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삶, 나의 도전> 이종덕 금호화성(주) 대표이사 회장 (5)

서울서 '뿌리 찾기 성공' 가족사 숙원 해결
종친회 구성…성균관 부관장도 맡아
"인생 마지막은 봉사…겸손한 자세 중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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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균관 관장으로부터 부관장 임명장 받고 있는 이종덕 회장. 서울=강덕균 선임기자 dkkang@jnilbo.com
성균관 관장으로부터 부관장 임명장 받고 있는 이종덕 회장. 서울=강덕균 선임기자 dkkang@jnilbo.com

 이종덕 회장은 서울생활 가운데 가장 뜻깊은 활동 중의 하나로 230년간 단절됐던 자신의 ‘뿌리’를 찾아냈던 일을 꼽고 있다.

 경기도 광주(廣州) 이(李)씨 4대 종파의 하나인 석탄공파인 이 회장은 서울 생활 내내 가계보를 잇는 일가를 찾지 못해 고민하고 있었던 것.

 그러던 1979년 12월말 국내 TV에서 방영한 ‘뿌리’라는 8부작 다규멘터리 드라마를 보게 되면서 그의 뿌리 찾기에 불을 지폈다.

 ’뿌리’는 주인공 ‘쿤타킨테’가 아프리카 잠비아에서 흑인노예로 미국에 끌려온 뒤 후손들까지 겪어야 했던 아픔을 다루고 있다. 이 작품은 쿤타킨테의 7대손인 알렉스 헤일리가 자신의 가족사를 추적해 소설로 쓴 것을 미국 TV에서 다규멘터리로 제작해 방영했고 국내 한 방송이 연말특집으로 다룬 것이다.

 그는 “‘뿌리’라는 다큐멘터리는 눈물없이는 볼 수 없었다. 그 장면들을 보면서 ‘저렇게도 조상을 찾는데 우리는 왜 뿌리를 찾지 못하지?’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순천 낙안읍성 광주 이씨 석탄공파 집성촌이 본가인 이 회장은 어릴 적 집안어른들이 일가를 찾기 위해 서울로 올라가곤 했지만 결국 찾지 못하고 돌아왔던 기억을 떠올리며 1980년 수없이 많은 발품을 팔며 수소문을 해갔다. 그러던 중 광주 이씨 일가를 찾아 냈다. 230년 전까지 이어져 오던 석탄공파의 기록을 확인했고 이후 선대들의 행적을 맞춰보니 딱 맞아떨어졌던 것.

 확인한 결과, 제주목사를 하던 18대조가 당시 순천 낙안의 부사로 있는 친한 분을 찾아가 잠시 머물던 중 임진왜란이 발발해 이동을 못하고 낙안에 그대로 머물게 되면서 이후 족보 기록이 끊겼던 것. 이렇게 이 회장은 388년만에 뿌리를 찾아 낸 것이었다. 가족사의 말못했던 숙제를 해결한 이 회장은 이때부터 모든 종친들의 협조와 화합으로 종친회를 만들었고 이런 인연으로 광주 이씨 대종회 도유사(都有司·2012~2016년)를 맡았다. 그러면서 성균관 부관장(2015~2017년)까지 역임했다.

 이 회장은 어릴 적 가정형편 때문에 못다 이룬 학업에 매진하게 된다. 사업적으로 성장가도를 달리던 1990년대 중반부터 한양대학교 산업경영대학원 최고경영자과정(1997년), 고려대학교 노동대학원 최고지도자과정(1998년)을 통해 최신 경영 및 노동관련 전문적 지식을 쌓게 된다. 원우회장과 총교우회 수석부회장 등을 통해 인맥도 넓혔다. 또 민주평통 자문회의 자문위원 송파구 부회장(1999~2003년), 서초구 부회장(2003~2005년)을 역임하고 2018년 8월부터는 대통령이 위촉한 대한적십자사 전국대의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지난 1964년 맨몸으로 상경, 무에서 유를 창출한 이 회장은 그의 삶을 가로지르는 생활자세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이 회장은 “진정한 행복은 내것을 남과 나눌 수 있는 사람, 힘든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는 사람이다. 인생의 마지막은 봉사다”라면서 “정말 똑똑한 사람들은 똑똑한 체 하지 않는다. 어느 분야든 겸손한 자세로 좋은 쪽으로 계속 행동을 하는 사람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고향후배들에게도 말을 남겼다. “서울에서 호남인들에 대한 위상이 엄청나게 달라졌다. 이제 지역적인 편견에 구애 받지 않아도 된다. 처음 기획이 중요하다. 철저한 준비를 통해 선택을 하면 자신감을 가지고 그 길로 똑바로 가라는 것이다. 그러면 자신의 대에 꽃을 피우지 못하더라도 다음 대에 반드시 꽃을 피우게 된다는 확신을 가졌으면 한다.”

서울=강덕균 선임기자 dkkang@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