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는 보수당으로 날아간 ‘철새’ 김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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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당 총괄선대위원장 영입된 노정객

“못살겠다, 갈아보자” 철 지난 구호 도입

보수 진보 갈짓자(之) 행보 정체성 모호

20대 총선 민주당 호남 선거 망친 장본인

‘노욕’과 ‘뒤끝’의 끝판왕 누가 신뢰하겠나

 박상수 기자 sspark@jnilbo.com
박상수 기자 sspark@jnilbo.com

보수정당인 미래통합당이 4·15 총선의 총괄선대위원장으로 김종인 씨를 영입했다. 황교안 대표 등이 삼고초려를 통해 총선 선대위의 ‘원톱’이자 ‘간판’으로 모셨다. 통합당에서는 지난 2월부터 그를 영입하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자신에게 전권을 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며 빼다가 이번에는 슬그머니 수락을 했다. 팔순의 고령에도 놓을 줄 모르는 그의 ‘자리’ 욕심에 쓴웃음이 나온다.

그를 영입한 황 대표 등은 그가 미래통합당의 총선 승리에 ‘화룡점정’을 찍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취임 기자회견에서 “통합당을 의석 과반 정당으로 만들겠다.”고 장담했다. 통합당이 총선 공천이 마무리된 후에 뒤늦게 그를 합류시킨 것을 보면 여간 다급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통합당은 보수 세력을 모두 한자리에 모았지만 좀체 지지율이 오르지 않고 있다. 지난주 갤럽 여론조사에서 통합당의 지지도는 22%에 그쳐 37%를 기록한 더불어민주당에 크게 뒤졌다. 코로나19 정국에도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은 55%로 1년 4개 월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문 대통령과 여당의 지지도가 끄떡없는 상태에서 과연 그가 과거처럼 통합당에 총선 승리를 안겨 줄 수 있을까.

김종인 위원장의 이력은 화려하지만 명암이 뚜렷하다. 그는 독립운동가이자 초대 대법원장인 가인 김병로의 손자다. 독일에서 유학을 마치고 1973년 32세의 나이에 서강대학교 경제학과 조교수가 된다. 유신 시절에는 박정희 정부에서 정책자문 역할로 경제개발계획 수립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광주 시민들이 피를 흘리던 1980년에는 전두환 국보위의 자문위원, 민주정의당의 창당 발기인으로 참여했다. 노태우 정부에서는 보건사회부장관과 청와대 경제수석도 지냈다. 경제수석을 지내면서 동화은행 거액 뇌물수수 사건에 연루된 걸 보면 청렴성과도 거리가 먼 사람이다. 이 일로 그는 1994년 대법원에서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4년 및 추징금 2억1000만 원형을 선고 받고 14대 전국구 의원직을 상실했다.

그 후 그는 선거판의 이 당 저 당을 넘나들며 선거를 지휘한다. 2012년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회 위원장 겸 경제민주화추진단장을 지내면서 19대 총선과 18대 대선을 승리로 이끌었다. 2016년 20대 총선에서는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당시 대표의 구원투수로 등판해 다시 제1당을 만들었다. 그 후 민주당을 탈당한 그는 19대 대선을 앞두고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의 멘토 역할을 잠시 한다. 이번 총선에서는 다시 옛 친정이나 다름없는 미래통합당의 총괄선대위원장이 되었다. 아예 직업이 선대위원장이다. 그는 박근혜-문재인-안철수-황교안을 도와 선거를 치르면서 갈짓자(之) 행보를 했다. 도대체 보수인지 진보인지 정체성이 모호하다.

정치판에서는 그가 선거의 ‘마이다스 손’처럼 인식되고 있다. 선거철이면 각 정당에서 러브콜이 쇄도한다. 그러나 그가 총대를 멘 19대 총선에서 새누리당이 이긴 것이나 20대 총선에서 민주당이 이긴 것은 당대의 정치 상황이 만든 것이지 김 위원장이 특별한 역할을 한 것이 아니다. 20대 총선에서 민주당이 수도권에서 승리하고 제1당이 된 것은 새누리당의 공천 파동과 박근혜 정부의 세월호 대응 과정에서 보여준 무능 때문이지 그가 잘해서가 아니다. 그는 대표적인 과대평가주다. 특히 민주당이 호남에서 전멸하다시피한 것은 순전히 그의 책임이다. 전두환의 국보위에 참여한 것도 못마땅한데 그는 자신을 비례대표 남자 최고 순번인 2번에 ‘셀프 공천’을 하는 노욕을 부렸다. 그러면서 “나는 DJ처럼 꼼수를 부리지 않는다.”고 했다. DJ는 13대 총선과 15대 총선에서 전국구 11번과 14번을 자청했다. 그것은 배수진을 친 것도 있지만 영입 인사들을 배려한 것이다. 그것을 꼼수라고 비난하자 호남 민심은 들끓었다. 국보위 출신에 노욕이 철철 넘치고, DJ까지 비난하면서 당시에 호남에서는 우수수 표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가 아닌 다른 진보 인사가 민주당 선거 책임자를 맡았다면 호남에서 반타작은 하고, 민주당은 과반의석도 가능했을 것이다.

김 위원장은 이번 선거판에 ‘못 살겠다, 갈아보자’란 70년 전 자유당 시절의 구호를 들고 나왔다. 그의 사고가 자유당 시절에 머물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꼰대 이미지의 그가 21세기 선거판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은 세상이 다 안다. 그는 ‘노욕’과 ‘뒤끝’의 끝판왕이다. 이 당 저 당 옮기면서 주로 정치 초년생 몫인 비례대표를 5선이나 했다. 그는 또 20대 총선에서 이해찬 의원에게 공천을 주지 않았다. 지역구에 유일하게 출마한 13대 총선 때 서울 관악에서 맞붙어 패한 것에 앙심을 품었다는 얘기가 당시에 나왔다. 이해찬은 보란듯이 세종에서 당선돼 민주당 대표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최근에는 회고록을 써서 자신을 영입해 선거 총책을 맡긴 박근혜·문재인 전현직 대통령을 신랄하게 비난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말을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데다 자기 뜻대로 안 이루어지면 화를 내고, 동네 건달식 정치를 한다.”고 했다. 문 대통령에 대해서는 “천하가 자기 것인 줄 알고 방자하게 굴고 겉과 속이 다르며, 주변 인간 관계가 복잡한 사람”이라고 모욕적인 표현을 했다. 이번 총선이 끝나면 자신을 영입한 황교안 대표를 다시 능멸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는 벼처럼 겸손할 줄 모르고, 노욕과 뒤끝이 하늘을 찌르는 사람이 사회에서 존경을 받기는 어렵다. 우리 유권자들은 바보가 아니다.

박상수 기자 sspark@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