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향기>영화 ‘기생충’이 트럼프에게

김선기 문학박사·시문학파기념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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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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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영화’기생충’에 대해 연일 혹평을 쏟아낸 모양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20일 콜로라도 스프링스에 이어 21일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 대선 유세에서 “그 영화(기생충)는 한국에서 만들어진 것”이라며 “그들은 이제 그런 방식으로 하는데 나는 이해할 수 없다”고 아카데미 수상작 선정을 문제 삼았다. 이어 그는 한국과의 통상 마찰을 언급하면서 “여러분도 알다시피 그들은 무역과 관련해 우리를 죽이고 있다”면서 “그들이 무역 분야에서 우리를 때리고, 빌어먹을 영화로 아카데미 상을 탔다”고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그동안 트럼프 대통령의 맥락 없는 돌출 발언에 익숙해져서인지 그다지 놀라운 일은 아니다. 다만 일국의 대통령이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데도 열광하는 지지자들을 보면서, 미국이란 나라의 정체성에 의구심이 들 뿐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 유세 중 난데없는 말을 던진 데에는 분명 이유가 있을 터다. 글쎄, 그 속내가 뭘까. 짐작컨대 이런 게 아니었을까.

백인 우월주의자이자 미국 제국주의자인 트럼프에게 평소 한국이라는 작은 아시아 국가가 거슬리는 존재였을 것이다. 그런데 미국 아카데미상 4관왕을 싹쓸이한 영화 ‘기생충’이 바로 ‘Made by South Korea’였던 거다. 트럼프는 47초의 기생충 관련 발언 내용에 “한국의 영화”, “한국”이라고 한국을 두 번이나 언급한 대목에서 우리에 대한 그의 불편한 심기가 읽혀진다.

산업과 문화적인 측면도 있었을 것이다. 우선 삼성전자의 존재다. 삼성의 휴대폰과 TV는 전 세계 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다. 미국 기업 애플을 제치고 휴대폰과 가전 시장에서 앞서나가는 삼성이 ‘미국 우선주의자’ 입장에선 눈엣가시일 게 분명하다.

여기에 BTS(방탄소년단)의 활동도 거슬렸을 법 하다. 미국 주도의 음악 시장에서 K팝 신화를 쓰고 있는 BTS도 트럼프 입장에선 좋게 보일 리 만무하다. 이런 상황에서 ‘백인들만의 리그’로 평가받는 아카데미상마저 한국 영화가 장악했으니 그의 심사는 여간 불편했으리라.

이번 트럼프의 발언은 주요 언론과 소셜미디어를 통해 미국을 넘어 전 세계인들에게 여과 없이 전파됐다. 이 때문에 역설적으로 트럼프가 영화 ‘기생충’ 마케터로 활약했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그 때문일까. 기생충은 미국에서 2000개 이상의 영화관에서 상영 중인데 실제로 지난달 말 관객들이 더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트럼프의 노이즈 마케팅에 힘입어’기생충’은 미 박스오피스 4위를 차지하며 미국에서만 현재 5000만 달러 이상의 티켓 판매액을 올리고 있다. 영국을 포함해 유럽에서도 지속적으로 관객이 늘어나고 있으며, 일본에서도 역대 한국 영화 사상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아카데미로 화제에 오른 우리 영화 ‘기생충’이 트럼프 대통령의 입을 통해 노이즈마케팅이 작용한 셈이다. 영화 ‘기생충’의 입장에서 보면 고마울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