 두드렸다.

지난 4일 광주 한 아파트 자택에서 택배 노동자 A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그는 이날 오전 6시께 잠을 자던 중 ‘악’ 소리를 지르고 의식불명에 빠졌다가 한 시간여 만에 숨졌다. 코로나19 확산 이후 택배 물량이 급증하면서, 하루 평균 400여 개의 택배 상자를 날랐다고 한다.

세상은 그의 죽음을 그저 애도만 했다. 세상의 눈에는 돈을 더 벌고 싶었던 A씨의 무리한 선택만 보였다. A씨가 그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던 ‘구조’는 보이지 않았다.

현재의 택배노동은 건별로 수수료를 책정하는 구조다. 택배 노동자는 택배 하나 당 배송 수수료 800원 정도를 받는다. 정해진 근무시간도 없고, 정해진 물량 제한도 없다. 특수고용노동자, 즉 개인사업자로 분류돼 늘어난 물량은 물론 택배를 분류하는 작업도 오롯이 혼자 책임져야 한다. 여기에 택배회사 간 저단가 경쟁까지 일어 노동자들은 장기간 고된 작업에 내몰렸다.

하지만 한 푼이 아쉬운 노동자들은 끼니, 밤잠도 걸러가며 배송을 한다. 세계노동절 130주년을 맞는 2020년에도 누군가에게 노동은 목숨을 걸어야 하는 생존이었다.

A씨가 죽은 다음 날은 어린이날이었다. 이날 A씨는 초등학생과 유치원생 자녀들과 함께 가족여행을 가기로 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동안 쌓인 노동의 무게는 그의 어깨를 짓눌렀다. 끝내 이불 밖으로 나오지 못한 A씨의 마지막 비명엔 어떤 메시지가 담겼을까.

죽음은 아이들에게서 아빠를 빼앗아갔다. 죽음이 너무 일찍 문을 두드린 탓에 가장 행복해야 했을 어린이날은 가장 슬픈 날이 됐다. 아이들은 새벽에 집을 나서 밤늦게 돌아오는 아빠의 뒷모습만을 기억할 지도 모른다.

이전에도 비슷한 형태의 죽음은 계속 있어왔다. 언론은 그 죽음을 비슷하게 보도했고, 세상도 비슷하게 받아들였다. 다들 ‘노동자(개인)의 죽음’에만 관심있었지, 정작 ‘노동자를 죽게 만든 노동의 착취구조’는 들여다 보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도 죽음의 발걸음은 비슷한 속도로 가난한 자의 집 앞을 향한다.

양가람 기자 lotus@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