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의 창>우리는 어디까지 ‘우리’인가

김혜영(김령)- 성덕고등학교 교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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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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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가장 큰 화제는 단연 코로나 바이러스일 것이다. 중국 우한 지역에서 12월에 처음 발병했는데 모든 전염병이 그렇듯이 일정시기가 지나자 급속하게 공포와 루머가 확산되기 시작했다. 사람들과의 직접적인 접촉이나 비말이 아니고 눈에서 눈으로, 공기 중으로 전파된다는 확인되지 않은 말들이 퍼지기 시작했다. 또 중국 정부가 제대로 알리지 않아서 그렇지, 실제 사망자는 훨씬 많을 것이라는 말까지 온갖 말들이 전염병처럼 떠돌았다.

우리 정부에서 우한시에 거주하는 교민 700명을 전세기로 이동해서 별도의 지역에 격리 후 귀가 조치한다는 방침이 전해졌다. 국민들 대다수는 정부의 자국민에 대한 보호의지와 빠른 조치에 긍정적으로 반응했다. 그러나 교민들을 특정지역에 격리 조치한다는 이야기가 전해지자 일부 주민들이 트랙터 등을 이용해 길을 막으며 격렬하게 반대하고 그 뉴스를 접하자 다양한 반응들이 나왔다. 아예 중국인을 입국 금지시켜야 한다는 이야기부터 왜 하필 우리 지역이냐, 그렇게 안전하다면 강남 한 복판에 격리수용하라는 이야기까지 온갖 이야기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더욱이 이것을 정치적 이슈로 만들어서 정쟁의 도구로 삼고 국민들을 선동하는 정치인들까지 합세하고, 그 지역 밖의 사람들은 그들의 이기심을 비난하기도 했다. 다행히 시간이 흐르면서 격리시설 지역 사람들이 우한 교민을 환영한다는 내용을 sns상에 전파하는 사람도 나타나고, 공포심을 조장하여 정쟁에 이용하려는 정치인을 질타하는 사람들이 생겨나면서 여론은 조금씩 진정되는 모습이다. 700명 중 충남도민이 150여명이며 그 중 아산 시민이 60명이라는 보도도 나왔다. 또 중국 사람에 대한 혐오감정이 퍼지고 거기에 대한 반론으로 미국에서 석 달 사이 4,800명이 독감으로 사망했으나 다뤄지지 않은 것을 지적하면서 지금의 반응을 인종차별이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나는 여기서 ‘우리’라는 범위에 대한 얘길 해보고 싶다. 격리시설이 당장 우리 지역에 들어온다면 처음 아산시민들을 향해 비난을 퍼붓던 사람들은 일말의 망설임 없이 환영할까? 격렬하게 반대했던 사람들 중 우한지역에 자기 가족이 있다면 어떻게 반응할까? 가족의 안위를 염려해서 하루빨리 입국하길 원할 것이다. 충남도민이나 아산시민의 숫자를 언급하는 것도 ‘우리’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 아닌가. 우한 교민들 중 전세기를 탈 수 있는 사람도 대한민국 국적자여야 해서 아내나 자식이 중국 국적인 사람은 차마 가족을 두고 전세기를 타지 못한다는 말도 들었다. 제주도의 난민 수용을 거부하는 여론도, 외국인이 건강보험료 조금 내고 엄청난 의료혜택을 받는 경우가 많으므로 걸러내야 한다는 것도 ‘우리’라는 테두리 바깥이라고 생각하면 쉽게 이해가 된다.

인류 역사의 발전은 이 ‘우리’의 테두리를 넓혀온 것이라고 할 수도 있지 않을까? 흑인노예 해방은 흑인은 ‘우리 백인’과는 다른 존재라는 것에서 ‘우리 인류’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 많아지는 것으로부터 비롯되었다고 생각한다. ‘양반’만이 인간이라는 생각에서 ‘우리도 똑 같은 사람’이라는 인식이 퍼져나가면서 우리의 자유가 확장되었다. 예전에는 동물의 생명을 존중하는 사람이 극소수였지만 오늘날 동물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생명을 가진 존재’로 인식하게 되면서 보호하고 보살피며 동물권을 말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전염병에 걸린 사람을 ‘우리나라 사람이 아니다’는 시각에서 ‘우리 인류’라는 시각으로 테두리를 넓힌다면 더 나은 해결책이 나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아가 그 ‘우리’를 동물과 환경에까지 적용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어느 누구도 완벽하게 개별적 존재일 수가 없다. 모두가 모두와 연결되어 있다. 옆 사람이 고통을 받고 불행하다면 결국 그것은 나에게 영향을 미친다. 그것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기후문제와 전염병이다. 기후 문제도 전염병도 이미 몇 사람이나 몇 나라의 범위를 벗어났다. 지나치게 공포에 떨지도 무시하지도 말고 이성적으로 ‘우리’ 모두 현명하게 대처하자. 우리 모두는 서로 연결되어 있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