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의 창>오스카의 쾌거, 봉준호가 던진 교육적 영감

노영필(교육평론가, 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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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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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바이러스로 온 나라가 얼어붙어 있을 때 봉준호감독의 ‘기생충’은 희망의 등불이 되었다. 뉴욕타임즈는 “한국영화 뉴웨이브의 선봉장, 봉준호의 영화를 들여다보면 한국 사회를 볼 수 있고 역사도 돌이켜 볼 수 있다. 현실(Reality)과 환상(Fantasy)을 결합해 영화의 예술적 쾌감과 오락적 쾌감을 동시에 충족시켜 주는 그의 작품들은 늘 기대와 호기심을 안겨 준다. 가장 흥미진진한 감독이라고 할 수 있다.”고 찬사를 보냈다.

오스카의 쾌거는 문화 강국으로의 또다른 도약을 열어준 것임이 분명하다. ‘기생충’은 지금까지 백인중심의 폐쇄된 시상 흐름을 깨고 비영어권에서 처음으로 감독상을 비롯해4개분야를 차지하면서 또 다른 한류역사를 열었다.

한류가 세계인을 감동시킨지 오래다. 최근 봉준호감독과 방탄소년단(BTS)은 서로 앞서거니 뒷서거니 한류 르네상스의 커다란 물줄기를 이끌고 있다. 아시아를 넘어 유럽, 남미, 북미 뿐만 아니라 아랍권에서도 한류는 큰 관심을 받고 있다.

한류가 확산되면서 우리말로 세계인들이 드라마를 보고, 노래를 부르고 있다. 이번 시상 중에 봉준호감독이 인터뷰하면서 영어와 섞어 쓴 우리 말은 새로운 국제 언어가 되면서 세계인들의 환호를 받았다.

우리는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그 중심에 선 주인공이 한류 문화다. 우리는 아카데미 시상식을 보면서 분명히 목격했다. 이제 봉준호감독의 한 마디 한 마디는 예술언어가 되었고 세계 언어가 되었다. 세계적으로 쏟아진 봉준호감독의 기사와 인터뷰는 이른바 ‘봉준호장르’가 새로 열리고 있음을 확인해주고 있다.

그 기사들의 행간을 더듬던 내 눈에는 학생 봉준호가 떠올랐다. 그리고 세계적인 찬사를 받은 봉감독의 작품처럼 우리 교육은 어떤 찬사를 받고 있는지 되돌아 보게 되었다. 오바마대통령이 극찬을 했지만 우리 교육의 진면목을 제대로 보고, 부러워했던 것인지 교육자로서 자신이 없다.

나아가 봉감독의 학교 생활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상상의 날개를 펼쳐 본다. 1980년대를 살았던 봉감독의 시대는 시대를 정면으로 안고 가야 했다. 21세기를 사는 지금의 아이들과 겹쳐보아도 시대를 고민할 줄 아는 문제의식을 가진 학생이었을 것이다. 그가 말수가 없이 공부만 잘 하는 학생이었더라도 현실에 눈떴다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 교육이 유머러스한 학생, 집중하지 못하고 산만한 학생, 해찰이 심한 학생을 여유롭게 기다리지 못한 풍토이니 또 다른 봉준호를 기대할 수 있을까? 통제만 앞세우고 학교자치를 열어가지 못한 것 또한 큰 이유다. 이제는 수업시간에 자신의 코드에 맞지 않으면 한쪽에서 그림낙서를 그리고 다른 책을 꺼내 자기 세계를 탐닉하는 학생을 여지를 가지고 기다려줘야겠다.

봉준호의 학창시절에 교과서에는 페이지마다 스타워즈캐릭터가 그려져 있었다는 일화가 있다. 수업에 집중하지 않고 해찰했던 것이리라. 그 해찰이 창의성을 만나 재능을 꽃피웠던 셈이다. 이젠 내게 즐거운 수업시간을 만들기 위해 장난과 놀이와 해찰, 낙서와 독서가 수업시간으로 녹아드는 열린 수업이 필요하다. 그가 수업시간에 낙서처럼 그렸을 콘티, 습작처럼 써내려갔을 글들, 수도 없이 읽었을 책들, 그가 봤을 영화들을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서 녹이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그가 개인적으로 일궈낸 상상력과 창의성이 학교생활과 수업과정에 조합될 수 있도록 말이다.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이다”는 마틴 스콜세이지 감독의 메시지를 곱씹고 곱씹는 동안 그의 아이디어가 삶과 이어져 녹아들었고, 영화의 요소요소에 결합된 것이다. 그것은 자기 자신이 가장 존엄하게 취급된 가정환경을 만났고 그것이 다시 사회적인 창의성으로 피어난 것이다. 차이를 그대로 인정할 때 상상력은 배로 발휘된다는 교훈을 준 것이다.

‘봉준호’ 세계 최고가 된 그의 이름 앞에 교단의 나에게 되돌아온 질문이다. 3월 수업을 어떻게 할 것인지 고민스럽다. “우리 교육은 한 사람의 개인을 키워주려는 방식에 대해 비판할 일이 아니라, 내가 먼저 획일적이지 않은 수업을 준비하자”, 나만 살아낼 일이 아니라는 것과 우리가 어떻게 함께 할 것인지를 끌어내는 고민을 담자.

미래의 한류를 이끌 아이들에게 봉준호감독의 창의성을 통해 교육적 영감을 얻을 수 있어 고맙다. “개인적인 것이 창의적인 것”라는 말 속에는 “가장 너 다울 때 가장 창의적이다.”로 바꿔서 자신감을 가질 수 있도록 하자. 한 개인의 경험, 시대를 읽는 통찰력, 자율적 상상력과 창의성이 사회적으로 승화되어 표출될 수 있도록 말이다.

그래서 ‘차려진 잔칫상에 숟가락 얹기’하는 정치권의 수준낮은 반응 앞에 더 속상해진다. 제발, ‘박물관을 만든다’, ‘동상을 만든다’ ‘생가를 복원한다’는 말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 말이야말로 가장 봉준호감독을 이해하지 못한 말이고 봉감독을 살려내지 못한 말이기 때문이다.

지금 세계는 한국인의 창의성을 주목하는데 우리 아이들을위해 어른들의 교육적 상상력은 어디에 머물고 있는가? 엄중하게 다시 묻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