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이 별거간디… 자식들 건강하믄 그게 복이제”

함평군 함평읍 해동방앗간 설 맞이 풍경
무지개 가래떡 보며 지역민들 수다 한가득
사람 부족해도 떡 기계는 힘차게 돌아가
내년부터는 인력난에 용역 쓸 것도 고민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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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분자, 적색고구마, 복분자 등으로 만든 떡국떡. 김양배 기자 ybkim@jnilbo.com
복분자, 적색고구마, 복분자 등으로 만든 떡국떡. 김양배 기자 ybkim@jnilbo.com

시대가 바뀐다는 것은 익숙한 많은 것들도 변한다는 뜻이다.

기실, 변화라는 것은 그 정체가 애매모호 하다. 그 단어 속에는 좋은 것과 나쁜 것의 개념이 없다. 옛 것이 마냥 좋은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새로운 것이 낫다고도 말할수 없기 때문이다. 그저 그것은 부대껴 사는 인간들이 보다 현실에 안착하고자 스스로 탈바꿈 하는 것일 따름이다.

민족의 대명절인 설이 왔다.

과거엔 설이 온다는 것은 엄청난 의미였다. 고향을 내려가야 하며, 다량의 설 선물을 사야했고, 새 옷과 몸 단장까지 가지런히 해 일상보다는 조금은 더 나은 모습을 만들어야 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저 멀고 먼 고향에서 우리를 기다리는 부모님께 ‘나는 이만큼 잘 살고 있으니 걱정마시라’는 확신을 주기 위함이었다.

허나 익히 인지하다시피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다. 휴대전화로 항시 안부를 물을수 있고 가끔은 영상통화, 정 보고 싶다면 언제라도 내려가면 그만이다. 길도 잘 뚫렸고 기차도 빠르다.

선물 대신 현금을 주는 것이 더 간편하고, 모처럼의 연휴이니 고향보다는 여행을 가기도 한다. 어쩌면 21세기의 대한민국엔 고향이라는 감성 자체가 사라져 버린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고향은 실제하며, 내려올 자식들을 기다리는 노부와 노모의 발걸음도 겨울바람만큼이나 부산하다. 세상이 변해도 좀처럼 바뀌지 않는 것들.

지난 20일 취재차 내려간 함평의 풍경이 그러했다.

해동방앗간은 꽤나 유명한 곳이다. 지금의 사장이 운영한지는 30년, 그 이전에도 10여년간 더 존재했던 곳이다. 40년이라서 유명한 것은 아니다. 여기에서는 명절을 맞으면 무지개 가래떡을 뽑아 내는데 그것이 사진으로 보기 쏠쏠하다. 지금이야 색 들어간 떡을 보기 쉽지만 불과 10여년 전 만해도 그다지 익숙치는 않았다. 더욱이 가래떡에 색 들어간 것은 더욱 보기 힘들었다.

그러다보니 해동방앗간을 소개하는 신문, 방송도 꽤나 많았다. 이런 이유로 가급적 다른 곳을 찾아보려 했으나 결국 여기를 방문할 수밖에 없었다. 해마다 설을 준비하는 마을 풍경이 기하급수적으로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허름한 미닫이 문을 열고 들어가니 기계 돌아가는 소리와 고소한 참기름 냄새가 은은히 풍겨온다. 작은 방앗간 안에는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는 할머니들로 꽉 차 있었다. 들고 온 쌀 포대를 바닥에 두고 그 위에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다가 도시에서 온 이방인에게 잠시 눈길을 줬으나 이내 자신들의 화제로 돌아간다.

이곳 대표인 이기남씨는 “워메 바쁜디…”라면서도 “한번 둘러 보쇼”라며 취재를 허락한다. 사전에 미리 연락하고 약속을 잡았음에도 그가 옴짝달싹 못하는 것은 지난 며칠간 파도처럼 밀려든 손님 탓인 듯 했다.

사실 대표가 있던 없던 취재에는 별 무리가 없었다. 왜냐면 이곳에는 30년간 쉬지 않고 일해온 이다순(75) 할머니가 있기 때문이다. 이 대표와 친척간인 이 할머니는 해동방앗간의 그야말로 산 증인이다.

인사를 건네자 “아따, 뭐 하러 왔어. 아이스크림이나 하나 사주고 가잉”하고 반긴다.

아이스크림을 사다주며 물으니 대답은 매년 같다. 바쁘고, 사람이 없어서 힘들고, 온 몸이 다 아프지만, 자식 먹일라고 떡 짓는 할매들 생각하니 멈출수가 없다는 이야기.

올해는 뭐 달라진 것 없냐고 묻자 이 할머니는 곰곰이 생각하더니 “인자는 자식 건강이 아니라 손주들이 건강하기를 바랄 뿐이여. 돈이 뭔 소용이당가 건강해야 명절에 한번이라도 내려오제. 그래야 맛난 떡도 먹구”라고 답한다.

옆에 있던 다른 할머니가 맞장구를 친다.

“요즘 애들이 떡이나 먹간디… 근디도 안하면 명절 안 같은게 떡 짓는게지.”

기다리기 심심했던지 할머니들이 너도나도 한마디씩 거든다.

둘째 아들이 올해는 못 내려온다는 할머니부터, 태국 며느리가 마음에 안 든다는 할머니, 영감이 죽어서 떡을 조금만 한다는 할머니…

그 순간 방앗간이 왁자지껄 해지면서 오래전 보았던 설 풍경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바쁜 와중에도 잠시 일을 멈추고 인터뷰에 응한 해동방앗간 이 대표는 “이 근처에 방앗간 13개가 있어도 다 합쳐서 울집 만큼 안되제”라고 자랑을 꺼내놓더니 “인자 이것고 못 하것소”라고 푸념으로 바뀐다.

이 대표가 못하겠다는 이유는 사람이 없어서다. 보통 이곳에서 필요한 인력은 14명, 설 명절이면 더 필요한 상황인데, 이날 일하는 사람은 8명에 불과하며 그나마도 명절 때문에 모은 사람들이다.

“요즘은 외국인 없으믄 농사도 못 지어. 시골 음식점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다 외국인이여. 내년에는 나도 외국인 용역을 쓰지 않으믄 기계 못 돌릴 듯 허네.”

그러다가도 “그래도 명절이니께 사람들이 활기차구먼, 나도 자식들도 보고, 오래만에 고향 내려오는 친구들 볼라고 생각헌께 좋기도 하구”라며 배시시 웃는다.

그래, 설이다. 세상이 변하고 떡을 안 먹는 손주들이 늘어난다고 해도 해동 방앗간 기계는 쉬지않고 돌아가고 할머니들의 수다도 당분간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내년 설에도 해동 방앗간은 희망을 닮은 무지개 떡을 뽑아낼 것이다.

노병하 기자 bhno@jnilbo.com
함평=서영록 기자 yrseo@jnilbo.com