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일광장>엘 클라시코와 책읽기

천세진(문화비평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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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세진(문화비평가, 시인) 편집에디터
천세진(문화비평가, 시인) 편집에디터

블로그에서 책을 자주 소개하는데, “어려운 책은 싫어요!”라는 반응을 대할 때는 난감하다.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왜 작가들은 책을 이렇게 어렵게 쓰는지 모르겠다”는 볼멘소리도 뒤따른다. 출판계를 걱정하는 사람들은 대중이 원하는 책을 쉽게 쓰라고 조언을 하기도 한다. 일견 맞는 말 같기도 하다.

축구 이야기를 잠시 해보자. 현재 가장 인기 있는 프로축구리그는 영국 프리미어리그다. 인기 덕분에 막대한 자본이 프리미어리그로 몰리고 자본을 바탕으로 타 리그보다 더 강해지는 선순환이 이루어지고 있다. 유럽의 프로리그가 중계를 타면서 국내 축구리그는 위축되었다.

지네딘 지단이 마르세이유 구단 소속 시절 탁월하게 구사하여 유명해진 ‘마르세이유 턴’이나 ‘라보나 킥’을 능숙하게 구사하는 축구를 보다가 하위 리그의 ‘뻥’ 축구를 보고 있으면 채널을 돌릴 수밖에 없다. 유럽 축구를 통해 축구를 즐기는 눈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세계 최고의 구단인 FC 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의 경기는 예술에 가깝다. 그런 경기를 보면서, 선수들이 구사하는 기술이 어려워서 축구를 보기 어렵다는 말을 하지는 않는다.

다시 책으로 돌아가 보자. 쉬운 책과 어려운 책이 따로 있는 걸까? 물론 현대 철학서들은 어렵다. 현대시도 현대 미술도 어렵다. 현대의 철학, 예술, 문학에서 만나게 되는 어려움은 창작의 영역에서 벌어지는 일이기 때문이다. 학문 분야도 예술, 문학 분야도 이전의 것을 그대로 답습하거나 베끼는 것은 첫 번째 금기다. 탄생의 명분이 없다. 그런데 창조의 영역은 점점 협소해져서, 자신만의 창조라고 주장할 수 있는 것을 찾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그 때문에 난해해지는 측면이 있다.

그렇다 해도 지나치게 어려운 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 오로지 이전의 창작물들과 ‘다름’을 얻기 위해 어려워지는 것은 옳은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무조건 대중의 눈높이에 맞추라는 요구 또한 옳은 것이 아니다. 대중의 눈높이라는 것 자체가 허구다. 존재하지 않는 눈높이다. 문학, 예술, 음악을 통계화하여 눈높이를 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자의적인 잣대일 뿐이다. 일부 연구자와 작가들이 자신의 지식을 과시하기 위하여 어려운 글을 세상에 내놓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작가들은 자신이 고뇌하고 사유한 것을 최적의 언어와 문장에 담아내려고 애를 쓴다. 일부러 어렵게 쓰려는 것이 아니다. 어렵다는 것도 실은 오해다.

책은 음식이나 스포츠와는 다르다. 스포츠는 선수가 각고의 노력을 들여 보통사람들은 감히 따라할 수 없는 어려운 기술을 구사한다 해도 눈으로 즐기는 것이기 때문에 어렵다는 거부감을 드러내지 않는다. 음식의 경우에도 사찰 음식 같은 경우 입에 맞지 않아도 건강을 위한 먹거리라는 ‘아우라’ 때문에 거부감 없이 받아들인다.

문학 작품은 눈의 단계에서 멈추지 않는다. 눈을 통해 몸으로 들어오지만 눈에서 곧바로 평가를 내리고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다. 문학을 비롯한 예술작품은 ‘아는 만큼 즐긴다’는 명제가 적용된다. 더 많은 정보를 이해하고 문학, 미술, 음악을 탄생시키는 장치들에 대한 이해가 깊을수록 더 풍부하게 즐길 수 있는 영역이다. 작가들도 대중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모든 대중이 작가들처럼 시대와 역사를 연구하고 고뇌하여 글로 만들어내지는 않는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독자들도 가만히 앉아서 팝콘을 먹으며 프리미어리그를 즐기듯이 책을 읽어서는 안 된다. 작가들이 고뇌하여 얻어낸 지점이 90이고, 대중들이 머물러 있는 지점이 50이라면 작가들은 20쯤 내려오고 독자들은 20쯤 노력해서 70쯤 되는 지점에서 만나야 한다. 무작정 작가들에게 내려오라고 하면 그 사회의 문화는 발전하지 못한다. 어렵게 끌어올린 누군가의 작품이 존재하기 때문에 문화는 한 단계 높은 수준의 지평을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작가는 대중에게 읽히기 위해 작품을 쓰지만 달달한 팝콘이나 아이스크림 같은 것만을 생산할 수는 없다. 창작은 배설행위가 아니기 때문이다. 어려운 것이 아니라, 자주 접하지 않아서 낯설게 보이는 것일 수 있다. 자주 접하다 보면 익숙해지고 이해된다. 항상 현재의 수준보다 조금 어렵게 느껴지는 책을 읽어야 한다. 고뇌를 주지 않는 책읽기는 사유 능력을 높여주지 않는다. 대중이 사유하지 않으면 현재의 신천지 사태처럼 무지몽매가 시대를 강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