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일광장>트로트의 귀환?

천세진(문화비평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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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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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트 열풍이 불고 있다. ‘트로트의 귀환’이란 단어가 곳곳에서 발견된다. 하지만 열렬한 박수는 열풍 현상을 진단하고 난 뒤에 보내도 늦지 않다. ‘귀환’이 옳은 진단이 되기 위해서는 트로트가 물리적으로, 음악적으로 실종되었어야 하지만, 사라졌던 것은 아니니 음악적 실종에 초점이 맞추어져야 한다. 진단을 위해서는 먼저 트로트의 역사를 살펴야 한다.

음악은 대표적인 대중문화 장르다. 대중의 취향 변화에 따라 부침(浮沈)이 생기고 장르가 갖는 내용성에도 변화가 생긴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난 한 세기 동안의 한국 대중음악사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장르는 트로트다. 대중음악 중 가장 긴 역사를 가진 장르이고, 대중의 취향 변천을 상징적으로 읽을 수 있는 장르이기 때문이다.

어느 문화권이든 젊은 세대는 기성세대가 구축한 문화에 저항한다. 저항을 상징하는 장르는 자생적으로 탄생하기도 하지만, 외국에서 들어오는 경우가 많다. 새로운 장르를 최초로 향유하는 계층은 외국문화를 쉽게 접할 수 있는 부유하고 젊은 엘리트층이다. 포크음악이 대중적이었다고 생각하겠지만, 포크를 주도한 이들은 엘리트계층이었다. 초창기 포크 가수들이 젊은 세대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었던 것도 요즘의 아이돌들과 달랐다. 그들은 단순히 대중문화의 스타라는 이미지로만 팬들에게 어필한 것이 아니었다. 1960년도의 전체 대학생 수는 7만 명이 채 되지 않았다. 학령인구 비율로 따져보면 2∼3%에 불과한 소수였다. 1970년대는 비율이 좀 더 높아졌지만, 1960∼70년대에 대학생이라는 것은 극소수의 엘리트 그룹에 속한 것을 의미했다.

1930년대 트로트도 초창기 포크처럼 부유한 청년 엘리트계층이 즐기는 고급문화였다. 이후 대중이 즐기는 음악이 되면서 1960∼70년대에 걸쳐 서민들의 감성을 대변하는 노래로 자리매김한다. 산업화의 여파로 농촌을 떠나 도시에서 각박한 삶을 살던 서민들에게 실질적인 위로를 주었던 것은 포크가 아니라 트로트였다. 당시 트로트의 공간적 배경은 ‘시골 이미지’였고, 그런 이유로 기성문화에 반발하던 엘리트 청년들에 의해 트로트가 촌스러운 음악이라는 이미지를 갖게 된 측면도 있다. 한때는 도회적 감성을 대표한 트로트가 시골적인 이미지를 갖게 된 것이 아이러니지만, 대중화에 따른 자연적인 흐름이기도 했다.

그러나 1980년대 들어 새로운 음악 장르들이 속속 등장하면서 트로트는 서민들의 정서를 담아내던 역할을 상실하고 천박하고 일회적인 남녀관계가 가사의 주를 이루는 ‘카바레 음악’의 위치로까지 전락한다. 달라진 문화적 지형 속에서 새로운 역할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퇴폐적인 하위 계층의 음악이라는 낙인이 찍히는 위치로 퇴보한 것이다.

현재 일고 있는 트로트에 대한 관심은 두 가지 방향에서 흐름을 만들어야 한다. 하나는, 일제치하 시대인 1930∼1940년대 트로트, 산업화 시대인 1960∼1970년대 트로트, 민주화와 세계화 시대인 1980년대 이후의 트로트로 나누어 편향적 관점들을 배제하고 문화적 관점에서 제대로 진단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1960∼70년대의 트로트가 서민들의 마음을 달래준 음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문화적 위치와 가치를 폄하 당했던 것에 대한 음악사적 귀환이 이루어진다.

또 하나는 30년 넘게 의미적 퇴보를 겪은 트로트의 의미적 귀환을 만들어내는 일이다. 트로트를 들어보면 알겠지만, 트로트는 다른 어느 대중음악 장르보다도 정형적인 리듬을 갖고 있다. 가사를 빼고 들어보면 대부분의 트로트 음악에서 상당한 유사성이 발견된다. 그 얘기는 트로트가 대중음악을 선도하던 시대에는 트로트의 매력이 리듬이 아니라 가사가 담고 있는 감성과 스토리에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유사한 리듬의 동어반복적인 탄생만으로 오랫동안 인기를 구가하는 것은 어느 장르에서든 불가능하다. 역사적 가치를 부여받은 장르들은 메시지 또한 중요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메시지만이 동어반복적인 리듬을 새로운 음악으로 받아들이게 한다.

1980년대 이후의 트로트가 잃어버린 것이 바로 그 문화적 메시지다. 트로트가 귀환하려면 음악적 내용에서 귀환이 이루어져야 한다. 현재의 열풍은 방송국에서 기획한 프로그램들에 의해 탄생한 몇몇 스타들을 향한 팬덤 현상의 성격이 짙다. 대중적 귀환이라고 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진정한 귀환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