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겨울도 춥다”… 폐지줍는 노인들의 ‘겨우’살이

길 위의 위태로운 노인들 -(상)실태
폐지 1kg당 50원… 낮은 수익에 빈곤 악순환
사고 위험·건강 악화… 폐지 노동에도 성차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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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광산구의 한 고물상에서 노인이 주워온 폐지들을 내려놓고 있다. 양가람 기자 양가람 기자 lotus@jnilbo.com
광주 광산구의 한 고물상에서 노인이 주워온 폐지들을 내려놓고 있다. 양가람 기자 양가람 기자 lotus@jnilbo.com

18일 오후 6시 광주 광산구 한 고물상. 박모(74·여)씨는 폐지가 가득 담긴 손수레를 끌고 고물상 안에 들어왔다. 손수레에 실린 폐지를 확인한 고물상 관리자가 5000원을 건넸다. “힘들게 주웠는디 병원도 못 가겄네.” 허리춤에 매달린 작은 주머니에 돈을 밀어 넣은 박씨는 빈 손수레를 끌고 터덜터덜 떠났다.

빈곤 노인들이 폐지를 줍기 위해 길거리로 나서고 있다. 하지만 그들의 삶은 여전히 힘겹다.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그들에게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 한 시간에 2200원… 폐지값도 떨어져 궁핍

2018년 광주시 자체 조사 결과, 광주 시내에 폐지를 주워 생계를 유지하는 노인이 750여 명에 달했다. 65세 이상 노인은 전체의 85.3%인 698명으로 가장 많았고, 장애인도 34명이었다.

노인들은 자녀들에게 손을 벌리기 싫어 직접 거리로 나서지만 수중에 쥐는 돈은 몇 푼 되지 않는다. 현재 폐지 1kg 당 노인의 손에 쥐어지는 돈은 50원. 손수레 가득 100kg 가까이 폐지를 모아도 5000원이 전부다.

한국노인인력개발원은 시간당 평균소득을 따졌을 때, 일하는 노인은 시간당 7700원을 벌지만 폐지수집 노인은 2200원을 번다고 봤다. 폐지수집 노인이 오래 일을 하더라도 일하는 노인들에 비해 소득이 낮을 수밖에 없다.

하루에 몇 차례씩 부지런히 다니면 2만원대의 소득을 올릴 수도 있으나 그 정도로 건강한 노인은 많지 않다.

최근엔 코로나 사태로 식당 영업도 줄어 노인들이 폐지를 줍기 더욱 어려워졌다.

설상가상 중국 수출길까지 막히면서 폐지 가격이 반토막 난 점도 노인들을 힘들게 한다.

고물상 관계자는 “예전엔 폐지 1kg당 100원 언저리까지 가기도 했다”면서 “작년부터 폐지 가격이 점점 내리기 시작해 지금은 50원대다. 3월엔 더 떨어진다는 말이 들려서 착잡하다”고 말했다.

● 사고 위험에도 노출돼… 지난해만 25명 사망

지난해 11월 이른 새벽 60대 노인이 차에 치여 숨졌다. 노인은 왕복 4차선 자동차전용도로에서 폐지를 줍다가 변을 당했다.

광주지방경찰청에 따르면, 65세 이상 노인 교통사고는 최근 3년여 간 꾸준히 늘었다. 지난 2017년 1035건에서 지난해 1188건으로 늘었다. 지난해 교통사고 사망자만 25명이나 됐다.

폐지수집을 하는 노인들은 손수레를 끌기 위해 차도를 이용한다. 하나라도 더 줍고자 무단횡단을 하기도 한다.

노인들 사이에 폐지수집 경쟁도 붙어 새벽부터 나와 폐지를 줍는 이들도 많다.

그 과정에서 달리는 차에 치여 다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되레 길 가던 행인을 손수레로 치거나 주차된 차량을 훼손시켜 돈을 물어주기도 한다. 힘들게 번 돈을 순식간에 날렸다는 허망함에 한동안 우울증을 앓았다는 노인도 있다.

특히 겨울철엔 빙판길에서 넘어지는 등 안전사고도 빈번하게 발생한다. 성치 않은 몸으로 무리하게 폐지를 줍다 아예 드러누운 이들도 많았다.

● “아프지만 병원 안가”… 여성 잔병치레 심각

2018년 한국노인인력개발원의 ‘폐지 줍는 노인실태에 관한 기초연구’ 조사에 따르면 폐지 줍는 노인의 71.7%는 건강상태가 ‘나쁨’ 수준이었다. 일자리가 있는 노인 중 건강이 안 좋은 비율(51%)보다 높은 수치다.

영양결핍, 우울감 등 빈곤 상태가 주는 악영향에다 폐지를 줍는 과정에서 얻은 타박상 등 탓이다.

하지만 상당수 노인은 비용 문제로 병원에 가지 않는다. 제때 적절한 치료를 얻지 못해 병이 심해지는 경우가 많은 이유다.

특히 여성 노인의 건강 상태는 더 심각하다. 평생을 가사노동만 해온 경우가 대부분이라 늦은 나이에 중노동을 하면서 얻은 질병들이 많았다. 남성 노인들에 비해 체력도 약해 손수레 대신 유모차를 끌어야 하는 이들도 많다. 이 경우 주울 수 있는 폐지의 양이 한정돼 남성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수익을 얻게 된다. 폐지 노동에서도 성차별이 발생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고물상 관계자는 “할아버지들은 돈을 모아 오토바이나 차를 끌면서 ‘나까마'(폐지 수집 노인과 고물상을 연결하는 중간 수거상 역할)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할머니들은 쓰레기 줍기만 겨우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양가람 기자 lotus@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