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주의 폭로’ 日 시인 마쓰다 도키코를 아시나요

전남과학대 김정훈 교수 연구 1995년 복간판 토대 연구
저항시인 도키코 "30년 문인 치안유지법 아래 탄압 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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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안유지법 대탄압모임에서 강연하는 마쓰다 도키코의 모습. 김정훈 교수 제공 편집에디터
치안유지법 대탄압모임에서 강연하는 마쓰다 도키코의 모습. 김정훈 교수 제공 편집에디터

일본의 저항 시인 마쓰다 도키코를 연구하며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의 문학사를 재조명하고 있는 전남과학대 김정훈 교수는 일본이 자국 시인의 출판 탄압을 한 정황을 발견했다.

김 교수는 “일본의 근현대 역사상 시집 발매금지를 당한 유일한 여성 시인 마쓰다 도키코가 직접 자신의 시집을 발매금지시킨 일본제국주의 정부의 문학작품 억압 상황을 혹독히 비판한 문서가 나왔다”고 밝혔다.

마쓰다 도키코의 생애와 문학사를 연구하고 있는 김 교수에 따르면 마쓰다 도키코는 1935년 도진샤(同人社)에서 출간해 발매금지를 당한 그녀의 시집 ‘참을성 강한 자에게’의 복각판을 일본정부에 대한 항의의 뜻을 담아 지난 1995년 후지(不二出版)에서 출간했다.

마쓰다 도키코는 복각판에 ‘지금 어째서 발매금지 시집일까’라는 제목의 저자 후기를 적었다. 후기 내용에는 복각판 출간 이유, 탄압 양상, 심경 등이 고스란히 담겼다.

마쓰다 도키코는 서두에서 “내가 일본 제국주의 시대에 쓴 이 시집 ‘참을성 강하게’의 복각을 결심한 것은 발매금지된 시집이었기 때문”이라고 복간판 출간 동기를 설명했다.

이어 “또 한가지 이유는 이것이 나의 최초의 시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의 정부가 발매금지시켰다는 것에 나는 지금도 연연하고 있다”며 “용서할 수 없는 일이 아닐까”라며 강하게 항의했다.

일본 정부의 출판 탄압양상에 대해선 “이 시집이 나왔을 당시(1935년) 이렇게 세심하게 시의 한 자 한 구절까지 일본의 군국주의적 정부는 트집을 잡았다”라며 일본정부의 치졸한 행위를 비판했다.

이에 대해 김 교수는 “1930년 전후 고바야시 다키지(日 계급주의 작가)를 비롯한 문인들이 치안유지법 하에 탄압을 당했다”며 “마쓰다 도키코는 권력이 문화적 폭거를 자행하는 일이 두 번 다시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는 경고를 한 셈”이라고 평가했다.

마쓰다 도키코는 본론에서 “날카롭고 더욱 훌륭한 시대비판을 담은 많은 문학작품이 장르와 상관없이 ‘××’ 복자 표시로 더렵혀졌고 발매금지 대상이 되었다”며 일본 정부의 탄압을 생생하게 고발했다.

당시 발매금지 당한 예를 출산에 빗대어 “나는 자신의 첫 애가 타인의 손에 의해 햇빛을 보지 못하고 억눌려 죽은듯한 충격을 받았고 분노했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후기의 마지막 부분은 “이 시집을 (투쟁해온) 선배들의 묘지에 바치고 싶다. 헌법 9조를 짓밟고 반민주적 악정을 펼치려는 세력에 맞서 활동하며 집필하는 전후세대의 동료들에게 바친다”며 매듭을 지었다.

김 교수는 “마쓰다 도키코는 1928년에도 이미 동료들과 함께 집필한 ‘일본프롤레타리아 시집’으로 판금당한 바가 있다”며 “당시 치안유지법 하의 언론, 출판 탄압에 대해 혹독히 비판하며 복각판 간행을 통해 명예회복을 추구한 것이다”고 설명했다.

또 “마쓰다 도키코는 99세 나이로 세상을 뜨기 3일전 자택에서 진행한 아사히 신문과의 인터뷰에서도 일본 시민들에게 헌법 9조를 지켜줄 것을 강력히 호소했다”며 “이 부분에 마쓰다 도키코의 투철한 작가정신을 엿볼 수 있다”고 밝혔다.

한편 일본의 헌법 제 9조는 제2차 세계대전 후 승전국인 미국의 주도에 의해 만들어진 법으로 일본의 전력 보유 금지와 국가 교전권 불인정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다.

발매금지 주체와 배경 밝힌 시집 앞표지(복각판). 김정훈 교수 제공 편집에디터
발매금지 주체와 배경 밝힌 시집 앞표지(복각판). 김정훈 교수 제공 편집에디터
최황지 기자 orchid@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