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탁의 ‘인사이트’>포스트 코로나의 핵심은 인본주의의 연대

코로나19는 인간이 취약한 생명체임을 성찰할 기회 제공
도구화된 인간의 이성을 본래의 올바른 목적에 써야한다는 깨달음
제2의 인본주의는 이 세상 모든 생명의 생태계와 연대하는 것이 목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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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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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가 세상을 휩쓸고 있는 요즘, 내 일상에도 몇몇 변화가 있었다. 우선 대학강의를 비대면 온라인으로 하게 됐다. 줌으로 학생들을 초청해 가상의 공간에서 질문하고 답한다. 해외 크리에이티브 페스티벌 심사도 온라인으로 대체됐다. 거주국가가 각기 다른 심사위원들과 시차를 극복하며 모니터에 떠 있는 서로의 얼굴을 보며 대화했다. 줌인 줌아웃이 일상화 된 것이다. 재택 근무도 몇주간 했다. 재택근무를 경험한 지인들 대부분은 생산성 저하는 커녕 오히려 주 52시간보다 더 많은 일을 하게 됐다는 푸념을 늘어놓았다. 온라인 챗방도 더욱 활성화 됐다. 집콕하다 보니 서로 얼굴 본 지 오래여서 챗방수다가 잦아지고 길어졌다. 물건 구입은 온라인 장보기도 완전히 대체됐고, 각종 경조사도 카카오페이로 모두 해결했다. 언택(untack) 시대가 열린 것이다.

내게 닥친 개인적인 변화가 이러할 진데, 전세계의 정치,경제,교육의 지형도는 크게 바뀔 전망이다. 누군가는 이 시대를 BC(Before Corona)와 AC(After Corona), 즉 코로나 이전과 이후로 나누고, 이제 다시는 코로나 이전의 시대로 돌아갈 수 없을 거라는 의견을 전한다. 부분 수긍가는 표현이다. 체제 변화는 반드시 올 것이기 때문이다. 재택 근무, 온라인 교육, 기본수당 등의 도입 필요성이 늘 제기됐지만, 적극 적용못했던 일들이 바이러스 덕분에 시도되는 기현상이 발생했다. 거기서 얻어진 경험을 바탕으로 모자란 부분을 보완하며 새로운 생태계를 만들어 갈 것이다. 재택근무가 효율적이라 판단되어 본격 시행된다면, 기업 입장에선 엄청난 사무실 운영비를 절감하게 된다. 가성비가 핵심인 기업에선 마다할 리 없다. 정부 입장에선 재난특별수당 지급을 통해 지급방식과 운영 시스템을 정하는 경험을 쌓게 될 것이고, 그 경험은 언젠가는 닥칠 국민 기본수당 제도를 수립하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이다. 자영업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은 한국에선 근 미래에 기본수당의 도입은 절실할 수밖에 없다. 이 외에도 혁명적인 변화에 대한 예견은 차고 넘친다.

