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개에 담은 우리네 어머니들에 보내는 헌사

광주여성재단 허스토리 공모작 '그녀들의 연대기'
최미애 작가 뜨개로 연잎, 나비, 나무밑 둥 작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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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미애 작가가 광주 북구 일곡동 자신의 작업실에서 사진을 찍고있다. 박상지 기자 sangji.park@jnilbo.com
최미애 작가가 광주 북구 일곡동 자신의 작업실에서 사진을 찍고있다. 박상지 기자 sangji.park@jnilbo.com

실(絲)은 삶의 시작에서부터 끝까지 우리 몸을 감싼다. 태어나 강보에 싸인 순간부터 수의가 입혀지기까지…. 실은 모든 인간과 가장 밀접하게 접촉해 있다. 삶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실, 그리고 그 실로 옷감을 짜는 일은 거의 대부분 여성의 몫이었다. 자녀양육, 가사노동과 더불어 여성은 실과 직물을 만드는 노동을 수 세기동안 관장해왔다. 직물은 인류 최초의 기술임에도 불구하고 ‘여성의 영역’이라는 이유만으로 노동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다. 이러한 기류에 반기를 들 듯, 1970년 페미니스트 미술가들은 퀼팅 등 바느질 작업을 통해 가부장적 이데올로기를 들춰내기도 했다.

지난달 광주여성재단 기획 공모전에서는 바느질에 드러난 페미니즘적 이데올로기를 세대와 국가 간 여성들의 ‘연대’로 확장한 이색적인 전시가 선정돼 주목을 받고있다. 조사라씨가 기획한 ‘그녀들의 연대기’는 뜨개로 작업하는 40대의 최미애 작가와 80대인 그의 시어머니 박상해씨가 뜨개로 연대하며 각각의 개인적인 서사를 작품에 담았다. 또 작업에는 주부 20명과 인도네시아 여성 2명이 협업해 한국 사회의 뿌리 깊은 가부장제를 비롯해 출산 및 육아, 가사 등의 희생적인 여성의 삶 즉 ‘연대'(年代)에 대해 생각해보는 기회를 제공할 예정이라 더욱 의미가 깊다.

홍익대 조소과 출신으로 독일 슈트트가르트 국립조형예술대학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최미애 작가는 그간 나무를 소재로 ‘엄마작가’라는 정체성을 드러내왔다. 나이테를 연상케하는 그의 작업 가장 안쪽엔 따스한 가족의 모습이 그림자처럼 새겨져있다. ‘아이 덕에 오늘도 울고 웃는다’는 최 작가는 온전히 내 속으로 들어와 버린 아이들을 품지도, 놓지도 못하는 이 시대 불완전한 엄마의 모습을 작업으로 끌어왔다.

인내와 희생으로 점철된 여성의 삶이 뜨개작품이 돼 전시장으로 나올 수 있었던 배경이다.

최 작가는 “아이를 키우면서 작업을 동시에 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 고민하던 중 취미로 해왔던 뜨개가 눈에 들어왔다”며 “바늘과 실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든 작업을 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매력적이었다”고 회상했다.

여느 엄마처럼 처음에는 아무생각없이 뜨개를 시작했다고 한다. 바늘로 실을 잇는 다소 단순한 방식의 작업이었지만, 뜨개엔 모성이 담겨있다.

최 작가는 “엄마들이 모여 뜨개를 하는 장면은 어린시절 누구나 한번쯤 봤을 것”이라며 “왜 엄마들은 뜨개를 할까 궁금했었는데, 지금와서 생각해보니 그건 기다림을 메우는 수단이었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대학시절부터 여성 중심의 작업방식에 관심이 컸던 최 작가는 2016년부터 본격적으로 뜨개 속에 주변 여성들의 이야기를 담기 시작했다. 뜨개를 하면서 들었던 지인들의 꿈들을 실 한올한올에 엮어가기 시작했다. 돌처럼 굳어져버린 그들의 꿈에 생기를 불어넣어주고 싶어 사람의 심장을 형상화한 작품을 만들었고, 물 표면 아래 감춰진 연잎의 모습을 의도적으로 작업했다. 울창한 잎사귀에 가려 좀처럼 관찰하기 어려운 울퉁불퉁한 나무 밑둥의 생명력은 최 작가의 대표작이다.

최 작가는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 등 관계에 대한 생각을 하면서 일반적이지 않은 시선으로 사물을 바라보고자 했다’며 “다른 존재가 생명력을 이어갈 수 있도록 지탱해주는 드러나지 않는 것들이 마치 우리 어머니들의 삶 같았다. 이번 전시는 평생을 인내과 희생으로 보내온 이 시대 어머니들에게 보내는 헌사”라고 말했다.

그의 작업처럼 최 작가가 전시를 할 수 있도록 드러나지 않게 도움을 주고있는 이가 있다. 최 작가의 시어머니인 박상해 여사다. 박 여사는 평생 편물작업으로 삼남매를 길러냈다. 아흔을 바라보고 있는 지금 그는, 기꺼이 보이지 않는 조력자를 자처하며 최 작가 작업의 대부분을 감당해내고 있다. 박 여사 외에도, 20명의 주부들과 인도네시아 여성 2명이 최 작가의 작업에 힘을 보탤 예정이다.

전시는 당초 6월께로 예정돼 있었으나 코로나19로 인해 오는 8월에서 9월께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작업에 참여할 여성은 현재 모집중이며, 전시 수익금은 미혼모 시설에 기부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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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미애 작가와 그의 시어머니 박상해 여사가 협업으로 완성한 뜨개 작품들. 도록 발췌
최미애 작가와 그의 시어머니 박상해 여사가 협업으로 완성한 뜨개 작품들. 도록 발췌
최미애 작가와 그의 시어머니 박상해 여사가 협업으로 완성한 뜨개 작품들. 도록 발췌
최미애 작가와 그의 시어머니 박상해 여사가 협업으로 완성한 뜨개 작품들. 도록 발췌

박상지 기자 sangji.park@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