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세도 버거워… 무등산에 스러진 ‘의재의 혼’

◇허백련 ‘예술혼’ 기린 의재미술관 ‘힘겨운 겨울나기’
유족 36억 상당 부지·작품 기증, 국비 등 76억원 들여
인천공항 누르고 최고 권위 ‘한국건축문화대상’ 수상
전기세 등 기본 운영비 조차 없어 동절기, 하절기 휴관
"의재 혼 방치할거냐" 등산객 등 항의도 이어져

550
동절기 휴관 중인 의재미술관. 전시실 입구 유리에는 방풍용 뽁뽁이가 겹겹이 붙어 있다. 김양지 PD yangji.kim@jnilbo.com
동절기 휴관 중인 의재미술관. 전시실 입구 유리에는 방풍용 뽁뽁이가 겹겹이 붙어 있다. 김양지 PD yangji.kim@jnilbo.com

지난 26일 설 연휴를 맞아 모처럼 찾아간 의재미술관은 굳게 닫혀 있었다. 증심사 입구에서 1㎞ 정도를 산행하듯 걸어 올라갔으나 ‘동절기 휴관’ 탓에 미술관 주변만 맴돌아야 했다. 미술관 입구에 있는 ‘삼애헌’은 사용하지 않은 집기와 가구들이 널브러져 있었고 뿌연 먼지만 수북히 내려앉아 있었다. 차분하고 정갈한 분위기 속에서 삼애헌에 앉아 무등산을 바라보며 ‘다도’를 배우는 상상은 산산히 깨졌다. 전시실 입구의 얇은 유리문에는 외풍을 막으려는 듯 포장용 뽁뽁이가 겹겹이 붙어 있었다. 고품격 미술관은 추레하게 겨울나기를 하고 있었다.

의재미술관은 광주를 ‘예향’으로 견인했던 의재 허백련의 예술혼이 오롯이 담겨 있는 공간이다. 광주지역 예술인들과 시민들 사이에선 무등산에서 차를 기르고 그림을 그린 남종화의 거두 의재 허백련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미술관을 건립해야 한다는 요구가 거셌다. 지난 2001년 의재미술관이 무등산 자락에 들어서게 된 이유다.

남종화의 대가로 광주에 전통 남화의 뿌리를 내린 의재는 소치의 넷째아들 미산 허형으로부터 그림을 배웠다. 동경 유학 중에 일본의 저명한 남종화가였던 고무로 스이윤의 문하생으로 활동하며 필묵의 범위를 넓혀갔다. 그는 1922년 조선총독부가 주관한 제1회 조선미술전람회에서 1등 없는 2등상을 수상하면서 서울 화단에 이름을 알렸다.

일본 유학 후 광주로 돌아온 의재는 무등산에 터를 잡고 무등산 기슭에 농업기술학교를 세우고 차밭을 운영했다. 의재가 기거했던 춘설헌에는 많은 명사들이 다녀갔다. 명사들이 광주에 오면 춘설헌에서 의재를 만나는 것이 정석 코스처럼 여겨졌다. 육당 최남선, 효당 최범술, 노산 이은상, 미당 서정주가 춘설헌의 단골 방문객이었으며, 1974년엔 ’25시’의 작가 콘스탄틴 게오르규 부부도 춘설헌을 찾았다. 지금도 춘설헌에는 유명인들이 다녀가는 것으로 알려졌다. 영부인 김정숙 여사가 대표적이다.

의재가 광주를 예향으로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고있는 것은 연진회에서 비롯됐다. 전통 호남 회화풍의 맥을 잇기위해 발족한 연진회를 통해 의재는 수백명의 제자를 양성하며 남도 전통화단의 밭을 일궜다. 그의 제자들은 현재에도 활동하며 의재사상과 남화 전수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의재미술관 건립이 논의됐던 것은 1977년 의재가 사망한 지 20여년이 흘러서다. 당시 연진회원들을 비롯해 시민들은 의재의 위업을 기리고 남종화의 발전과정과 한국화의 진수를 보여줄 장소가 필요하다는데 공감했다. 1000명이 넘는 시민들이 의재미술관 건립 추진위원회를 결성하고 의재미술관 건립에 동참했다. 유족들은 춘설헌 일대 부지와 의재 작품 및 유품 등 36억원을 기증했다. 여기에 국비 30억, 시비 10억 등 20년 전 당시 76억이 투입돼 미술관 건립이 본격화됐다.

미술관은 의재가 설립한 구 농업기술학교 부지에 건립됐다. 경사도가 60%에 달하고, 습도가 높으며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점 때문에 논란에도 불구하고 미술관이 이곳에 건립된것은 장소가 가지는 역사성을 무시할 수 없어서다.