나는 다른 방향으로의 변화를 조심스럽게 예견한다. 위에 언급한 내 일상의 몇몇 변화 중엔 유튜브를 더 많이 활용하게 됐다는 것도 포함된다. 요즘 유튜브엔 무료 콘텐츠가 많이 올라온다. ‘오페라의 유령’이 무료로 제공됐고, 피아니스트 조성진씨가 무관중 무료 생중계 연주를 선사했다. 트라이베카 필름 페스티벌을 비롯 전세계의 저명한 영화제들이 준비했던 작품들을 유튜브에서 무료로 상영하는 ‘우리는 하나(We Are One)’ 영화제가 곧 선보인다. 넷플릭스의 몇몇 콘텐츠는 교육용으로 유튜브에 무료 배포되기 시작했다. 유튜브 뿐만이 아니다. 유엔에선 코로나를 억제할 크레에이티브 솔루션을 전세계 크리에이터들에게 요청했고(United Nations Global Call Out To Creatives ), 전세계에선 자신의 재능을 살린 아이디어를 무료로 제공하며 화답했다. 이러한 나눔과 배려의 사례는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나는 이러한 변화가 이번 바이러스 사태를 맞아 전세계인의 마음의 움직임을 바꿀 계기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을 중세 르네상스에 이은 제2의 인본주의의 도래라 부르고 싶다. 중세 인본주의 혁명은 강요된 종교의 속박으로부터 시작됐다. 인쇄술이 발명되고, 일부 성직자나 귀족들만 접근가능했던 라틴어 성경이 자국의 언어로 번역돼 대중화되면서, 자신의 눈으로 성격을 읽고 해석하게 됐다. 인간의 이성이 싹트기 시작했다. 면죄부 판매가 먹히지 않게 된 것이다. 이 때부터 인간의 이성은 인간이 소유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가치가 됐고,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가 인간의 존재이유를 정의하는 명제가 됐다. 인간 이성의 해방이 중세 르네상스의 핵심이다.

그러나 그 멋진 인간의 이성이 도를 넘기 시작했다. 자국의 실리 추구를 위해 식민지를 개척하고 노예를 포획했다. 오일 시장의 패권을 차지하기 위해 중동지역에 필요치 않은 긴장을 불러일으키고 국지전을 발발시켰다. 내전, 내란이 횡행했고 수많은 난민들이 국적없이 떠돌아야 했다. 이라크에선 드론 폭격을 당해 수많은 사상자가 생겼다. 드론 조종사는 모니터를 통해 보는 인간들이 어느 순간 땅바닥의 개미떼 처럼 보였다고 술회한 적이 있다. 이러한 사례들은 이성의 광기가 표출한 리스트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분열되고 찢어진 지구인들이 연대하여 서로를 돌보고 지키는 일은 외계인이 침공했을 때였다. 지구방위대가 조직되어 외계인과 싸워 찬란한 승리를 이룩한다. 영화에서나 보던 공식이다. 그러나 아이러니 하게도 그 기회를 비천한 미생물인 바이러스가 제공했다. 이 시대 인간들은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 얼마나 취약한 생물인가를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전세계의 정치 경제를 주무르던 몇몇 국가들의 그 잘나 보이던 허세가 얼마나 허망한 것인가를 목도하고 있다. 코스모폴리탄의 상징 뉴욕의 센트럴 파크엔 환자용 간이 침상 시설이 마련됐고, 관광객들로 들끓던 로마와 피렌체는 텅 비어 있다. 그 텅 빈 자리로 야생 동물들이 기웃거리기도 하고, 베니스 운하엔 다시 물고기가 몰려들기 시작했다. 시리아는 내전을 멈추고 잠시 평화를 누리고 있으며, 대한민국은 꿈에 그리던 미세먼지 없는 봄을 맞이하고 있다. 인간이 잠자코 있으니 세상 풍경이 제자리로 돌아온다.

인간이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고 그 가치를 전지구적으로 공유해야 한다는 의미의 제2의 인본주의를 맞이할 때가 왔다. 인간의 이성을 서로 보듬고, 나누고, 연대하는 일에 써야 하는 시대를 열어야 한다. 그 쓰임을 비단 인간 관계에서 뿐만 아니라 지구상 모든 생명체로 확장해야 한다. 2020년, 지구인은 이성의 바른 쓰임새를 갖춰야 할 것을 바이러스로부터 경고받았다. 그 바이러스의 경고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인류는 다시 어둠의 중세로 회귀할 가능성이 있다. 군사력, 오일 파워, 화폐 권력, 무역 패권의 전체주의가 더욱 기승을 부리면, 그 땐 정말 답이 없다. 더 전염성이 강하고 치사율이 높은 바이러스의 침공을 받게 될 지도 모른다. 야생동물에 기생하는 바이러스는 160만 종이다. 어떤 바이러스가 계시록을 몰고 올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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