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세대 문화담론> “지금 우리 꼴을 보세요”

김꽃비 ㈜쥬스컴퍼니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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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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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 사이에서 자연재해나 핵전쟁보다 인류멸망의 첫번째 시나리오로 제기된 게 예측할 수 없는 전염병의 세계적 유행이었다. 조용하지만 빠르게 퍼지는 새로운 바이러스는 인간의 통제에서 벗어나 문명을 파괴하고 세계를 혼란에 빠뜨린다. 정해진 시간에 효과적인 백신을 만들어내지 못한 인간은 바이러스에 결국 붕괴된다.

코로나바이러스로 온 세상이 멈춰버린 지금, 전염병으로 인한 인류멸망 스토리를 강조했던 전문가들의 경고가 새삼 놀랍다. 중세 유럽에서 약 3년간 무려 2000만 명의 사망자를 만든 흑사병(페스트)부터 역사상 가장 지독했던 유행성 인플루엔자로 불리는 스페인독감, 2003년 전 세계를 발칵 뒤집어 놓은 사스(SARS), 가장 최근에는 메르스까지 인류는 오랜 기간 전염병과 맞서 싸워왔다. 예방법 또한 시대가 갈수록 효과적으로 발전해왔다. 하지만 전염병의 발생 주기는 점점 짧아지고 유행 가능성도 계속해서 높아지고 있다. 도대체 왜일까.

최근 왓챠플레이를 통해 개봉한 ‘이어즈&이어즈(Years and Years)’는 디스토피아적 미래를 적나라하게 그린 작품으로 코로나 사태로 벌어지는 전 세계의 비상상황들과 오버랩되며 화제가 되고 있다. 한 칼럼니스트가 리뷰로 남긴 “2019년부터 2034년까지 15년간 세계가 순조롭게 망해가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라는 추천이 정말 적절하다. 6부작으로 이뤄진 이 드라마는 브렉시트 이후의 영국을 다루고 있으며 트럼프의 재선부터 난민추방, 도시봉쇄, 가짜뉴스, 환경이슈, 트랜스휴먼(인간의 디지털화) 등 아주 가까운 미래에 일어날 수 있는 모든 불길한 일들을 다루고 있다. 무섭지만 당장 내일이라도 뉴스에 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그런 이야기 말이다. 1화는 미국의 핵미사일 발사로 시작된다.

‘이어즈&이어즈’는 전염병을 인류멸망의 소재로 채택하지 않았지만 절묘하게도 망해가는 모습이 비슷하다. 지금 우리가 직면한 사회의 모습이다. 공포가 사회를 휩쓸고 개인 이기주의가 만연한다. 생사의 갈림길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을 상대로 숨은 이득을 챙기는 자들이 생겨난다. 젠틀한 겉모습에 가려져 있던 사회 곳곳의 혐오들이 수면 위로 올라온다. 유럽에서는 동양인에 대한 혐오가, 한국에서는 중국인에 대한 혐오가 확산되며 불특정한 개인에게 가해지는 혐오범죄가 끊이질 않는다. 불법체류자들이 자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자발적으로 신고를 하고 난민들은 그 어느 곳에서도 보호받지 못한다. 입으로만 일하는 정치인들과 나만 아니면 된다는 이기주의, 방역이라는 대의를 핑계 삼아 행해지는 크고 작은 폭력까지. 3배 이상 뛴 가격에도 구할 수 없던 마스크가 공적 마스크 보급 하루 전날부터 이곳저곳에서 슬쩍 판매되기 시작하는 최근 상황들은 드라마가 아니다. 우리는 지금 디스토피아적 미래를 경험하고 있다. 이건 사전 연습이 아닌 실제 상황이다. 주인공이자 정치가로 등장하는 엠마 톰슨이 극 중 TV쇼에서 외친다. “지금 우리 꼴을 보세요!”라고. 정말 꼴이 말이 아니다.

지금까지 인류는 놀라운 발전을 이뤘고 수많은 위기들을 극복해 왔다. 전염병도 마찬가지. 인터넷 발달로 보완감시체계는 물론 효과적인 정보공유 기술들이 발전하고 질병에 대한 교육과 전문인력을 확보하며 진단과 치료, 백신도 빠르게 진보했다. 하지만 인류는 100년 전과 비교했을 때 훨씬 더 많은 곳을 쉽고 빠르게 이동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여행한다. 야생에 조용히 살던 동물들이 이유없이 전염병의 발병원이 되진 않는다. 공장형 축산방법이 인수간 전염병이 쉽게 퍼지는 환경을 만들고 무분별한 산림벌책이 바이러스 노출 위험을 높인 것처럼 인류는 언제나 새로운 원인을 제공하고 있다. 어쩌면 끊임없이 도전하는 인간의 특성 때문에 필연적으로 멸망을 향해 가는지도 모른다.

코로나 사태를 통해 우리가 겪고 있는 디스토피아적 미래체험기도 언젠가는 끝이 날 것이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전 세계에 벌어진 이 끔찍한 비극 이후 직면하게 될 수많은 사회문제들에 당신이, 내가, 우리가 모두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이어즈&이어즈’의 결말이 서늘한 이유는 이 모든 불행을 누군가의 탓으로만 매도하며 방관한 수많은 보통 사람들을 콕 집어서 비판하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가 함께 만들어낸 세상이다. 중요한 것은 누군가를 위한 비난이나 불평뿐인 방관이 아닌, 미래를 위해 함께 나눌 치열한 고민이어야만 한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