이선옥 의재미술관장은 “학교는 6·25때 폭격으로 폐허가 됐지만 의재선생이 부산에서 전시회를 개최해 모은 기금으로 정상화 시킨 곳”이라며 “의재가 생을 마감할 때까지 30년간 기거했던 곳으로 의재의 정신이 깃들어있는 장소”라고 설명했다.

미술관 설계는 공모를 통해 이루어졌다. 당시 전국에서 18개팀이 건축설계에 응모한 결과 조성룡 건축사의 작품이 선정됐다. 통유리와 노출시멘트, 나무로 지어진 미술관은 전면을 통유리로 만들어 무등산의 산세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의재의 6폭 병풍 속 산수화를 연상시키는 미술관의 모습은 2001년 인천국제공항을 누르고 국내 건축계에서 가장 권위있는 한국건축문화대상을 수상하며 전국적으로 화제를 모았다. 국내 건축학도에게 의재미술관이 남도답사 1번지로 알려진 이유다.

건축학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지만, 미술관 운영은 녹록치 않았다. 산에 위치한 까닭에 습도가 높았고, 통유리로 지어져 여름에는 온실효과로 실내온도가 걷잡을 수 없이 올라갔다. 미관상 미술관 내부에 창이 없어 환기도 문제가 됐다. 습도와 온도, 환기를 해결하기 위해 당시 최첨단 장비가 미술관에 들어갔지만 운영비의 대부분이 전기세로 나가는 등 부담이 컸다.

이 관장은 “미술작품에 습도와 온도를 적정선에 맞춰주는 건 매우 중요한 문제라 엄청난 전기세를 부담하면서 울며 겨자먹기로 노후화 된 장비를 가동시키고 있는 중”이라며 “전기세 부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몇년 전부터 동절기, 하절기 휴관을 하고있다”고 설명했다.

광주에서 유일하게 남종화의 흐름을 감상할 수 있는 의재미술관은 운영비를 감당하지 못하면서 점차 생기를 잃어갔다. 차량통제로 증심사 입구에서부터 미술관까지 1㎞에 달하는 거리를 걸어서 올라와야 하는 불편함도 있었다. 실제로 의재미술관을 찾는 관람객은 연간 5000여명에 불과하다. 광주시립미술관 관람객이 연 30만명임을 감안하면 6분의 1 수준이다. 춘설차를 맛볼 수 있었던 문향정은 운영난으로 문을 닫은지 오래고, 차를 생산했던 춘설차 실습장에서도 더이상 기계 돌아가는 소리를 들을 수 없는 상태다.

전시실 한켠에서 춘설차를 내어주던 팽주와 미술관 관리인은 빠듯한 미술관 형편에 사치라 여겨져 언젠가부터 고용을 하지 않고 있다. 1년에 5건 남짓 열리는 전시에 투입되는 학예사들이 돌아가며 미술관 청소를 맡고있다.

이 관장은 “사립미술관협회를 통해 지원되는 비용으로 학예사 인건비를 충당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시에서도 운영비를 보조받고 있지만 자부담 비율이 있어 운영엔 여전히 어려움이 크다”고 토로했다.

의재 허백련이 광주에서 가지는 의미와 가치를 고려할 때 의재미술관을 시립미술관으로 승격시키고 제대로 운영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특히 훼손되지 않은 자연환경과 춘설차, 남종화가 어우러진 의재벨트는 경제적으로 광주를 끌어올 수 있는 잠재적 가치가 높다는 의견이다.

지역 미술계 한 인사는 “의재 허백련은 한국 화단에서 손꼽히는 인물인데 정작 광주에선 그를 푸대접하고 있는 느낌”이라며 “의재미술관을 둘러보면 그가 광주에서 어떤 대접을 받고있는 지 보이는 것 같아 씁쓸할 때가 많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자연과 문화, 차라는 강점을 가지고 있는 의재벨트를 관광상품으로 개발하면 관광지로서 광주의 가치를 높일 수 있고 경제적으로도 파급효과가 클 것”이라고 덧붙였다.

동절기 휴관 중인 의재미술관. . 전시실 입구 유리에는 방풍용 뽁뽁이가 겹겹이 붙어 있다. 김양지 PD yangji.kim@jnilbo.com
동절기 휴관 중인 의재미술관. . 전시실 입구 유리에는 방풍용 뽁뽁이가 겹겹이 붙어 있다. 김양지 PD yangji.kim@jnilbo.com
박상지 기자 sangji.park@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